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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Oct 06. 2021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의 모순

좋아하는 일도 '일'이 되면 싫어지는 아이러니



흔히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그런데 참 기묘하게도

그 좋아하는 일이 밥벌이가 되면 

더 이상 마냥 '좋아하는 일'이 될 수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참 좋아했다.

"오늘은 가족들이랑 라이온 킹을 보고 

양념치킨을 시켜먹었다. 참 재미있었다."

는 단 두 줄의 그림일기를 시작으로,

자물쇠를 열어야 했던 비밀 일기장을 거쳐

나만의 폴더에 차곡차곡 글이 쌓이기까지

참 꾸준히 글을 써왔던 것 같다.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기도 했고

나 혼자 쓰고, 읽고, 위로받는 과정 모두 좋았지만

무엇보다 단 한 가지 이유를 뽑자면


그냥, 좋아서.

 




방구석에서 일기 정도 끄적이던 나는

이후 적극적으로 백일장에 참가하기도 하고,

학교 대표로 문화재도 나가면서 여기저기 글을 썼다.

물론, 싸이월드도 하고... 뭐..

(아, 옛날 사람 너무 티나 버린다.)


내 학창 시절엔 삼류 로맨스 소설이 유행했는데

그런 귀여니 삘(?)의 소설을 써서

쫄대 파일에 끼워 학교에 들고 가면,

반 친구들이 순서를 정해 돌려보곤 했다.

(나름 순서 싸움이 치열해서 친구들이 가위바위보 해서 먼저 보는 순서를 정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걸 보겠다고 가위바위보 했던 친구들이 고맙고 또 귀여워 죽겠다. 진짜 '병맛' 소설이었을 텐데).

내 이름도 소설에 등장시켜줘, 하며

마이쮸를 슬쩍 건네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한 번은 친구가 수업시간에 내 소설을 읽다

선생님께 발각되었고,

선생님은 누가 봐도 허술한 '쫄대 파일 소설'의 출처를 물었다.

결국 나는 그 불온한 서적(?)의 저자임을 순순히 자백했고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그 소설을 소리 내 읽기 시작했다.

내가 쓴 하이틴 로맨스 소설이

50대 남성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의해 읽혔던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나는 제법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사춘기 소녀는 감수성이 매우 예민하니까)

선생님의 행동이 약간 폭력적인 방식이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후 국문과에 진학하면서

내 글이 강제로 읽히는 일 따위는 일상이 됐고,

그걸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향해

코웃음을 치게 됐다.



거의 모든 전공 수업에는

글쓰기 과제가 있고

교수님은 기분에 따라(?) 수업시간에 발표를 시킨다.

갑작스러운 지목에 

"예? 갑자기요?"

하며 당황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저 시키는 대로

내가 쓴 글을 읽으며

뭐라 뭐라 발표하고,

(입으로는 열심히 발표하는 와중에 머릿속으로는

어? 내가 이런 문장을 썼다고? 아이고 이거 혼나겠구만, 하는 생각을 한다)


발표가 끝나면 정말 하고 싶지 않은 한마디를 한다.


"질문받겠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무한 폭격.

나는 학우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너덜너덜해진다.

교수님께도

처음 칭찬 한마디(지적을 위한 명분)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길고  지적을 받으며 대표로(?) 까인다.



그래도 나는 그런 시간이 즐거웠다.






그런데 글 쓰는 일로 '돈'을 벌다 보니 사정이 달라졌다.

좀 더 명료한 표현으로,

좀 더 쉽고 간결하게,

어떻게 하면 더 '잘' 쓸지를 고민하다 보니

글 쓰는 과정을 즐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글을 쓰고 나서도 피드백에 따라

이랬다가 저랬다가 

이 사람 저 사람 입맛에 맞추려다 보니 

종국에는 딱히 거슬리는 것은 없으나

임팩트도 없는,

이도 저도 아닌 밋밋하고 개성 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고치고 또 고치고

검열하는 과정 속에서 너무 피곤하고, 지쳤고,

'상업적 글쓰기'에 환멸이 생겨 

글쓰기 자체가 싫어지기도 했다.


역시 좋아하는 일은 '평생 취미'로 남겨둬야 하는 건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면서요.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일이 되면 좋아지지가 않는데 이 무슨 모순입니꽈!!!

원망을 토로해봤자 소용없었다.


절대 싫어지지 않을 것 같던,

내 인생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했던 글쓰기가 싫어지다니.



그렇게 잠시 글쓰기와 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감정마저 

다시 '글'로 위로받는 나를 보면서 생각했다.


"글쓰기와 나는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이구나,


이미 한 굴레로 묶여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구나."

 




무슨 일이든 '일'이 되면

마냥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잘 해내야 하기 때문에

마음가짐 자체가 이전과 달라짐은 어쩔 수 없다.


어떤 일이든 힘들지 않은 일은 없고,

언젠가 반드시 지치는 순간이 온다.


그때 정말 '좋아하는 일'이어야

지치고 힘든 그 마음을 재정비하고

다시 버티고 견딜 수 있다.

포기해버리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글이 꼴도 보기 싫다가도

머지않아 글을 읽고 쓰고 즐기는 나를 보면서

되든 안되든,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처음의 순수한 그 마음으로

글쓰기를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고 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임은 영락없는 사실이니까.


소소하게, 꾸준히, 평생에 걸쳐 '글'을 쓰면서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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