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물음이었다. 도둑질 중인 도둑에게 “이봐 당신! 여기서 뭐 해?”라고 묻듯, 네가 여기서 대체 뭐하냐는 눈빛이었다.
“어? 어어! 어, 안녕!”
나는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뜬금없이 ‘안녕’이란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역시 지나친 시뮬레이션은 해롭다. 무의식중에 깊숙이 뿌리내린 ‘재회에서의 첫인사는 안녕’이 기어코 입 밖으로 나온 순간이었다. 완벽하게 하려면 나는 밝게 웃으며 산뜻하게 인사해야 했으나, 거의 ‘어휴 깜짝이야.’와 같은 톤에 말만 바꿔서 그저 뱉었을 뿐이다. 듣는 사람이 당황스러울 만큼 이상하게.
“어? 어…….”
네가 당황하고 웃음을 참는 게 보였다. 안녕에 대한 대답이 ‘어’라니 잘 들었어. 하지만 나라도 그랬을 테지. 네 잘못이 아니야. 근데 나 제발 정신 좀 차리자.
“나 진짜 오랜만에 내려왔어. 너는? 잘 지냈어?”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고 질문다운 질문을 했다(라고 혼자만 생각 중이다).
“나도 오랜만에 내려왔어. 오랜만이다.”
너는 잘 지냈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하지 않았다. ‘오랜만이다.’라고 하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오랜만이라는 말은 정말 오랜 시간 만에 다시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맞아, 우리 오랜만이지.
거의 매일 보던 사이에서 일 년에 한 번도 안 보는 사이가 됐다가, 어쩌다 이렇게 사고처럼 마주쳤다. 택시 타기를 한 번에 성공했어야 하는데. 택시 타기에 실패해서 이렇게 맞닥뜨린 채 ‘오랜만’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어, 오랜만이다. 정말.”
잠시 말이 없었다.
“어디로 가? 집으로 바로 가?”
“응.”
나는 내가 든 종이봉투 안에 든 것이 네가 준 편지함이란 걸 들킬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아니, 실은 온 신경이 거기 집중돼 있었다. 어, 이건 뭐야? 하는 물음이 나올까 봐, 나는 필사적으로 티 안 나게 그걸 숨기고 있었다(라고 믿고 싶다).
“그럼 같이 택시 탈래?”
나는 응 이라고도 아니라고도 하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그래, 하고 쿨—하게 말 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은 기분도 들었다. 아니, 그냥 나 혼자 갈게.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뭐 그렇게 불편할 일도 아니었다. 괜히 내가 혼자 가겠다고 하면 그를 의식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아 잠시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줄게.”
너는 내가 든 큰 종이 가방(실은 자신이 쓴 편지들이 가득가득 담겨 있는)을 툭 뺏어 들고는 택시를 잡았다.
나는 거의 뺏기다시피 짐을 건네고, 네가 나를 본 처음부터 그 상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모를 수가 없지. 어떻게 모르겠어. 네가 준 상자인데(이 상자 꽉꽉 차도록 내가 편지 자주 써줄게라는 말과 함께).
나는 그렇게 그와 같이 택시를 탔다. 너는 능숙하게 우리 집 주소를 말했다. 이윽고 우리 집에 도착했고, 너는 짐을 다시 내게 건네며 말했다.
“이거 꽤 무겁네.”
그러면서 얼핏 씁쓸하게 웃는 것이 보였다. 나는 속절없이 슬퍼졌다.
“어, 그렇지, 무겁지!”
슬픔을 감추려다 되려 너무 경쾌한 톤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오늘은 혼자서 시트콤 한편 찍느라 정말 고군분투하는구나 싶었다. 각본, 연출 다 꽝인 엉터리 시트콤이 마음대로 촬영되고 있었다. 주연은 나. 바람에 머리카락이 나부끼듯이 주인공은 주체를 못 하고 시트콤을 누빈다. 주인공은 생각한다. 컷은 언제 하나요?
“내일 뭐 해?”
컷.
너의 질문이 나를 망할 시트콤에서 도려내 다시 현실로 데려와 주었다. 그건 참 고맙지만, 질문이 너무 어렵네. 내일 뭐 하냐니. 그냥 집에서 쉴 건데. 곧이곧대로 말해야 하나, 아니면 뭐라도 지어내야 하나, 이 말을 하는 의도는 뭐지? 내일 보자는 건가, 아닌가. 너무 깊게 생각하나, 빨리 대답해야 하는데.
“내일 그냥 뭐…”
“뭐 없지?”
“오랜만에 집에서 좀 쉬고, 어, 또…”
“뭐 없네.”
확신에 찬 목소리. 그래, 뭐 없다.
“그럼 내일 보자. 연락할게. 잘 들어가.”
아니, 언제부터 이렇게 막무가내가 됐지. 좀 낯설었다. 아까 나를 불러 세웠을 때부터, 내 짐을 뺏어 들었을 때, 택시를 같이 타자고 했을 때, 그리고 지금 이렇게 내일 보잔 말까지. 하나같이 다 자기 맘대로잖아. 항상 나한테 맞춰주고 나를 배려하느라 평소에 내 눈치를 많이 봤던 너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참 낯설었다.
그 막무가내가 무례하게 느껴져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나와 연락하지 않고 지냈던 그 몇 년 사이 이토록 변했다는 것이 조금 슬프게 느껴졌다. 성격이든 분위기든 말투든 뭐든. 그렇게 익숙하고 친밀하던 네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저기.”
“응?”
“나 번호 바꿨어.”
너와 헤어지고 나는 한 차례 번호를 바꿨다. 그래서 네가 나와 헤어지고 내게 연락했는지 안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한 번도 안 했을 거라고 혼자 단정 지었다. 그래야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니까.
“아 그래? 그럼 네가 전화해. 아, 내 번호 기억 안 나려나.”
왜 안 나겠니. 그 번호를 몇 번이나 눌렀는데, 내가.
“아니, 기억해.”
“그럼 내일 너무 늦지 않게 전화 줘. 잘 들어가. 아 그리고, 부모님께 안부 전해드려.”
부모님께 안부는, 글쎄. 오늘은 전하지 않기로 했다. KTX에서의 만남에서부터 택시까지 하나하나 다 설명하기란 귀찮을 테니까.
“응, 고마워. 잘 가.”
나는 최대한 너의 뒷모습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