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체력이 많이 필요하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면 일단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그 생각을 머릿속으로 정리해야 하고, 언어로 다듬어 쏟아내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강박적으로 매일 달리기를 하는 걸로 유명하다. 좀 더 오래 글을 쓰고 싶어서라고 한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하나의 일상을 만들어 매일 반복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규칙을 따르는 일상이 안정감을 준다며. 하루키는 "나는 반복 속에서만 깊은 생각을 하고, 내면에서 창조적인 무언가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달리기란 단순한 체력단련, 운동루틴 그 이상의 것임이 틀림없다. 영감의 원천이자 떠오른 영감의 씨앗이 발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원동력인 것이다.
얼마 전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 역시 매일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 산책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루틴을 30년째 지키고 있다고 한다. 한강은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글을 쓰는 사람 이미지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고요히 책상 앞에 앉아있는 모습이지만 사실 저는 걸어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는 중의적 표현이다. 작가로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나아가는 여정, 그 과정에 있다는 걸 의미하면서 실제 매일 걷고 있기도 하니까.
한강은 매일 시집 한 권과 소설 한 권씩을 읽는데, 문장들의 밀도로 충전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좋은 인풋이 쌓여야 유의미한 아웃풋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니까 한강 작가의 루틴이 십 분 이해된다. 영양가 있는 좋은 문장을 꼭꼭 씹어 먹고, 나만의 감수성으로 잘 소화시켜 내가 쓸 수 있는 문장을 쓰는 일.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모두 지독한 체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작가 스티븐킹은 말했다.
"아마추어는 영감을 기다리고, 프로는 글 쓰러 간다."
정말 맞는 말이다. 은근히 글쓰기는 엉덩이 싸움인 것이다. 글쓰기야 말로 번뜩이는 아이디어 보다도 근성과 끈기, 성실함을 요하는 것 같다. 글을 쓰려면, 뭐라도 쓰려면 일단 책상 앞에 앉아야 한다. 손가락을 움직여야 한다.
머릿속에 아무리 많은 생각과 좋은 문장이 떠다니고 있다고 해도, 언어로 표현하지 않으면 원석을 썩혀두는 것과 다름없다. 언어로 다듬는 과정에서 감정은 객관화된다. 뭐든 언어로 만들어 뱉는 순간, 단순히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생각과 느낌, 문장과는 다른 어떤 '틈'이자 거리가 생기고, 나는 발화된 문장을 통해 그것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명상할 때보다도 샤워할 때 좋은 글감이나 생각이 자주 떠오르는 편이다. 수압이 센 샤워기로 따뜻한 물을 맞으면서 머릿속에 부유하는 생각들을 잡아 굴리고 정리한다. 그러다 보면 정제된 언어와 문장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새겨지곤 하는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서 '머리만 다 말리고 글 써야지!' 생각하며 머리를 말리면, 드라이기가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생각도 같이 말려버렸는지, 샤워 중에 떠올랐던 영감은 온데간데 증발하고 없다.
그래서 요즈음은 샤워 중에 영감이 떠오르면 머리에 물을 뚝뚝 흘리며 일단 휴대폰을 켜서 아이폰 메모장에 메모부터 해둔다. 나중에 보면 오타를 남발한 탓에 알아보기 조금 힘들 때도 있지만, 아예 생각이 증발돼 버리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어갈수록 꾸준히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절실히 깨닫는다. 30년 동안 같은 루틴을 고수하는 문학계의 거장들. 저 정도는 성실하고 꾸준히 노력해야 저런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거구나. 새삼 실감한다.
결국 뭐든 큰일을 하려면, 아니 큰일보다도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하려면 체력이 필요한 것 같다. 공부든, 일이든, 글쓰기든 뭐든. 하다못해 연애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현관에는 러닝화가 든 채 방치된 나이키 신발주머니가 나를 째려보고 있다. 매번 눈이 마주칠 때마다 외면해 버렸는데, 안 되겠다. 이 글만 다 쓰고 나도 오랜만에 달리기를 하러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