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by 이재이




다음 날이 되자 몇 시에 전화를 걸지 고민이 되었다. 그보다도 전화를 걸지 말지부터가 고민이었다. 거는 것이 좋을까, 걸지 않는 것이 좋을까. 걸고 나면 후회할까 걸지 않으면 후회할까.

자자, 후회의 총량을 따져보자. ‘미래의 후회’에 대한 총량을 예상해보잔 말이야. 1초 만에 너무 의미 없는 짓이란 걸 깨달아서 집어치웠다. 그리 길지 않은 고민 끝에, 본래 나의 신조(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할 거면 하고 후회하자)에 따라 전화를 하기로 했다. 점심시간을 피하고 나니 3시쯤이 되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좀 빈둥대다가 너무 늦어지는 것 같아 냉큼 번호를 눌렀다. 통화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웬일인지 망설여졌다. 이상하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더 지체할 수 없어 눈을 질끈 감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얼핏 시계를 보니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여보세요.”

너무 오랜만이다. 여보세요, 하는 이 목소리.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이 목소리. 여, 보, 세, 요. 이 작은 기계 안에서 이 짧은 4음절의 소리를 듣는 일.

“어, 여보세요? 내가 좀 늦게 전화했나?”

“아냐. 어제 잘 잤어?”

아니, 라고 순간적으로 대답할 뻔했다. 잘 잤을 리가. 밤새 꿈을 꿨고 밤새 뒤척거렸다. 꿈속에서 우리는 같이 온 동네를 뒤졌다. 중학교, 굴다리 밑, 너의 집 앞, 우리 집 앞, 편의점 앞, 카페 앞 주차장, 구석구석 온 동네를 누비면서 알 수 없는 보물찾기를 했다. 무엇을 그렇게 찾아 헤맨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찾지 못했지만 우리는 손을 잡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았다. 그러다 깨고, 다시 잠들면 장소를 옮겨서 우리는 헤매고, 찾고, 빈손으로 다른 장소로 옮겨가고, 그것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잘 잤냐고 묻는 목소리가 너무 차갑고도 따뜻해서, 무심한 듯 애정이 담겨 있어서 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응, 잘 잤어. 넌?”

“난 잘…”

거기까지만 들렸다. 애초에 거기까지만 말한 걸지도 모른다. 잘 잤다는 건지 잘 못 잤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잘 잤다는 걸로 받아들였다(아니, 실은 그 반대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1초가 아주 길게 느껴졌다.

“우리 그냥 놀자.”

담백한 제안이었다.

“뭐하고?”

“영화 보고 커피 마시고 뭐 그렇게.”

영화 보고 커피 마시는 건 우리가 가장 많이 했던 일이자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너랑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래, 놀자.”


그래서 놀게 됐다.

우리는 영화관으로 향했다. 5년 전에 같이 봤던 영화가 재개봉을 했다.

“위플래시 또 볼래?”

“그럴까.”

영화가 시작되자 5년 전에 이 영화를 본 후 대머리 교수를 하루종일 따라 하던 네 모습이 잔상으로 남아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됐다(원앤 투앤 노놉! 하던 그 모습). 계속, 계속해서.

영화 두 편을 동시에 보는 기분이었다. 눈으로는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영화를 보면서도 머릿속의 너와도 씨름해야 했다. 두 명의 플레쳐 교수가 나를 괴롭혔다. 그 와중에도 러닝타임은 흘러 흘러 영화가 무사히 끝났다.

“다시 보니까 너무 잔인하다 영화가.”

“그래? 나는 교수가 일정 부분 그래도 앤드류한테 도움을 준 거 같애. 저 교수가 없었다면 앤드류가 그렇게 자기 한계를 부술 수 있었을까.”

너는 제법 냉철하게 말했다. 원앤 투앤 노놉! 하던 5년 전의 너는 어디 갔는지, 플레쳐 교수의 행동에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너무 폭력적이야. 정신적 폭력을 휘두르면서까지 그렇게 몰아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다시 보니까 열정보다는 광기가 느껴져서 좀 섬뜩해. 앤드류도 불쌍하고. 희생당한 것 같아.”

“음, 그래? 나는 5년 전에 봤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보니까 안 그렇네. 뭐든 한계를 부순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라고 묻고 싶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정확히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5년 전의 나는 <위플래시>를 보며 일종의 ‘동기부여’마저 받았던 것 같은데. 와, 나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미쳐서 내 한계를 부숴야지! 그렇게 다짐했던 것 같은데, 5년 만에 다시 보는 영화에서는 그런 생각보다도 플레쳐가 미친놈이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드럼 스틱 사이로 피가 뚝뚝 흐르는 장면보다도, 플레쳐가 앤드류의 정신을 마구 헤집어 놓을 때가 훨씬 더 폭력적이고 참담했다. 앤드류가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비록 미친 듯이 연주를 하고 있었지만, 그 장면이 경이롭고 멋있었지만, 그는 찢겨있었다(라고 나는 느꼈다).

5년 동안 우리는 변했다. 같은 영화를 두 번 봤는데 그때와 지금의 감상이 정확하게 엇갈리는 것이 신기하고도 재밌었다.

그래, 시간이란 이런 것이지. 앤드류를 안쓰러워하던 너는 플레쳐를 이해하게 되고, 플레쳐를 보고 일종의 영감을 받던 나는 앤드류의 상처에 공감하게 되었어.

이해 못 할 일도 시간이 지나면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하겠다고 생각했다. 한 명만 바뀌면 모르는데, 둘 다 바뀌면 다시 또 어긋날 수도 있겠다, 그렇게 계속 어긋날 수도 있겠다, 영영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었다. 데굴데굴. 뒹구르르.

“이거 실화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음악 고등학교 재즈 오케스트라 드러머였는데, 지휘자한테 두려움을 느꼈던 자기 얘기를 바탕으로 만든 거래.”

내가 말하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어디까지가 실화인 거지? 그냥 소재나 상황 정도만 따온 거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저런 교수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잖아.”

“그러게.”

이후, 데이미언 셔젤은 <라라랜드>라는 작품으로 대박이 났다.

“우리 라라랜드도 같이 봤었지?”

“응.”

“감독 인터뷰를 봤는데, 라라랜드 처음에 제작사에 투자받을 때 엄청 말이 많았대. 뮤지컬 형식을 바꾸라는 둥 새드엔딩을 바꾸라는 둥.”

“아 그래?”

“응, 근데 결론적으로 감독이 고집대로 밀어붙였고, 뮤지컬 새드엔딩 영화로 유명하잖아.”

“그러게.”

“근데 또 이게 사랑의 관점에서는 새드엔딩인데, 꿈의 관점에서는 새드엔딩이 아니래. 둘 다 꿈을 이뤘으니까 해피엔딩인 거지.”

“그래?”

너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랑이 없는데 꿈이 이루어진들 무슨 해피야. 결국엔 새드지.”

그렇게 말하는 네 표정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 나는 주변 공기가 살짝 차가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긴, 사랑이 없는데.”

나는 대충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제법 낭만적인 로맨티스트라도 되는 척을 하며 돈이니 명예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의 서열과 가치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내가 진실되게 말을 했는지 자기 검열에 실패했기 때문에 딱히 기억에 남기지 않기로 했다.

그때 미세하게 먼지 같은 것들이 날렸고, 그게 눈이라는 걸 알아챘다.

“어, 첫눈이다.”

좀처럼 눈이 오지 않는 고향에 눈이 내렸다. 그것도 무려 올해의 첫눈이었다.

“우리 전에 떡볶이 먹다가 첫눈 본 거 기억나?”

“응, 기억나.”

그때 네가 엄청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었기 때문에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 같이 첫눈 봤다, 첫눈! 하면서 사진도 엄청 많이 찍었었지. 눈이 너무 미세하게 날려서 사진에는 담기지도 않았지만 너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동영상도 찍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첫눈 보면 사랑이 이루어진대! 라고 어린아이처럼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몇 년 만에 다시 또 첫눈을 보게 됐다. 신날 여력이 없었다. 10년 전과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아도, 우리의 관계가 사뭇 다른걸.

“추운데, 술 먹을래?”

술 먹을래, 라는 질문을 네가 하다니. 널 다시 마주친 이래로 아마 가장 충격을 받은 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가 술을? 원래 술 마셔? 언제부터? 이제 잘 마셔? 근데 나는 여전히 못 마시는데 괜찮아? 갑자기 술은 왜? 이따위 질문들을 다 쏟아내다가는 물음표 살인마가 될 것 같아 한숨 고르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