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후(7)
60여 년을 살아오며, 가장이 떠난 가정이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은 이미 픽션, 논픽션을 통해 학습한 바 있다. 대체로 그 이야기의 전개는 애잔하거나 잔혹하기 조차 하다. 그래서 한 때, 여러 가지 가정(假定)을 떠올리며 한숨과 눈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기도 했었다. 다행히도 아직은 좋은 친구들과 사려 깊은 교우들의 울타리를 벗어나 있지 않아 그 잠 못 들던 밤들에 떠올렸던 흉흉한 상황을 겪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방어적 기전이 작동하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내 어머니의 임종 때, 가녀린 숨을 고르시며 마지막을 준비하시던 엄마는 이상하게도 단 하나뿐인 당신의 자녀인 내가 아닌 그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혹시 희미한 의식 중에 나를 찾지 못하시는 건 아닌가 하여 엄마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하며 눈을 맞추고 “엄마, 나 여기 있어”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그의 얼굴만 바라보고 계셨다. 그때 그는 엄마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말했었다.
“녜, 어머니. 잘 알겠어요. 제가 평생 영주 잘 돌볼게요. 염려하지 마세요.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대단히 훌륭하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때 엄마의 왼쪽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고 엄마는 아주 평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으셨었다. 그가 떠난 후, 나는 모든 것이 야속해 여러 기억들을 떠올리다 그가 그날의 약속을 지킨 것인지 아닌 것인지 생각해 보았고 그가 말한 “평생”이 나의 평생이 아닌 자신의 평생이었음에 역시 그는 나름대로 그 약속도 지킨 것이었구나 싶었었다. 그는 자신이 한 약속을 모두 지킨 것으로 간주해도 될 만큼 온 힘을 다해 살았었던 것 같다. 아니 그랬었다. 나이 들어가며 언젠가부터 우리는 떠나는 날에 관한 얘기를 나누곤 했었는데 그는 한 날 한 시에 떠날 수는 없으니 누군가 먼저 떠나게 될 테고 또 그건 자신일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 일이 아주 먼 훗날에 일어날 것이라고 믿으면서도 매번 펄쩍 뛰며 나는 혼자 남겨지는 것은 생각할 수 조차 없으니 먼저 떠나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고 진심으로 흥분하며 대꾸했었다. 그와 같은 얘기를 나누던 때가 불과 서너 달 전이었다는 것을 오늘도 믿을 수 없다.
60이 넘었으니 좀 진중해지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주님께 기도까지 해온 나는 지금 생각해 보니 남편 옆에서 참으로 민망하도록 발랄했던 건 아닌가 싶다. 그의 생애 동안 나의 평안을 지켜준 그에게 참으로 고맙고 또 야속하다. 앞 날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의 숙명이지만 이와 같은 변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원래 그런 편은 아니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살며 아내이자 엄마로서 나는 늘 계획을 짜는 역할을 맡았었다. 일상에서건 여행이나 가족 행사를 앞두고 서든 일단 계획을 짜놓아야 안심이 되는 편인데 지금 나는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에 대한 계획서를 쓰기 위한 첫 페이지를 열고 아직 궁리 중이다.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내년부터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전부터 할까 말까 늘 생각만 하던 과정이었는데 이젠 더 이상 망설일 여지가 없다. 다문화 국가인 이 나라 정부에서는 국립 병원과 법원같은 공공기관에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요청여부에 따라 무상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이를 위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내에 단기 과정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걸 해 볼 생각이다. 이력서와 영문 대학 졸업증명서와 함께 두 분으로부터 추천서를 받아야 해서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과 31년째 우리 가정의 홈닥터인 닥터 도프 (실은 그냥 평소에 만나면 오드리라고 부르는)에게 부탁드렸었다. 항상 그 과정의 이수를 망설였던 건 그 학교가 우리 집에서 꽤 멀어 운전기피자로서 마음에 부담이 가득하였던 때문이었는데 웬일로 내년부터는 온라인 코스가 있어 집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 것도 말할 수 없이 감사한 일이다. 적잖은 나이에 결코 만만하지 않을 공부를 시작하는 부담은 일단 주님께 맡기며 기도 중이다. “Unconditional offer”로 입학이 허가되어 일단 학교 측의 시원시원한 용납에 오랜만에 소망의 빛이 칠흑 같던 내 마음을 밝혀주는 듯했다. 생각만 하고 있을 때는 녹록하지만은 않을 앞날이 그려져 마음이 무거워지기만 한다. 사람들이 나누는 무심한 대화 중에도 나는, 작은 자극에도 촉수를 감추며 웅크리는 바다생물처럼 반응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한다. 상처받기 쉬운 이라는 형용사인 Vulnerable, 외부의 공격에 쉽게 영향을 받는 경우인데 주로 물리적인 공격이 아닌 심리적 공격에 기인하여 취약한 상태를 표현하는, 바로 지금의 나의 상태이다. 모든 상황에 지나치게 민감해 마음이 무너지기도 하고 눈물이 차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견뎌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보니 다시 주님께 엎드린다. 한동안 기도 가운데 주시는 말씀에 눈물로 반응하였는데 요즘은 단 한 절의 말씀을 오늘의 말씀으로 붙잡고 암송하고 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에게서 로다.”(시 121:2) 통상 암송을 위해 전 절인 121장 1절부터 시작하지만 나는 그냥 한 절만 외우기로 결정했다. 또 영어권에 살면서도 극히 한국적으로 살아온 일상이었기에 학기 시작을 앞두고 영어와 급하게 친해지기 위해 말씀을 영어로도 외우기 시작했다. 딱 한 절이라 이 또한 부담이 한결 적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말씀을 선포하며 내 삶이 주님의 말씀대로 변화할 것을 굳게 믿기로 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믿음도 일도 내 아이들도 더욱 성숙해질 테고 어느 날 나는 venerable, 연륜에 근거하여 존경할 만한 이란 뜻이니 한해 한해 나이들어가며 덕망 있고 존경받을 만하며 경건한 사람으로 존재하다 또 어느 날부터는 그렇게 기억되는 존재가 되어 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내 목표는 venerable이다. 그 과정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세부적인 계획은 그냥 주님께 맡길 예정이다. 다만 하루하루 말씀 한 절씩 암송하며 선포하고 살다 보면 오직 진리이신 말씀이 나를 그 목표에 데려다 놓으실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 내일의 말씀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든다. 굿나잇 주님! See you tomo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