*ai의 도움을 받지 않고 쓴 글입니다.
90년대생인 나는 학교 수업에 '컴퓨터'가 있었다. 60년대생인 엄마는 "그 귀한 컴퓨터가 어떻게 학생 한 명당 한 대씩 있을 수 있냐"라고, 세상이 변했다고 했다. 그 시절 타자연습이 숙제였는데, 처음에는 독수리 타법이었던 타자 속도가 날이 갈수록 빨라져서 나중에는 엄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가 되었다.
한편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휘어 있는 오른손 중지를 발견했다. 연필을 너무 많이 잡다 보니 세 번째 손가락 중간 마디가 휘어진 채 굳어져 버린 것이다. 왼손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확연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아이도 아닌데, 연필을 열심히 잡았다가 손가락 모양이 영원히 이상하게 변해 버렸다며 억울해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남편이 "오랜만에 연필을 잡았더니 팔이 아프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종이에 연필로 글씨를 쓰는 것이 아프고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외워지게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종이에 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연필 오래 잡아서 팔 아파본 것이 얼마만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숙제 안 해온 벌로 '깜지'를 쓰던 기억. 연필 대신 샤프를 쓴다고 진정한 중학생이 된 것 같았던 그런 옛날 생각이 난다.
세상이 변했다. 내 일곱 살짜리 딸은 벌써부터 패드를 가지고 학습지를 한다. 한글을 종이로도 공부하지만, 패드로도 쓰는 훈련을 거치는 거라고 했다. 처음에는 어린애가 패드는 웬 말이냐고, 종이로만 학습을 시킬 거라는 생각이 견고했지만, 주변을 조금만 살펴봐도 패드를 아예 쓰지 않는 아이는 없는 것 같을 정도였다. 제일 유명한 국내 학습지에서도, 서브용으로 패드를 사용해서 교육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종이의 시대가 지나가고, 패드의 시대가 왔다고 말하면 과할까. 이 년 전엔 홍대로 유명한 시인의 수업을 들으러 갔었는데 나 빼고 모든 수강생이 패드를 준비해 와서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종이에 글씨를 쓰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연필을 잡는 데 힘을 쓰느라 생각이 쏟아지지 못하고 휘발되는 것 아닐까 하면서.
이제 겨우 삼십 대 중반인데,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기 버겁다. 잡화점에 가면 문구 코너에서 제일 오랫동안 머무른다. 새삼 종이와 연필이라는 아주 기본적이고 당연한 물건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이메일이 보편화되면서 손 편지가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는데, 공책에 그려져 있으면 '이건 못 참지' 하며 더 사고 싶다. 종이 위에 글씨를 쓰는 낭만적이고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고 싶다.
사랑이란 비효율적인 행동, 그 자체라는 말이 떠오른다. 수더분하게 마음을 쓰는 일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