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후(9)
그가 떠난 후, 더욱 모이기를 힘써 준, 가까운 몇몇 친구들 덕분에 지난 30년 세월보다 더욱 많은, 또 깊은 서로의 얘기들을 나누게 된 것은 서로를 위한 유익이었다. 그들에게도 첫 경험인 친구의 죽음 앞에서 남겨진 친구와 그 자녀들에게 마음을 쏟는 그들의 사랑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들은 새로운 길을 향해 뛰어야 하는 친구를 위해 함께 숨을 고르고 발을 맞추어 주며 옆을 지켜 주고 있다. 마치 페이스 메이커처럼.
오늘은 석 달이 된 날이다. 빠르다. 이렇게 세월은 흐르고 있다. 주변의 일들을 조금씩 돌아보게 되었지만 체력이 약해져선지 쉬 지치곤 한다. 곧 공부를 시작해야 하니 마음도 몸도 새 힘을 공급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 뒤돌아보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한 후에도 불현듯 떠오르는 그의 부재에 고개를 가로 졌는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그가 떠올랐지만 나는 ‘그는 그곳에 있다!’라는 팩트로 급하고도 단호하게 결론지으며 다만 앞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예민함과 악한 영의 공격에 대비하여 여전히 말씀을 암송하고 선포하고 있다. 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삼겹줄 예배도 계속하고 있다.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누고 셋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서로의 손을 맞잡고 기도하고 있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 그들을 위해서 나는 반드시 힘을 내야 한다. 남편을 잃고 아빠를 잃은 우리는 서로를 위한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주고 있다.
석 달 전, 멀리 미국에서 한 걸음에 달려와 주었던 친구에게 보이스톡을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아프단다. 우리와 2주 간의 시간을 함께하고 돌아갔었는데 한 달 전부터 몸과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아프단다. 우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간 후부터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내 글들을 읽고 또 읽으며 더욱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가 떠난 후 나흘 만에 우리에게로 와, 슬픔에 갇혀 허우적 대던 나와 내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고스란히 그 시간을 함께 나눈 때문이었을까? 그때는 우리를 위해 가장 힘을 내주었고 우리 삼겹줄 예배의 시작을 함께 해준 친구였는데…
처음 브런치 스토리의 글을 올릴 때는 그가 떠난 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매 순간 절망의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고 놓고 싶지 않은 그를 더욱 꼭 붙잡고 싶었던 때였다. 그래서 기록해 두는 것으로 떠나버린 그의 흔적을 소중히 보관하려는 마음이었다. 또한 생각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함께 하지 못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그의 마지막 자취를 전하는 기록이 되기도 했었다. 이후 거듭하여 글을 올리며, 눈물로 채워진 슬픔의 수조 안에 침잠해 있던 나는 슬픔을 조금씩 쏟아내며 숨 쉴 틈을 확보해 가는 스스로를 발견하였다. 아마 이 또한 내 안의 성령님의 가이드였을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가 떠난 후, 끌려만 다니던 영적 전쟁에서 어느 날 아침, 이 일을 인식하게 하셨다. 그래서 나는 내 성경 지식의 목차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꺼내었다. 이는 우리들의 영적 전쟁이 육탄전일 경우를 대비해 마련해 놓으신 장비이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다만 내게 활자로 존재하던 그것이 비로소 입체적 실체로 모습을 드러냈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모든 행적과 이루신 사명을 믿는 믿음으로 받은 구원이라는 이름의 투구와 결코 의로울 수 없는 나의 의가 아닌 나를 의롭다고 명명하신, 옮음 그 자체이신 예수님의 의로 내 심장을 지키도록 제작하신 호심경, 또 거짓이 결코 없으신 진리로 내 몸의 중심인 허리를 두를 띠도 마련해 놓으셨다. 역도 선수들이 다소 간단해 보이는 경기복을 착용함에도 단번에 힘을 결집하여 바벨을 들어 올리기 위해 폭넓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처럼 이 진리의 허리띠는 우리의 중심을 강화하여 힘을 결집하는 장치일 것이다. 또한 오직 평안의 말씀으로 만든 신발을 신고 전쟁을 향해 돌진하도록 발마저도 평안케 하셨다. 이토록 세심하시다니! 정말 하나님은 올 마이티 울트라 슈퍼 J이심이 확실하다. 그리고 믿음의 방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그 이름조차 능력 있음을 믿는 믿음이다. 그래서 나의 경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라고 선언하며 적의 불화살과 같은 모든 참소를 막아내었다. 무엇보다 그날의 며칠 전부터 말씀묵상으로 준비시키신 후 드디어 이와 같은 전쟁의 최강 병기인 말씀의 검을 휘둘러 적을 베고 찌름으로써 첫 승리를 경험하게 하셨었다. 지내놓고 보니 그가 떠난 후 내 삶에 나타난 모든 전개를 돌아보면 주님은 결코 너무 몰아치지 않으셨고 시간의 흐름을 통해 충분히 과정을 겪게 하시면서도 또 새로운 길을 밝혀주시며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셨었다. 그래서 이 잘 짜인 계획은 실로 심오하고 위대하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친구에게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이 구비해 놓으신 전신갑주를 단단히 갖추어 입고 당당히 이 전쟁을 치르자고 했다. 슬픔으로 시작하여 회복을 향해 가는 경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서로를 페이스 메이커로 의지하며 경주를 진행하다 보면 결승점쯤에서는 보다 강건해진 자신과 우리를 그 크신 사랑으로 맞아주실 주님을 만나게 될 테니….
나의 글에 정성스레 댓글을 남겨주는 친구들과 교회의 언니, 동생들은 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내게 다정하고 따뜻한 페이스 메이커들이다. 아마도 함께 울어주었을 것이고 또 나와 내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었을 것이다. 라이킷으로 응원을 표해준 친구들과 교회 식구들 그리고 브런치 스토리 이웃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게 언제나 라이킷을 보내주었던 확실한 한 사람이 지구상에서 떠나고 나니 이제 나를 향한 모든 라이킷이 더욱 소중하다. 지인 한정인 카톡을 제외하고 대중들에게 열린 SNS로의 소통이 한참만인 내게 라이킷을 통한 응원은 동시대를 함께 뛰는 페이스 메이커로서의 동지애 마저 느끼게 했다.
페이스 메이커와 격이 다른 동행으로는 메기 효과가 있다. 그 유래는 많이 알려졌 듯 정어리를 보다 싱싱한 상태로 운반하기 위해 포식자인 메기를 동반하게 하므로 피식자인 정어리의 생사를 담보로 신선도 유지를 도모한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오래전 북유럽에서 이 방법을 사용했다고 하는 설이 있다지만 생태계적 오류 혹은 의문이 제기되므로 다만 동화 같은 가설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오히려 이후에는 경제분야에서 더욱 많이 차용되나 실제로 이론과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왜냐하면 포식자와 피식자의 동반으로 피식자의 활동이 경쟁을 통해 활동적으로 변화하여 이 두 상반된 입장이 동일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이론과 달리 오히려 피식자를 더욱 신속하게 도태시키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지금의 내 존재는 어쩜 안타까운 뜨거운 감자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대화 중에 남편에 관한 얘기나 소소하고 평범한 가정사를 나누는 것이 나로 인해 다소 부자연스러울 수 있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에게든 뜨거운 감자적 요소는 있다. 어떤 경우는 스스로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만큼은 그의 약한 면이라 생각되어 언급을 회피하거나 선회하는 부분이 있다. 적어도 나와 내 친구들 가운데 스스로가 알고 있는 상대방의 결핍 혹은 취약점을 일부러 들추어 공격할 무자비한 인격체들은 없으니 우리의 동행은 양극단적 결과의 가능성이 있는 메기효과가 아닌 서로를 위한 페이스 메이커이길 바란다. 서로의 연약함을 배려하며 오히려 스스로 성숙해지는 관계가 될 수 있기를… 그리고 나는 이제 나의 상실로 인한 결핍에 더 이상 주눅 들지 않을 것을 결심했다. 그것이 지금 내 상황에서 친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배려라고 생각되었다. 잔뜩 웅크린 채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불편함에서 자유롭게 해 주려는 의도에서부터 내게 사랑을 쏟아부은 그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내 진심을 담은 결심이다. 나의 담담함이 그들의 사랑에 대한 보람찬 열매가 되길 바라며… 이렇게 조금씩 성숙을, 그보다는 믿는 사람으로서 성화(聖化)를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님과 내 옆을 지켜주며 함께 뛰는 페이스 메이커들 그리고 나 역시 어떠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페이스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며…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나의 주님 그리고 나의 소중한 페이스 메이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