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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Nov 17. 2024

그가 떠난 후(5)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가 떠난 후…나는 많은 분들의 위로를 받으며 그분들이 생각해 온 그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알고 있는 얘기들도 있었고 그랬었을 법 한 에피소드들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론 예상 밖의 얘기들도 꽤 듣게 되었다. 그가 완벽한 박애주의 자였을 리는 없지만 많은 분들이 들려준 그에 대한 얘기를 통해 그는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쓸 줄 아는 사람이었던가 보다. 그리고 와 같은 얘기들이 마지막 인사도 없이 그를 떠나보낸 나와 내 아이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20여 년 전 젊은 집사였던 그가 교회에 처음 나온 분들에게 베푼 친절은 그분들이 교회를 정하는데 영향을 끼쳤었다는 얘기에 몹시 놀라웠었고 영적 갈등으로 교회를 떠난 분을 가끔 찾아가 마음을 나누었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가슴이 뭉클했었다. 누군가는 “이젠 누가 교회에 들어설 때 반갑게 맞아줄까?”라며  눈물지으시기도 했고 누군가는 교회 이곳저곳에 출몰하여 특유의 농담으로 한 번씩 주변을 웃게 하던 모습이 그립다고도 했다. 사실 나는 그의 농담에 충분히 익숙하여 잘 웃어주지 않았고 그의 탁월한 오지라퍼적 기질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MBTI 검사를 통해 I성향이 확연했던 그가 어쩜 저토록 친화력을 발휘하는지 경이롭기조차 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는 짧게 생각하고 바로 움직이는 사람이어서 생각하고 계획하느라 밍기적 밍기적 결단을 미루는 나와는 극명한 반대 성향으로 어떤 일을 결정하고 진행할 때 늘 의견의 차이를 보이곤 했었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35년간 함께 남편과 아내로 아빠와 엄마로 살아왔었고  특히  아빠로서 그의 모습에 나는 늘 감사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예뻐하는 편이기도 했지만 언제나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변함없이 사랑을 표현하던 아빠였기 때문이다.


그가 떠난 후 그에게 온 연락에 답변하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모든 장례 절차를 마친 후 소식을 듣게 된 고정 고객들에게도 그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었나 보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모두들 큰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였고 그가 반드시 천국에 있으리라는 확신과 그의 성품과 성실함에 대한 얘기, 우리 가족을 향한 따뜻한 위로의 말들을 전해 왔었다.  그중 한 이라크 인 치과의사인 고객은 소식을 듣고 너무도 슬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그의 성품을 늘 존경했었고 그는 훌륭하고 친절했으며 다정한 사람으로 늘 그의 작업과 그를 신뢰했었고 다시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앞집 이웃인 키위 노부부는 그가 떠났던 무렵 여행을 다녀와서 늦게 그의 소식을 접했었는데 아들아이에게 너무나 가슴이 아파 우리 집을 바라볼 수도 없다고 했었다고 한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리의 35년간의 결혼 생활은 보통의 부부들의 관계가 그렇듯 늘 맑고 따스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은 차가운 바람으로 스산했고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했었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은 지금, 그 모든 차갑고 음산한 날들의 기억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는 거다. 하도 이상해 생각을 떠올려 보려는 시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다 부질없을 뿐, 오히려  이제는 그 또한 함께 살아있던 날의 추억으로 미소 짓게 뿐이다. 성향도 취향도 식성 마저도 참 많이 달라  이 처럼 맞지 않기도 쉽잖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가끔 서로 사이가 껄끄러울 땐, 기도 중  “하나님,  어쩜 이리도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만나게 하신 건지요?”라며 우리 케이스는 혹시 하나님의 미스 매칭이 아니셨냐고 따져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사진틀 속 그를 바라보며 얘기한다. “역시!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하나님이 옳으셨어요. 우린 정말 환상의 짝꿍이었어요. 감사합니다. 그의 아내로 살게 해 주셔서… 그를 닮은 두 아이를 주셔서…. 왜 그렇게 급히 데려가셨는지 여전히 많이 섭섭하지만 언젠가 이 또한 주님께서 알려 주실 줄 믿습니다.”   


사진틀 속 그는 늘 미소 짓고 있지만 어떤 날은 내 모든  슬픔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듯하고 어느 날은 미안한 듯 멋쩍게 웃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모든 순간 그의 미소는 나와 아이들을 향한 한없이 따스한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음을 확신한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MBTI의 I적 성향을 뛰어넘는 넘치는 사랑을 가진 사람, 그래서 모두와 화목하고 싶어 여기저기 유쾌한 농담을 투척했고 언제나 누구든지  돕기를 기뻐하던 기질적 오지라퍼였었다.  


나는 간혹 그가 오늘의 큐티를 했는지 내가 부탁한 기도를 했는지 율법에 엄격했던 그 옛날 바리새인처럼 점검을 하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는 정말 어리석고 방자한 나의 교만일 뿐이었다.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라 하셨는데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건데….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사랑이라는 초강력 무기를 장착하고 있는 그에게 참으로 어이없는 나의 잣대를 들이대곤 했었단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가 떠난 후 나는 많이 미안했었다는 말을 그에게 수도 없이 전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착하디 착한 미소로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듯하다. 오늘도, 그때도,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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