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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May 09. 2021

필명 이재이

할머니가 부여한 이름




사실, 내 이름은 이재이가 아니다.

본명은 따로 있다.





내 본명은 '이유정',

'이재이'는 나의 필명이다.



괜히 겉멋 들어서 작가 흉내낸답시고

'필명'을 굳이 쓰는 이유도 없진 않겠지만,

이 필명을 쓰게 된 연유를 알기 위해서는

내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주 어렸을 때 부터 꼬박꼬박 일기를 썼다.

초등학교 때 일기 말미에 선생님께서

한 두줄의 짧은 코멘트를 써주셨는데,

그걸 읽는 재미로

일기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생님께서 공감해주거나 칭찬해주면

그게 그렇게 짜릿하고 좋았다.


그렇게 일기를 열심히 쓰던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

중학교 때부터 '백일장'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중등부 산문부문에서 처음으로 '장원'을 하게 됐다.


최우수-우수-장려에 익숙하던 내가,

그렇게

장원-차상-차하-가작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 때 처음으로

우습지만 신문에 이름도 나고,

장원 작품들만 모은 책자에 글이 실리기도 했다.

작품집에는 심사위원 분께서

정성스레 심사평을 써주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작품집을 펼쳐,

심사평 부문에서 내 이름을 찾아

한 자 한 자 읽어나가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심사평에는,

'이유정 학생은 필히 훗날 멋진 작가가 될 것이다'

라고 써있었다.


'작가'가 될것, 그것도 '멋진', 심지어 '필히'.


확신에 찬 그 한 문장을 몇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정말, 내가 그렇게 될까?

정말?


일기장에 일기를 끄적이던 소녀는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장원을 수상했던 백일장에서 썼던 이야기는

다름아닌 '할머니' 얘기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백일장이 열렸고,

'사진기'라는 주제가 나왔다.


나는 그때 유행하던 소위 '디카'로

제일 처음 찍은 사진이

'할머니 사진'이었다는 얘기로 글을 시작했다.


뇌졸증으로 갑작스레 쓰러지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그게 할머니의 생전

'마지막' 사진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할머니 사진이 아무리 빛이 바랜다하더라도,

내 마음 속의 할머니는 웃고 계신 그 모습으로

영원히 빛날 거라는,

그런 학생스러운 감상이 담긴 글이었다.





할머니와는 어린시절부터 같이 살았다.

부모님께선

할머니께 꼬박꼬박 예의를 차리길 강조하셨지만,

나는 할머니랑 거의 친구처럼 지냈다.


할머니께서는 항상 나를 '재이'라고 불렀다.

경상도 분이라서 '유정이'를 '유제이'라고 하다가

극도의 경제성을 추구하는

경상도 사투리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해

점차적으로 축약되더니,

'재이'로 굳어졌다.



"학교 다녀왔습니다."하면,


"우리 재이 왔나."

하고 반겨주시던 할머니.



"우리 재이, 우리 재이 왔나."


초코파이나 요구르트를 쥐어주시던

그 쪼글쪼글하고 거칠거칠한 손,

투박하지만 왠지 모르게 따뜻했던 손.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혼자 할머니 방문을 열어 보았다.

방 안에는 아직 할머니 냄새가 베어 있었다.

'우리 재이 왔나.'하는 환청이 들리는 듯 했다.


할머니 냄새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하고 방문을 닫으며 나는 눈물을 훔쳤었다.




장례식에서 한 줌의 흙이 되는 할머니를 지켜봤다.

그때 아빠의 눈물도 처음 봤다.

아빠도 눈물을 흘리는 구나,

아빠의 눈물.


엄마도 울었다.

나도 울었다.



장례식을 치르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학교에서 밝게 지냈지만

사실 나는 할머니가 무척 그리웠다.



'죽음'이 무엇인지 완벽히 알기엔 어린 나이였지만,

자연으로부터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다름아닌 죽음이라는 것을,

그때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 같다.



이따금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이유없이 든든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이전에는 느껴본 적 없던 낯선 것이었다.


그래서 그 장원이라는 상이,

할머니가 준 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글을 쓰게 되면,


필명을 '재이'로 하겠다고.



나는 이 씨니까 '이재이'다.






그렇게 이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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