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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Oct 24. 2024

그가 떠난 후(1)

남겨진 사람의 자리

그가 떠난 후, 딸아이와 한 침대를 사용하고 있다. 그와 함께 살 때에도 서너 차례 그가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나 교회 일정인 당회 리트릿을 갔을 때마다   딸아이와 함께 자곤 했어서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그가 떠난 후,  딸아이가 그의 자리로 잠자리를 옮겨와 주었다.  


딸아이는 올해 서른네 살이 되었다. 허니문베이비로 우리에게 와 준 고맙고 소중한 우리의 첫아기였다. 두 살  반에 부모 따라 이민 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유치원 시절부터 자신만의  이민 생활을  겪었던 아이에게는 특별함 마저 있었다. 세 살 생일 무렵, 이곳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아스퍼거스 신드롬으로 진단을 받았던 거다. 그즈음 나는 매일매일이 눈물의 나날이었다. 기도하다 울고 밥 짓다 울고 차를 타고 가다가도 울고 블록 놀이를 하느라 동그마니 앉아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도 눈물을 훔쳤다.


그런데 그는, 늘 싱글벙글  웃는 얼굴의 그는, 슬픔 알러지가 있는 사람처럼 누군가 울고 있을 때 좌불안석이다.  어느 날인가는 눈물짓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신의 엄지와 검지로  내 눈꺼풀을 모아 짜며 " 오늘 요 눈물 다 짜버리자"고도 했었고 드라마에서 연인 간의  클리셰 인  연인의 입술에 검지를 펴 들고 "쉿! 이젠 그런 얘기 안 하기로 해"에서 차용한 듯 자기 검지를 내 눈에 세로로 워 대며  "뚝! 이젠 우리 그만 울기로 해."라고  하기도 했으며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시절과 무관하게  캐럴을 부르며 달래기도 했었다.


이민 와 3년 만에 미국에 사는 내 사촌오빠 집을 방문했었다. 오빠와 그는 한 살 차이로  결혼 전부터 가까이 지내던 사이였다. 어느 날 오빠와 그가 단둘이 외출을 했었는데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아 사촌올캐가  수소문을 하다 그들을 찾아냈다. 오빠가 운영하던 식당 건물 뒤켠에서 발견된 두 사람. 사촌오빠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나와 친구였던 그는  결혼 후, 가장이  되어 무슨 일에든 덤덤한 듯  잘 참아왔었는데  서른네 살 젊은 아빠로서 예상치 못했던 아이의 장애로 그의 슬픔의  댐에는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고  그간  쌓였던 눈물을 가두어 온 슬픔의 댐이 한 살 많은 집안 형님을 만나  그렇게 터졌던가보다.  이후로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나는 여전히 간헐적 울보였고 그는 묵묵히 위로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이후로는 다시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다시 안경을 고쳐 쓰며 눈물을 훔친 날이 있었다. 다사다난과 희비교차를 거쳐 딸아이가 대학을 졸업하던 날이었다. 수많은  졸업생과 께 아이가 단상으로 올라가  학사 학위를 받을 때였다 동영상을 찍던 그는 안경 너머로 주르륵 흘러내린 눈물을 무심히 훔쳤었다.

 

졸업 후에 부단히 도 이력서를 보냈으나 아직 취직을 하지 못한 딸아이는 교회와 여러 기관에서 볼런티어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항상 딸아이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다소 감정이 북받치는 듯 목소리가 떨리곤 했었다. " 살아가는 동안 더 이상은 부당하고 불공정한  대우받지 않게 해 주시길. 좋은 사람들과 안전한 곳에서 복된 일을 하게 하시길, 마음 따뜻한 믿음의 배필을 만나 사랑 넘치는 가정을 꾸리게 하시길..."

그는  언젠가부터 딸아이를 부를 때 이름에 씨(氏)를 붙여 부르곤 했다. 이미 성인인 아이가 가끔은 장애로 인해 적절히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몹시 마음 쓰였던가보다.  딸아이와 우리 침실은 2층에 있어 그는 늘 귀가하여 2층으로 올라오면서  "oo 씨~"라고 그의 특유의 운율을  태워 딸아이의 이름을 부르곤 했었다.


 늘 아빠, 엄마를 다정히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주던 딸아이는 이제 아빠의 부재를 견디고 있다. 콘솔 위에 웃고 있는 아빠 사진에 눈을 맞추며 "아빠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너무너무... 내가  매일 엄마랑 자고 있어요. 알고 있죠?"라고 말하고 사진 속 아빠를  그 착하디 착한 미소로 한동안 바라본다.


딸아이는 예전보다 더욱 내 안위에 마음을 쓰고 있다. 기침 소리에도 어느새 달려와 내 컨디션을 묻는다. 가끔 함께 외출할 때에는 유난히 내 곁을 지키 듯  꼭 붙어 있곤 한다. 아마 지금은 내게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자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에게 고맙다. 착하디 착한 그의 마음을 꼭 닮은 딸이 내 곁에 있어서.... 침대 맞은편 널따란 창문 너머  하얀 구름이 펼쳐진 유난히 푸른 이곳의  하늘을  바라보며 그곳 어딘가에 있는 그에게 오늘도 고맙고 사랑한단 내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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