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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Nov 05. 2024

그가 떠난 후(3)

골육 같은 그들

벌써 두 달이 지났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여전히 그의 생각이 스치기만 해도 눈물이 차오른다. 그러나 지난 주일엔 그가 떠난 후 처음으로 손수건을 꺼내지 않고 예배를 드렸었다. 그날은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 있던 친구가 예배를 드리러 온 날이었다. 그가 떠나기 전, 그와 함께 그 친구 가족이 다시 예배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었는데 바로 그날을 맞게 되어 온 마음이 이 일에 쏠려 있었다. 감사함으로 벅차올랐고 주님께서 친구의 마음을 만져주시므로 평안의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기도했었다. 집을 나서기 전, 콘솔 위 사진틀 안에서 웃고 있는 그에게 “오늘 oo가 교회 오잖아. 우리 기도했었지? 그날이 왔어.

다녀올게. 사랑해.”


서로의 시간이 맞지 않아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했지만  예배 후 다른 친구들과 함께 교회 카페에 있던 그 친구가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


나와 그에게는 일곱 가정의 삼십년지기 친구들이 있다. 비슷비슷한 나이대의 남편과 아내들 그리고 자녀들로 처음에는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이었으나 몇몇 가정이 다른 교회로 옮겨가고 나서도 여전히 함께 하였고 이후 또 다른 가정이 들어오기도 하며 젊은 날부터 함께한, 이제는 골육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날 예배를 드리러 온 친구도 그들 중 한 가정의 아내이다. 딸아이와 함께 예배를 드렸으니 네 식구인 그 가정의 50%가 그날 예배를 드린 셈이다.


30대에 만나 소소하게나마 서로의 환갑파티를 챙기기도 한 친구들과는 여러 차례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우리 모임의 이름은 “가자! ”이다. 젊어서는 어린 자녀들과 몇몇 가정의 노모들도 함께 떠났었고 바비큐의 계절인 여름철에는 예배를 마친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가 바비큐 할 채비를 갖추고 약속한 공원에 모여 각 가정마다 준비해 온 재료로 점심을 나누곤 했는데 언제나 풍성해 저녁식사까지 너끈히 해결할 정도였다. 이때마다 바비큐에 진심인 그는 온갖 장비를 펼쳐놓고 자신의 고기 굽는 기량을 한껏 발휘하곤 했었다.


일곱 가정 구성원 중 가장 연세가 많으셨던 우리 엄마가 소천하셨을 때부터 “가자”친구들은 이국 땅에서의 장례 일정을 가족처럼 함께 해왔었는데 언제나 한 마음으로 살피고 도우며 슬픔을 함께 했었다. 특히 그때 무남독녀인 내게 그들은 모두 자매이며 형제인 한 가족이었다.


부모님이 아닌 친구가 소천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날 새벽, 아들아이가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이 사는 친구 가정에 연락한 후, 일곱 가정의 남편과 아내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었다. 그리고 아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모든 장례 일정 동안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함께 하였고 친정의 일로 한국에 가 있던 친구도 매일 보이스톡으로 안부를 물었으며 그 남편은 그가 떠났던 그 날밤, 우리 집 거실에서 침낭을 펴고 새우잠을 청하며 남겨진 우리 가족을 지켜 주었다. 남편들은 집으로 돌아가 친구를 잃은 슬픔에 목놓아 울기도 했었다고 한다.


나의 고등학교적부터의 친구는 미국에 살고 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기도 제목도 여전히 함께 나누고 있는 자매와도 같은 친구이다. 그날 밤, 그쪽 시간도 알아보지 않고 대뜸 보이스톡을 했다. 몇 시였을까? 잠결에 전화를 받은 친구는 분명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한 듯 차분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급하게 항공편을 찾아 세 번의 경유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주었다. 그 친구와 함께한 시간부터 우리는 가정 예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서로 붙들고 울고만 있었을 우리 세 사람에게 변화한 환경 가운데 바람직한 루틴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었다.


두 달 남짓까지 친구들과 교회 식구들의 위로와 방문은 이어졌었다. 한 친구가 내 주간 스케줄을 정리해 줄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여전히 직접 혹은 친구를 통해 방문과 만남을 조심스레 묻고 있지만 지금은 일단 완곡히 사양하고 있다. 그날 이후, 체력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여러 가지 정리해야 할 일들을 더 이상 미뤄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자”의 아내들인 친구들은 따로 약속을 정한 것도 아닌데 각자의 시간에 나와 통화를 하고 있다. 한 친구는 아침 출근길 혹은 강아지 산책길에 전화를 해온다. 오늘의 날씨, 특히 체감 온도를 정성껏 브리핑하고는 오늘의 옷차림을 제안하기도 하고 산책을 권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제 하루 동안 있었던 특별한 일과 기도제목을 함께 나누기도 하고 서로의 오늘 하루를 축복하며 통화를 마친다.

한 친구는 저녁 시간대이다. 저녁 식사는 했는지 묻고 오늘 하루 내 안부를 묻는다. 대학 동창인 이 친구와는 함께 이민 와 어느덧 40여 년간의 인연이다. 제 몸이 약해선지 특히  건강문제에 예민하여 나와 아이들의 건강을 살피며 늘 마음을 써주고 있다. 장례 일정 동안 친정일로 한국에 다녀온 바로 그 친구인데 우리 식구를 위해 기력을 보강해 줄 환약을 지어오기도 했고 돌아와서는 제 단골 한의원에 데려가 내게 보약을 지어주었었다. 밤 시간 내내 통화를 하고 또 내일을 기약하며 통화를 마친다. 또 다른 한 친구는 한동안 기억도 생각도 정함 없었던 나의 주간 일정을 정리해 주었던 바로 그 친구이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나의 상황을 배려한 이들은 내게 직접 연락을 해오기보다는 이 친구를 통해 내 안위를 묻고 조심스레 방문이나 만남의 여지를 묻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는 쉼의 시간과 만남의 시간을 적절히 나누어 정리하여 만남의 시간에는 어김없이 함께 하며 마음을 나누어 주었다. 가끔 설움이 복받쳐 전화를 걸어 실컷 눈물을 쏟아낼 때, 묵묵히 들어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얼마 전 갑상선 결절 제거 수술을 받은 친구도 오히려 내 안색을 걱정하여 육개장 한 냄비를 끓여다 주었다. 나는 이렇게 모두의 걱정거리가 되어 버렸지만 지금은 별 수 없이 그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언젠가 내가 온전히 서는 날, 나도 그들에게 마음 다해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그의 친구들인 “가자”의 남편들은 한 친구의 제안으로 늘 그들이 모일 때, 그를 위한 자리를 비워두기로 했다고 한다. 친구를 잃은 그들 나름의 쓸쓸한 의식일까? 그들의 사랑에 또 목이 매인다. 가끔 말도 걸어주면 어떨지...


유난히 날씨가 맑았던, 그날 이후 처음으로 손수건을 꺼내지 않았던 주일 예배 후, 집으로 돌아가던 차 안에서 나는 어느덧 눈물이 차올랐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oo가 왔었어. 정말 감사하지! 우리 기도했었잖아. 당신 많이 안타까워했었고. 잘했어. 수고했고. 보고 싶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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