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후(8)
세상이 질서에서 벗어나 카오스 상태에 빠진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복잡다단한 문제들의 충돌 때문일 것이다. 문제들은 다양한 선택에서 기인하고 또 이에 따른 다양한 의견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쭉날쭉 돌출하여 세상에서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것은 모든 위험과 위협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환경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와 같은 환경을 살아내기 위해 오감을 곤두세운 채 날로 예민한 성향으로 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민한 성향의 사람들의 특징은 생각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가끔 신중하다고 포장될 수도 있지만 실은 스스로의 생각이 너무 잡다하여 복잡해진 것일 것 같다. 이는 생래적일 수도 있고 쉽게 변이 되는 형질 탓 일 수도 있다. 또한 매사에 시니컬한 비평가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나는 그런 편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함을 추구하도록 지어진 사람이었던가 보다. 하나님도 우리가 다만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분과 동행하는 단순한 삶을 살기를 바라셨으니 그는 적어도 나보다는 성경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크게 민감한 부분이 없었기에 생각의 시간이 간결하여 결론도 명료하고 신속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의 부모로서 나의 예민한 성향은 신랄한 비평가의 기질을 부추겨 어떤 무신경한 사람의 불편한 언행에 마음이 상할 때면, 늘 그에게 하소연하곤 했었다. 그는 그럴 때마다 사용하는 관용구가 있었다. “몰라서 그래.” 그들은 몰라서 그런다는 거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하고 또 행동하는 것이라는 거다. 나는 다소 악의를 섞어 시야에 있지도 않은 무신경한 그들에게 눈을 흘기며 “무지해, 무식해”라고 혼잣말하듯 대꾸했고 그는 “그러니까 똑똑한 영주 씨가 이해해.”라고 했었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그의 위로를 받곤 했었다. 그러나 딸아이를 위한 기도를 할 때, “부당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목소리 마저 떨렸었던 그였기에 “몰라서 그래.”라고 체념하듯 상황을 정리하기는 하나 딸아이를 위한 마음속의 바람은 말할 수 없이 뜨겁고 간절했었을 것이다.
그가 담긴 작은 상자를 땅에 묻던 하관 예배 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에 두 눈을 감고 있던 내가 저 멀리 20대의 모습으로 나타나 웃어 보이던 그의 모습을 붙잡고 있었 을 때, 목사님의 말씀이 시작되었다. ‘가지 마, 가지 마, 가지 마…’ 나는 그의 모습을 붙잡고 있느라 찬양을 따라 부를 수도 없었고 말씀이 들리지도 않았었는데 그때 목사님의 말씀 중 “몰라서 그래” 그 익숙한 관용구가 들렸다. 사실 그날 말씀의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환상 중에 나타난 그로 인해 놀라고 반갑고 아깝고 극한의 슬픔,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있던 내게 그가 쓰던 그 관용구가 목사님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온 것으로, 나는 그가 내게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더욱 눈물이 솟구쳤었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 중에서도 마음이 무너지고 설움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일을 몇 번 겪은 후 지난번 글에 잠시 그 얘기를 비추니 가까운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 친구는 조심스레 자신의 입장을 얘기해 주었다. 모든 얘기에 그 친구의 사랑이 담겨 있어 다소 따가울 수도 있는 내용임에도 나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었다. 친구는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입장을 조심스레 얘기해 주었다. 알고는 있다. 그들은 알아채지도 못하는 일에 일일이 상처받는다면 나는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을 것이고 나만의 동굴 안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외부로부터의 상처는 받지 않을지 몰라도 더욱 외롭고 비참하여 내면의 상처가 깊어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임무가 남아 있다. 엄마로서 성도로써 살아 있는 날까지 남은 이 두 사명을 잘 수행해야 한다. 그러니 아이들을 동굴로 끌고 들어가는 어리석은 어미가 될 수도 없고 성도의 사명을 저버릴 수도 없다.
그가 떠난 후, 나는 과연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해 보았었다. 믿음 생활을 수 십 년 하였고 교회 공동체에서 열심히 일하라고 권사로 세워주기까지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뒤늦은 자기 성찰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떠나고 나는 절대적 상실감에 괴로워했고 잠시 성도로써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조차 했었다. 그러니 나의 최우선 순위는 하나님이 아니고 내 남편, 내 가정이었음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 삶에 주님도 중요한 존재이시지만 절대적 중요 순위에서는 나의 가정이 한 발짝 아니 여러 발짝 성큼 앞서 있었던 것 같다. 잘못되었었다. 그러니 이젠 성도로써의 나의 임무도 더없이 중요하다. 아니 가장 중요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엄마로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다.
그가 떠난 후, 나는 늘 그날을 또 그가 살아 있던 날들을 떠올렸고 나의 삶 전체를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과오로 여기며 슬픔에 짓눌려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의 생각은 지나간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망되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서도 절망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발견하였다. 나를 공격하는 악한 목소리. 지난 시간으로 회귀시켜 나의 죄를 묻고 내 기도의 무익함을 심지어 말씀이 공허하다고 까지 속이는 그 소리가 나를 붙들고 나의 전진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선언하였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미혹하는 악한 영은 물러갈지어다!” 이어서 하루 한 절씩 외우기 시작한 말씀을 암송하여 선포하였다. 말씀을 통해 깨끗이 청소한 집에는 오히려 악한 영이 무리를 지어 진입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이제 배운 대로 내 안을 말씀으로 채워 방비할 참이다.
“네가 나의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 (요 15:7).
전화를 걸어 사려 깊은 충고와 위로를 보낸 친구는 안타깝게도 아직 주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친구의 얘기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권면을 발견했었다. 의심하지 말고 뒤돌아 보지 말고 한 마음으로 계속 믿음을 밀고 나가라는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이 친구가 여전히 주님께 잇닿아 있다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떠났다고 생각했으나 주님은 이 친구를 이처럼 붙들고 계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친구의 얘기가 내게 선선히 수용되었던 가 보다. 친구와 그 가정이 다시 주님께 돌아오기를 참으로 오랫동안 그와 함께 기도했었는데… ‘친구야 나는 언제나 기도하며 너와 네 가족과 함께 예배할 그날을 소망하고 있단다.’
오늘 아침에도 콘솔 위 사진틀 속 그와 인사를 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다르다. 그냥 그가 살아있던 여느 날처럼 감정을 조율하고 이젠 앞으로 나갈 준비를 갖춘 사람으로 “굿모닝 여보, 그동안 내가 몰라서 그랬어. 똑똑한 영주 씨가 이제야 알았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낼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