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에서 논산, 그리고 서울까지
교도관인 남편은 명절 연휴를 모두 다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이번 추석에는 다행히 모두 쉴 수 있게 되어서 우리가 사는 거제에서 시작해 시댁인 안양과 친정인 대구를 넘나드는 양가 방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어서 안양으로 가는 중간에 작은 큰아버님 댁인 논산에도 들르고, 남편을 지극하게 좋아하시는 서울 고모 집에도 들르는 꽤 타이트한 추석 일정을 계획했다. 거제-논산-안양-서울-대구-거제에 이르는 전국 투어를 방불케했던 이번 추석 연휴. 이동이 많아 피곤하기도 했지만 가는 곳마다 하나라도 더 내어주시려 하고, 우리가 손 댈 것 없이 하게 해 주시려는 감사한 마음들 뿐이라 마음이 두둑해지는 시간들이었다.
연휴 첫날 아침 일찍 거제의 집을 나섰다. 캐리어와 차에서 먹을 간단한 스낵과 음료를 싸들고 출발했던 우리는 하나도 밀리지 않는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매번 서울에서 내려가기만 해 봤지, 역방향으로 가는 건 처음이라 이렇게 차가 안 막힐지 생각도 못했다. 논산의 작은 큰아버님 댁에는 시아버지가 이틀 전부터 미리 가서 머물고 계셨다. 우리가 도착하고 나니 작은 큰어머님은 토종 닭백숙을 한솥 내어주셨다. 큰아버님, 작은 큰아버님과 큰어머님, 시아버지, 남편과 나. 이렇게 둘러앉아서 큰어머님이 담그신 김치와 닭백숙을 먹으니 참 감사했다. 췌장암 4기를 진단 받으신 시아버지께서 홀로 기차를 타고 논산으로 오실 수 있을 정도로 아직 힘이 있으셔서, 작은 큰어머님의 넘치는 사랑이 담긴 음식들을 먹을 수 있어서, 작은 큰아버님의 땀으로 선산을 지켜낼 수 있어서, 그리고 이 사랑들을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주셔서.
백숙을 다 먹고 설거지라도 도와드리려 부엌에 들어갔더니 한사코 말리시는 작은 큰어머님은 얼른 혼자 생활하시는 시아버지께서 데워드실 수 있도록 여러 음식들을 내어오셨다. 아버님이 드실 수 있는 양만큼만 소분해서 담아두신 작은 큰어머님의 마음만큼이나 음식도 한가득이었다. 큰 박스 두 개를 꽉 채울 만큼의 반찬과 음식들을 담아주신 큰어머님은 우리 아버님의 건강만 좋아질 수 있다면 이 음식은 얼마든지 더 해줄 수 있다고 하셨다. 아버님은 계신 내내 여러 음식을 해 오시는 큰어머님의 마음이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워 더 자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며 연신 감사하다고 하셨다. 작은 큰어머님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거라고 모두 입을 모아 말할 만큼 작은 큰어머님은 정말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 가족의 정이란 무엇이기에, 하는 생각을 논산 집에서부터 생각하게 되었다.
함께 시어머니가 계신 묘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나서, 아버님을 모시고 안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천안에 들러 시누가 스치듯 말한 호두과자를 한 상자 사 가자고 하셨던 아버님 덕분에 천안에도 들렀다. 당신이 아프셔도 딸이 먹고 싶다고 한 게 있으면 사 주고 싶으신 게 아빠의 마음이겠지. 호두과자까지 사고 나서 안양의 아버님 댁에 도착했더니 저녁 시간이었다. 작은 큰어머님께서 싸 주신 음식도 많이 있었지만, 울산에 계신 시고모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아버님께 추어탕, 잡채, 미역국 등을 만들어서 보내주셔서 아버님 댁의 냉동고는 항상 음식으로 가득했다. 그 중 잡채를 꺼내 아버님과 함께 나눠먹었다. 요즘 가장 걱정 되는 게 혼자 계신 아버님께서 항암치료까지 하시면서 식사를 챙기셔야 한다는 것인데, 여러 곳에서 아버님께 음식을 보내주시니 참 감사한 마음들이었다. 우리가 멀리 살아서 잘 챙겨드리지 못한다는 게 참 죄송스럽기도 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한 뒤부터 아버님은 화장실을 자주 가시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아버님을 모시고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어도, 아버님께서 화장실 때문에 불안해 하셔서 잘 가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논산을 가시게 된 게 아버님께는 꽤나 큰 도전이었는데 다행히 별 일 없이 다녀오실 수 있던 것을 보고, 우리는 아버님께 거제로 오셔서 길게 머무시면서 함께 바다도 보고, 트래킹도 다니시자고 했다. 아버님은 유튜브로 여행을 많이 다녀서 괜찮다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어딜가나 부모님을 병으로 잃은 분들의 공통적인 말씀이 항암을 하고 계셔도 꼭 어디라도 같이 모시고 다니라는 것이었는데, 아버님을 설득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지 모르겠지만 계속 아버님을 집 밖으로 나오실 수 있는 일들을 많이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유튜브로 하는 것이 아닌 진짜 여행을 같이 떠나시자고, 아버님이 병에 잠식되지 않도록 더 자주 찾아가고 전화 드려야겠다고도.
아버님 댁에서 하루를 자고, 우리 고모가 계신 한남동으로도 향했다. 결혼하기 전 남편을 가장 처음 만난 우리집 식구가 고모셨는데, 그때부터 고모는 남편을 무척 좋아해주셨다. 사람의 됨됨이나 나에게 하는 행동과 말들이 진실되다면서, 고모의 자랑이신 사위와 결이 비슷하다며 남편을 항상 챙겨주셨다. 멀리 사는 탓에 매번 남편이 그런 고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도 전화밖에 못 드렸었는데, 이번에 올라온 김에 고모 댁에서 하룻밤 자고 가도 되겠냐고 했더니 고모는 무척 좋아하셨다. 심지어 '구름침대'까지 사 놓으셨다며 언제든지 와도 되니 편하게 오라고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다 비워두셨다.
진짜로 고모댁에 갔더니 '구름침대'가 거실에 펼쳐져 있었다. 고모는 이불빨래도 새로 다 해두셨다고 했다. 가자마자 식탁에 앉으라고 하시더니 지난 밤에 직접 쑤신 팥죽을 내어주셨다. 곧이어 사촌언니 형부, 그리고 고모 세 사람이 저녁상을 준비해주셨다. 내어주시는 음식을 받아먹기만 하는 건 언제나 미안하고도 고마운 마음이다. 저녁상에는 내가 추석인사 겸 보냈던 새우로 담근 새우장(진짜 맛있었다!), 고모의 갈비찜과 제육볶음, 갖가지 밑반찬과 계란 후라이까지. 꽉 찬 집밥상의 정석이었다. 고모는 연신 우리가 와서 너무 행복하다고 하시면서 이것저것 더 내어주셨다. 조카 중에 가장 고모를 닮은 게 나인데, 그 덕분에 어릴 때부터 고모는 항상 내게 먼저 연락 주시고 뭐라도 더 내어주셨다. 그 사랑을 이제는 남편에게도 주셔서 감사했고, 함께 잘 어울리는 남편이 또 고마웠다.
배불리 먹여주신 덕분에 정말 배가 꽉 차서 사촌언니 내외와 우리는 오랜만에 한강 산책을 나섰다. 서울에 살 때는 여의도에도 살았어서 정말 자주 다녔던 한강을 이제는 얼마만에 와 보는 것인지! 거제에서 매일 바다를 보고 살아도 한강은 또 다른 맛이었다. 야경이 없는 거제와 달리 늦게까지 산책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한강을 보니 새삼 우리가 서울을 벗어났다는 게 더 느껴졌다. 사촌언니와 나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는데, 성인이 되고 결혼까지 하고 나니 더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자주 연락하면서 지낸다. 거기에다 각자의 남편끼리도 꽤 성향이 비슷한 편이어서 같이 어울리기에 좋았다. 함께 5km를 산책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했더니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서로가 가까이 살았다면 더 자주 봤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돌아와서 고모와 남편과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들을 했는데, 나도 처음 듣는 우리 집안의 이야기들이 꽤 있어서 재미있게 들었다. 남편과 함께 고모의 말씀을 들으니 새삼 내게 이렇게 든든한 남편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있어주는 그가 고마웠다. 와인 한 병을 비우고 나서 잠자리에 들려는데, 잠시 기침했던 남편의 소리를 듣고 고모는 얼른 수건에 물을 적시고, 기침약을 내어주셨다. 정말 우리가 편하게 있다 갈 수 있도록 모든 마음을 다 해주고 계신다는 것이 느껴져서 황송할 정도로 감사했다.
다음 날 아침 브런치까지 고모와 사촌언니 내외가 애정하는 베이커리에 들러서 거하게 먹고 모닝 커피로 '치어스'까지 하고 나니 이보다 더 완벽한 추석 연휴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가 모두 내어주시려고만 하는 사랑들이 도처에 있으니 언제든 지치면 기댈 수 있는 어른들이 넘쳐나니까. 그 사랑들은 우리가 더 잘 살아가는 밑거름이 될 거라는 믿음도 함께.
놀랍게도 아직 3일차다. 우리에게 연휴는 이틀 더 남았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