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제안에 하게 된 신부 단독 입장
한 달 동안 남편과 나는 거의 매주 결혼식을 다녀왔었다. 시누의 결혼식부터 친구와 동기들, 지인의 결혼까지. 우리의 결혼식과 어머님의 장례까지 1년 안에 모두 치른 남편은 갈 수 있는 곳은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좋은 일에도, 슬픈 일에도 함께 마음 써 준 이들이 얼마나 감사한 이들인지 더 잘 알게 되었으니까. 거제에서 살게 된 후부터는 대부분의 경조사들이 수도권에서 진행되는 터라 이동 거리가 왕복 10시간 이상 걸려서 힘들기는 하지만, 이제는 결혼식의 의미를 실로 느끼게 되었으니 힘 닿는대로 참석하는 편이다.
결혼식을 하고 난 뒤부터는 친구들의 결혼식에 가면 사진도 더 많이 찍어주게 되고, 더 축복해주게 되는 것 같다. 그 순간을 나도 지나왔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의 친구들, 지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우리 가정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해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에 남을지 잘 알고 있으니까. 허례허식이 있다고는 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나 그 순간을 되돌아 보았을 때 우리를 축복해준 감사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기억으로 힘 내게 될 시간이 올 것 같아서 나는 결혼식 자체에는 아주 긍정적이다.
돌이켜 보면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기는 해도 꽤 재미 있었다. 우리나라 웨딩 산업이 다소 과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각자의 가정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함께 준비하는 '우리 가족'의 첫 가족 행사라는 점과 그 가족 행사의 주인공이 우리 둘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즐기면서 준비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마음 고생도, 걱정도 많았지만.) 처음 같이 준비하는 행사다 보니 서로 생각하는 방향이나 집안 분위기가 달라 맞춰야 할 것이 많은 터라 여러 갈등이 생기기 쉽지만, 결혼식을 잘 끝내고 나면 정말이지 남편과 이제 가족을 넘어 '인생의 동반자'라는 동지애가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러니 형편에 맞게만 준비한다면, 결혼식은 서로에게 '우리가 주인공인 가족 행사'를 꾸려가는 추억으로 자리할 테다.
결혼식의 주인공이 되어보면, 식순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담아 공을 들이게 된다. 둘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가족 행사이다 보니 양가 가족들의 입맛도 맞추어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나의 경우는 아버지의 제안에 의해 '신부 단독 입장'을 하게 된 경우다.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가정 내 불화가 있지 않은 신부들의 대부분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반해, 나는 아버지가 건강하시고 사이가 좋은 편인데도 혼자 입장했다. 목사이신 아버지께 결혼식에서 축도를 해 주셨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괜찮다면 축도는 정말 짧게 하고 내려갈게. 아빠는 너희 결혼식에 너희만이 주인공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딸이 아빠 손을 잡고 입장하는 건 안 했으면 좋겠어."
"축도 짧은 거 너무 좋다! 근데 난 아빠 손 잡고 입장하고 싶은데, 왜?"
"내가 딸을 사위에게 넘겨준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어. 딸도 독립적인 인간인데 뭣하러 아빠에게서 남편으로 넘겨줘. 너가 그렇게 크지도 않았고, 그렇게 키우고 싶지도 않았고. 아빠는 그렇게 하면 좋겠다. 이건 결혼식이 너희 가정의 시작이라는 데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될 거야."
아버지의 말을 듣고도 혼자 입장하는 것은 왜인지 그 때의 나도 썩 반갑지는 않았던 터라, 엄마와 함께 아빠를 설득하려 했었다. 괜히 사람들이 수군댈 수 있으니 그냥 보편적으로 하고 싶다, 나는 아빠랑 걸어가는 순간을 그려왔었다 하면서 아버지를 설득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완강하셨다.
"너희 두 사람의 결혼이잖아. '딸을 시집 보낸다'는 표현도 아빠가 싫어하는 거 알면서. 내가 말한 뜻을 한번 더 생각해보면 너도 바로 이해 할 거야."
그렇게 아버지의 뜻에 따라 나는 혼자 입장하는 신부가 되었다. 연신 웃으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가며 인사하다 남편을 향해 걸어가는 나의 입장이 찍힌 사진을 보니, 아버지의 뜻이 바로 이해되었다. 독립된 인격체의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는 진정한 결혼의 의미를, 아버지는 알려주고 싶었던 것. 성인이 된 이후에는 나를 나답게 존중하며 살게 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아왔던 나에게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것이 더욱이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았다. 결혼식 사진에 찍힌 나의 모습들도 그래서 더 당당해보이는 것 같았고, 더 신이 난듯 보였다. 진짜로 나는 결혼식 내내 엄청 웃고 있었다. 그건 아빠가 일깨워준 결혼식의 의미 덕분에 충분히 이 날을 즐기려 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SNS를 보다가 아버지가 건강하시고, 사이도 좋은데 굳이 혼자 입장하는 신부들에 대해 이해가 안 된다는 글을 발견했다. 댓글들에는 '아버지에게도 평생 한 번 있을 시간을 굳이 빼앗는 이유를 모르겠다' 혹은 '신부 혼자 입장하면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진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우리의 결혼식을 보고도 더러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그건 아버지의 뜻이었다고 말한다. '아빠에게서 남편으로' 향하는 사람이 아닌 나의 길을 걸어가는 한 사람이 가정을 이루는 의미라고 하셨다고.
아버님도 우리 아빠와 같은 말씀을 하셨었다. 딸을 시집 보낼 때 아빠가 남편에게 딸을 넘겨주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냐고. 그래서인지 양가 부모님 모두 자식들에게 의지하려 한다거나, 도움을 받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 하신다. 살다 보니 부부가 '둘이 사는 것만' 신경 쓰면서 살 수 있는 것도 참 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살기만 하면 된다고 하시니 우리의 가정에 더 책임을 다 하고 싶어진다.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잘 걸어가던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족이 되어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결혼의 의미라 생각하는 우리는 제법 잘 살아갈 것이다. 결혼의 의미를, 가정을 이룬다는 것에 대한 책임을 항상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