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이 Aug 29. 2023

너의 역사를 들려줘




너의 역사를 보여줘, 들려줘, 알려줘


네가 좋아하는 장소, 음식, 영화, 책, 아지트, 습관, 잠버릇까지

너의 모든 취향과 기호를 알고싶어

나는 네가 궁금해






"나 그때 너 처음봤을 때 있잖아, 그때 니가 입고 있었던 옷이랑 신고 있었던 신발, 귀걸이까지 다 기억나.

신발은 나도 똑같은 거 있었거든. 알지? 그날 신고 있었으면 대박인데.


네 가방에서 쇼펜하우어의 책이 나왔을 때 나 놀랐어 되게. 나 그때 한창 거기 빠져있었거든. 그래서 내가 이런건 왜 읽어? 이렇게 물어보지 않았었나 그때? 그치.


내가 진짜 좋아하는 비밀스러운 장소 있는데 다음에 같이 가자.


난 평소에 진짜 기분 좋다가도 어떨때 갑자기 확 우울해지냐면……"



우걱우걱 과자를 먹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네 속얘기를 툭, 하면

나는 네 입가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사랑스럽다는듯 그 얘기를 듣는다.


그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아질 때까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우울의 순간'을 얘기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 아픔이 무게를 덜어내기까지 너에겐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그 시간의 무게를 헤아려보면서 오물오물 과자를 씹는 너를 지그시 바라본다.



그럴때 너는 너무 고독해보여서 애처롭기도하고

덤덤한 모습이 어른스러워 멋있어보이기도하고

어쩌구저쩌구 계속 쫑알쫑알 말하는 게 귀엽기도하고

몰라, 모르겠다. 그냥 너무 사랑스럽다.






나는 10시면 잠자리에 들기 바쁜 사람이지만,

너랑 있으면 밤 새는 것도 거뜬히 할 수 있다.


그래, 밤 새는 것 쯤이야. 얘기하다보니 벌써 날이 밝았네? 이런 식이다.

근데 다음날 너무 피곤하기 때문에 밤은...새지 말아야겠다고 매번 다짐한다.






달리기는 너무 정직해서 좋은 운동이다. 지구력이란 게 그렇다. 참 사랑과 비슷한 면이 많다.

처음부터 전력질주하면 얼마 못뛰고 숨이 차서 금세 지치고 만다. 또 너무 느리게 달리면 조금 지루하기도 하다. 호흡을 조절해가면서 일정한 페이스로 달릴 때, 오래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다. 충분히 달리다보면 쿵쾅쿵쾅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흥분이 되는데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달리다보면 지구력이 늘어서 처음엔 1km도 힘들다가 2km, 3km, 5km 차츰차츰 달리는 거리가 늘어난다.


사랑에도 지구력이 필요해. 페이스 조절도 필요하고. 처음부터 다 쏟아내면, 쉽게 지쳐버리고 결국엔 공허해져. 내 페이스를 지키자.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으면 목소리만으로도 네 표정이 그려진다.

웃고 있구나, 하는 게 느껴질 때면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너의 속눈썹과 보조개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많이 웃을수록 움푹 페일 너의 보조개.

눈을 찡그려 웃을 때면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눈가의 점.

너의 모든것이 너무 소중하고 아름답다.







숨기고 있지만 은연중에 삐져나오는 장난끼 넘치는 모습, 너의 뻔뻔함마저 나는 사랑해버린다.






이전 11화 밖엔 눈이 쌓였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