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롱할영 Sep 10. 2024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없는 나에게

성취 중독에서 벗어나기

내게는 채용 공고나 공모전들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 이건 정기적인 회사를 다니지 않게 된 후부터는 하루의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찾아보다가 하게 된 일들이 거제에 오자마자 출근했던 음악당 인턴,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구치소의 행정 인턴이었다. 아직 구치소의 인턴 기간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왜인지 이후에 하게 될 일들이나 정규직으로 다녀볼 만한 일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또 공고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아니, 사실 아이 계획이 있는 터라 합격한다고 해도 오래 다니지 못할 것 같아 절실함은 없는데도 자꾸 어딘가에 지원해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도 한 재단에 지원했다. 꽤 경쟁이 있는 곳이라 들었는데 결과를 조회해보니 서류 합격이라고 했다. 다음 전형은 필기시험인데, 서울까지 가서 시험을 봐야한다고 했다. 대구 친정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있는 직장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긴 했지만, 서울까지 가서 필기시험을 봐서 통과하면 또 다시 서울로 가야 하는 일정을 소화해가면서까지 당장 일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아이 계획이 있는 우리에겐 지금 내가 섣불리 일을 구하는 게 오히려 계획에 독이 될 거란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왜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는, 그냥 있으면 은근한 불안함으로 이것저것 해 보고 있는 걸까.

어쩌다가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에게 이토록 인색해진 걸까. 지금 나에게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게 필요한 때라는 걸 알면서도, 그게 멀리 보았을 때 우리의 가족 계획에 더 맞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알 수 없는 조바심에 사로잡힌다. 왜지. 그냥 있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그렇다고 회사를 다니면, 어딘가에 속해있으면 무언가가 채워졌던가? 소속이 생기는 걸 부담스러워하면서 뭘 그리 찾아다니나 싶어 스스로에게 질문들을 던져봤다. 답은 하나였다. 나는 '성취하는 나'에 중독되어 있던 것이다.


'성취하는 나'에 빠져있던 나는 과거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운동까지 잘 해내고 있었는데, 돌연 바디프로필을 찍겠다며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4시간을 운동하면서 지냈던 내가 있었다. 사진으로 보이는, 살아온 날 동안 날씬한 몸을 가져본 적 없었던 내게 직접적으로 보이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던 그 때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어야 성취감을 느끼는 나라는 것을 잘 보여줄 뿐이다. 또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직을 준비하고 성공하는 걸 보면서 갑자기 이직을 준비하더니 여러 곳을 면접보다가 결국 이직하게 되었던 나도 있다. 그 때를 돌이켜보자면, 이직을 하게 되었다는 결과보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서류를 내서 통과하고, 또 면접을 봐서 통과하는 그 단계들에서 오는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다. 


글을 쓰는 나의 모습에서도 '성취하는 나'는 등장한다. 우선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비로소 생기는 것이라 굳게 믿었던 나는, 등단을 위해 대학 시절 동안 시를 쓰고 신춘문예 철마다 원고를 내기 바빴다. 도전한 지 3년 째만에 정말로 당선이 되었고, 그 연락을 받던 날에는 그간 내 시간들이 모두 헛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벅차올랐다. (물론 그 타이틀이 나를 밥 먹여주지는 않았고, 이제는 등단만이 작가가 되는 길이 아닌 것임에 아주 동감한다) 등단을 한 뒤에는 여러 문학상과 공모전들을 찾아보며 혹여나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게 있을지, 기회를 노려볼 수 있을지 찾아보게 되었다. 내가 쓰고 있는 것들이 그렇게 결과로 나타나기를 바라게 되는 게, '저만의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던 나의 포부와는 참 모순된다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건, 자아의 발현이라는 건 무시하기가 참 어려운 법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막상 합격해도 일하지 않을 공고들에 지원해보는 것은, 자꾸만 무엇이 있나 찾아보게 되는 것은 역시나 '성취하는 나'에 중독되었기 때문일 테다. 그 중독은 여유롭게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난 뒤에도 끊기가 어려워서, 가만히 있는 스스로에게 뭐라도 해야하지 않겠냐고 채찍을 가하게 만든다. 지금처럼 사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급습하는 불안까지 막아내기는 아직 마음이 덜 단단해졌다. 그러니 뭐라도 해 보겠다고 이것 저것 시도하고, 지원해보면서 나의 가치를 외부에서 찾아보는 게 아니었을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나에게는 지금 그런 시간이 오히려 더 필요한데 가만히 두지 못하는 나에게 지금 당장 함께 살고 있는 사람과의 먼 미래를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말해주겠다. 무언가 빠져 있는 느낌은 느낌일 뿐, 아직 나에게선 아무 것도 빠져나가지 않았다고. 이제는 그 빠져나갈 구멍도 함께 메워 줄 사람이 있으니 불안해 할 필요 없다고, 멀리 바라볼 용기를 조금 더 내어보라고. 살아갈 날은 많으니,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은 더 많으니 조바심 낼 필요 없다고.


걱정 없이 편안하게, 스스로를 조금 더 놔도 된다는 주문은 아마 끊임 없이 해야할 테지. 그렇게 살다가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내가 지나 온 모든 시간들이 그때의 나를 향해 인사해주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결과가 당장 없다고 해서 불안해하지 말기를, '성취하는 나'에게서 조금은 벗어나보기를. 남편과 거제에서 보내는 날들 동안 이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겠다고, 또 다짐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