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으로 써서 글씨가 좀 귀여워도 이해해 주레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 편지는 7살짜리 어린애가 쓴 것처럼 삐뚤빼뚤한 글씨로 빼곡했다. 그가 손목뼈 골절로 오른손을 깁스했을 때 쓴 편지였다. 그 당시 그는 옷도 한 손으로 갈아입어야 했고, 샤워를 하는 것도, 머리를 감는 것도 모두 왼손으로 해야 했다. 글씨를 쓰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모두 하루아침에 왼손으로 바꿔야 했다.
계단에서 다리를 접질려 구르는 중에 반사적으로 짚은 오른 손목이 ‘살짝’ 다쳤다고 그는 간단하게 내게 말했었다. 이후 그가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하고, 깁스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게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짝’ 다친 것이 아니란 것도.
후에 그의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들은 바로는, 오른쪽 손목뼈에 살짝 금이 간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가루가 될 정도로 심하게 부서졌다고 한다. 그는 내가 걱정할까 봐 그 사실을 숨겼다. 병문안을 가려고 했으나 이래저래 바빴고, 그도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며 자기는 별로 아프지 않다고 만류했다. 그래도 그때 한 번쯤은 가서 밥을 먹여준다거나 등을 긁어줄 걸, 하다못해 손이라도 한 번 손을 잡아줄 걸, 하고 생각했다.
안 아픈 척하면서 매번 영상 통화를 하고(오른손은 깁스하고 왼손으로 핸드폰을 든 채로),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오른손잡이인 그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당장 공부부터 문제가 생겼겠지. 필기가 자유롭지 않게 되었으니. 오른손으로 쓰던 글씨를 왼손으로 연습하면서 차차 필기는 가능해졌지만, 아무래도 불편함이 컸을 것이다. 이 편지는 그가 왼손 글씨를 연습하기 시작해 능숙하게 왼손으로 필기가 가능해지기 전 그 어느 ‘과도기’쯤에 쓰인 것이다.
공부를 위해 글씨를 쓰는 것만 해도 충분히 버거웠을 텐데, 무슨 편지를, 그것도 세 장씩이나. 편지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그 당시 깁스를 하고 힘들어했던 그와 마침 그 시기에 너무 바빠서 무심했던 나의 상황들이 떠오르면서, 일말의 죄책감이 다시금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편지 속 그는 여러모로 속상한 일이 많아 보였다. 곧 이사 하는 내 이삿짐을 자기가 직접 들어주지 못해서, 그걸 도와주지 못하는 게 속상하다고 했다. 요즘 왼손 젓가락질을 잘하지 못해서 포크를 쓰는데 그때 데이트하면서 내가 음식 먹여줬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면서, 내가 먹여주는 거라 그랬는진 몰라도 너무 맛있었다면서. 나라는 존재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고맙게 느껴졌다는 그는 자기가 아픈 게 나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물론이거니와 나를 위해서도 아프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편지는 말하고 있었다. 나를 걱정시키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다고, 미안하다고. 내 짐을 들어준다든지 예쁜 글씨로 편지를 써준다든지 뭐 그런 일련의 일상적인 일들을 편하게 하지 못하는 게 이토록 속상한 일인지 몰랐다고, 재활 치료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많이 해서 빨리 낫겠다고.
거기까지 읽고 더 이상 읽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나밖에 모르고 나를 위한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다시 떠오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무엇보다도 그의 상태를 그의 글씨체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으므로.
나는 편지를 다시 편지 봉투에 넣고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흘리지는 말아야지. 여기는 KTX 안이니까. 이제 그는 많이 나았을 거야. 손목도, 마음도.
손바닥으로 눈을 지그시 누른 후 눈을 떴다. 그때 내 눈앞에 비친 모습에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말 그대로 내 눈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시신경을 의심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거 혹시 꿈인가, 하고 변연계를 의심했다. 내 자리 앞, 앞줄(5A)에 앉은 남자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뒤통수, 귀, 목선, 어깨, 모두 낯익은 모습이었다. 긴가민가하던 느낌은 이내 강한 확신으로 바뀌었다. 몇 년을 봤는데, 내가 잊을 수가. 물리적으로 너의 존재를 인식했으나 그걸 차치하고서도 직감적으로 너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너라는 걸 확실히 인식했음에도 너에게 좀처럼 말을 걸기가 힘들었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을 몇 번 상상한 적이 있다. 고향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일, 아니면 거리를 걷다가 정말 우연히 마주치는 일.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여태껏 너를 잊었다고 믿으며 지내오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의 나는 너를 지나치려다 말고 미소 지으며 “안녕.”이라고 간결한 인사를 건넨다. 밝고 가볍게. 그럼 너도 그냥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는 다시 “잘 지냈어?”하고 양심 없는 질문을 해대고 너는 인사치레라는 것을 알고 “응. 잘 지냈어. 너는?” 하고 되묻는다. “난 잘 지냈지.” 하고 웃는다. 우리가 정말 ‘잘 지냈는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순조롭게 대화가 이어진다.
그래, 잘 지냈다니 다행이네. 나중에 또 보자. 하고 우리는 그냥 가볍게 헤어진다. 오랜만에 고향 동네 친구를 만나듯, 몇 년 만에 친했던 학창 시절 동창을 마주치듯 그렇게, 간단하게.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역시나 현실은 상상을 배반한다. 나는 입에 지퍼라도 채운 것처럼 입이 무거워졌다. 얼떨떨하게 얼어붙은 채로 있다가 황급히 널브러져 있던 편지를 주섬주섬 다시 편지함에 넣었다. 그리고 편지함도 다시 종이 가방에 재빠르게 쑤셔 넣었다. 어휴, 정신 차려야지. 얼이 빠져서는 이게 뭐람.
상상과는 다르게 나는 숨고 싶었다. 당당한 태도로 밝고 가벼운 ‘안녕’은커녕 네가 혹시라도 뒤를 돌아 나를 보면 어쩌나, 우리가 혹시라도 이따가 내려서 마주치면 어쩌나, 같은 버스를 기다리면 어쩌나, 뭐 그런 생각들을 했다.
아, 그러면 일단 내려서 조심조심 숨어가다가 택시를 타야겠구나. 그런 멍청한 생각을 했다. 마음은 조마조마했고, 죄지은 사람처럼 네 뒷모습을 보면서 숨죽인 채 있었다. 이토록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던 순간은 없다, 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그렇게 느낀 순간부터 나는 KTX에서 내려 무사히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기까지의 짧은 여정을 무수히 머릿속에서 그렸다. 성공적으로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상이 필요한 법이지. 그래. 택시 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곧장 나가서, 그래, 그래.
무심한 KTX는 나의 마음 상태 따윈 고려하지 않고, 생각보다 빨리 나를 고향에 ‘떨구어’ 주었다.
얼마만의 고향이지. 하지만 이따위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다. 어서 짐을 챙겨서 나가야지. 나는 그의 뒤쪽에 앉아 있었으므로 그가 나간 후에 가려고 눈치를 보았다. 그런데 그는 뭔가 뭉그적대고 있었고 나는 차라리 내가 먼저 나가자 하는 생각으로 얼른 짐을 챙겨 그의 앞을 휙 지나쳤다.
얼른 KTX에서 내리고 얼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얼른 택시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얼른 택시를 타는 것까지가 내 계획이었는데, 도착한 정류장에는 택시를 타려는 승객들이 줄을 길게 늘어뜨리고 서 있었다.
아, 실패의 조짐. 그래도 괜찮아. 내가 앞질러 나왔으니 내 뒷모습을 보고 나인 줄 알아차리지는 못하겠지(나 역시 그의 뒷모습을 보고 1초 만에 그라는 걸 알아차렸다는 걸 그새 잊었단 말인가, 이럴 때 나는 필요 이상으로 멍청해진다).
최대한 완벽한 뒷모습으로 줄을 서 있자. 어서 앞의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서 내 차례가 왔으면 좋겠는데. 그때 내 바로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뭐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