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초등 글쓰기 수업기 (1)
지난 토요일,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첫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내가 함께 할 친구들은 총 15명. 앞으로 10주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아이들과 글쓰기를 주제로 만나게 된다. 글쓰기가 싫지만 엄마의 성화에 겨우 온 아이, 영어 단어 노트를 숨겨서 공부하는 아이, 뭘 써야 할지 머리에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힘들다는 아이, 뭐라도 하나 더 보여주고 싶어서 즉석 글쓰기를 마구 써와서 나에게 보여주는 아이까지. 다양한 친구들이 함께 하는 도서관 수업을 맡고 나니 글쓰기에 대해, 특히 글쓰기가 재미있도록 지도해주는 일에 더 책임이 생겼다.
거제에 오기로 하고 나서, 이곳에 있는 동안 아이들의 독서와 글쓰기 관련 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소속이 아닌 나 혼자서 일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프리랜서가 된 후부터 글쓰기 수업을 하고 싶었다. 글 쓰는 게 귀찮고 힘든 아이들부터 너무 간절하지만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는 성인들, 인생을 돌아보는 글을 쓰고 싶은 시니어까지. 그 중 첫 번째 목표를 꽤 금방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교육청의 강사풀에 올려둔 내 이력을 보고, 부지런한 사서님의 연락이 먼저 왔던 것. 개별적인 지도만 해와서 공식적인 수업 이력이 없는 내게 제안을 해주신 덕분에 감사하게도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어디에라도 나를 노출해두어야 한다.)
내가 아이들과의 글쓰기 수업에서 궁극적으로 아이들이 얻어갔으면 하는 것은 세가지. 왜 써야 하는지 알게 하고, 솔직하고 정직하게 쓰는 글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매사에 궁금해하고 관찰하는 것이 글쓰기와 우리의 인생에 어떻게 작용하게 되는지를 느끼게 하는 것. 10번의 수업만으로 이것들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아이들이 이들 중 하나만이라도 잘 깨우치게 된다면 앞으로 글을 잘 쓰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확고하다.
첫 번째 수업에서 가장 먼저 알려준 건 나에 대한 소개였다. 아이들에게 내가 글쓰기 하나로 대학교 학과를 선택하게 되었고, 신춘문예에 등단하게 된 것과 서점 MD로 일했던 것까지 말해주면서 글쓰기가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나의 시집도 함께 보여주면서 "선생님은 이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고, 글을 쓰고 읽는 게 아직까지는 제일 재미있는 사람이랍니다" 하고 소개했다. 그랬더니 한 아이가(자신이 쓴 시를 꼭 보여주고 싶다고 가져온 아이) "'아직까지'라고 한다면 언젠가 바뀐다는 거예요?"라고 되물었다. 사실 '아직까지'라는 단어의 오묘한 뜻을 아이들이 간파할 수 있을까 했는데,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이라 꽤 놀랐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것 같지만, 세상엔 재밌는 게 너무 많으니까 바뀔 수도 있겠지?"하고 답했다. "'아직까지는'이라는 말을 아주 잘 이해했구나!"하는 칭찬도 덧붙여서.
아이들에게도 내가 했던 것처럼 자신을 한두 문장으로 소개한다면 어떻게 소개할지 한번 써 보라고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A4용지 백지를 받아들고서는, "뭘 써야 할 지 모르겠어요" 혹은 "나에 대해서 쓰는 게 제일 어려워요"라며 한동안 쓰지 않고 있었다. 나는 돌아다니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 가장 잘 하는 것이, 나를 닮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요즘 나의 감정 등을 생각해보고,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으로 써 보세요"하고 아이들에게 생각 할 시간을 주었다. 쓰기가 어려우면 그림이라도 그려보라고 하면서. 고민하던 아이들은 이내 몇 글자씩이라도 자신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나는 놀고, 먹고, 자기를 제일 좋아하는 OO이야"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아이는 "나는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았어. 영어는 좋아하지는 않는데, 잘하는 것 같아"라고 잘 하는 것으로 소개했으며, "나는 토끼와 강아지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우리 엄마, 아빠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별한 것을 써내지 않더라도 좋으니,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표현하는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참 소중하리라고 생각한다. 글쓰기의 가장 근본은 '나'의 이야기이므로.
나는 이어서 나의 초등학교 때 일기를 보여줬다. 수업을 준비하다가 문득 아빠가 결혼하고 나서 이사할 때 챙겨줬던 나의 '추억 상자'가 생각나서 열었는데, 초등학교 때 일기도 모두 들어있던 게 아닌가.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부터 5학년이니, 딱 그 시점의 일기들을 보면서 아이들도 비슷하게 생각하겠지 하면서 읽어나갔다. 그러다 이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어색한 분위기도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일기를 통해 다양한 글쓰기를 했던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무엇이라도 쓰는 습관이 나중에도 글쓰기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할머니와 공원 산책을 하면서 저녁 반찬을 샀던 일, 엄마와 함께 중간고사 시험공부를 한 이야기, 그리고 일기가 쓰기 싫었던 어느 날에 쓴 '가을'을 주제로 한 시까지. 아이들에게 내 일기를 보여주면서, 일기에 다양한 글을 써 보면서 글쓰기에 재미를 느꼈던 나의 역사도 고스란히 되돌아보게 되었다. 또 일기가 가진 힘을 새삼 더 깨달았다. 물론 아이들은 내 일기를 보고 "와, 개인 정보다! 이거 보여주셔도 돼요?"라거나, "도서관에 빌려주세요! 저 읽고 싶어요!"라며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반응들을 보였지만.
일기 쓰기에서도 그렇듯, 글감을 찾는 일이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주제와 이유'를 마음껏 써 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쓴 주제들을 가지고 앞으로 하나씩 같이 써 보자고. 이유를 쓰기가 싫으면 안 써도 되니, '쓰고 싶은 것'에 집중하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이번에도 어려워했다. 백지를 받아 드니 무얼 써야 할지 모르겠다, 혹은 너무 많아서 어떤 걸 써야할 지 모르겠다면서. 나는 이번에도 여러 예시들을 돌아다니면서 말해주었다.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니까 정말 쓰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다 써도 된다고. "OO도 돼요?"라고 물으면 "그럼! 다 되지!"라고 답하며 아이들의 글감을 끌어내보려고 애썼다. 요즘 아이들의 관심사를 들여다볼 수도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할 테니까.
아이들이 써낸 것들은 이러했다.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친구랑 싸웠던 일, 용돈이 더 많았으면 하는 이유, 내가 새 핸드폰이 필요한 이유, 우리 집에 강아지가 있어야 하는 이유, 여름 방학 때 있었던 일, 내가 상상하는 미래의 집 등. 생각보다 더 다양하게 글감을 찾아낸 아이들을 보면서, 역시 아이들의 머릿속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들어있음을 깨달았다.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의 상상과 생각에 제한을 두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자고 다시 다짐했다.
슬슬 지쳐가는 아이들에게, 매 수업마다 마지막 활동으로 해볼 '이어서 세 줄 쓰기'만 잘 하면 수업을 끝내겠다고 했다. 오늘의 문장은 "이번 여름은 너무 긴 것 같다"로 제시해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어렵다고 하지 않고 술술 써내는 아이들에게 "문장이 하나 있으니까 글쓰기가 더 쉽죠?"하고 물었더니 "훨씬 좋아요! 하얀 종이 앞에서는 아무 생각도 안 나요"라고 하는 말에 앞으로도 한 문장, 한 주제씩 먼저 제시해보면서 넓혀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까지 아이들에게 자유란 더 힘겨운 것임을 깨달았달까.
드디어 수업이 끝났다. 첫 수업이라 많이 걱정하고, 떨려 하면서 준비했는데 다행히 내 생각보다 아이들은 쓰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써내는 힘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첫 수업을 해보고 나니 앞으로의 방향도 조금 더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왜 쓰는지, 왜 솔직해야 하는지, 왜 관찰하는 태도가 중요한지'를 쓰다 보면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 만날 9번의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어떤 것들을 전해줄지 매일 생각하고 더 공부해봐야겠다. 쓴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만 해 주어도 이 수업의 목적은 이룬 것일 테다. 나의 첫 번째 초등 글쓰기 수업이 아이들에게도 가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