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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May 07. 2021

난 또 기대하고 기꺼이 실망해

 


너는 기대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줬지.

그래서 나는 매번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덕분에 감정에 있어서도 철저히 계산하게 되었어.    누가 더 절박하고 간절한지 무관심하게 되었어.

그런 건 쓸데없는 감정 낭비라고, 다 소용없는 피곤한 일이라고 치부하면서 뭐든지 ‘적당히’ 신경 쓰게 됐어.


 적당히 기뻐하고 적당히 슬퍼하고 적당히 고마워하고 적당히 미안해하고 적당히, 적당히, 적당히-.






 근데 사실 나는 속으로 태풍이 휘몰아쳤던 적이 많아. 다 던져놓고 너에게 달려가고 싶었던 적도, 그냥 네 품에 안겨서 엉엉 울고 싶었던 적도 서운하다고 징징대고 싶었던 적도 숱하게 있었지만,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되었어.

 그랬던 나 자신을 미성숙하다고 생각하고 자책했었어. ‘덤덤하다’의 동의어가 ‘성숙하다’는 아닌데 말야. 무뎌지는 것만이 대수는 아닌데 말야.


 근데 그걸 너무 늦게 안 거야.


사랑에 있어서 절박하게, 솔직하게, 열정적으로 임하는 것. 감정의 소용돌이에 기꺼이 휘말리는 것.

그게 훨씬 더 용기 있는 일인데 말야.


 나는 오로지 내 탓만을 한거야.


네가 나한테 어떻게 했든 그건 이제 다 상관없는데, 그때 나에게 그렇게 대했던 ‘나’ 자신은 아직 좀 싫다. 하지만 용서 하고 있는 중이야. 나를 스스로 좀 더 믿어주려고 하는 중이야.






 너는 네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넌 겁쟁이야.



너는 내가 너무 뜨거운 사람이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넌 뜨거워질 줄 모르는 사람이야.


 상대의 온도에 놀라서 차갑게 식어갈까 봐 혹은 그 온도 차에 추워서 덜덜 떨게 될까 봐, 달궈지는 것조차 겁내는 겁쟁이.






 너는 무관심을 배려로 포장하곤 했지.

나는 적어도 그렇게 비겁하게 굴진 않아.


그게 너와 나의 차이야.



 그리고 나는 앞으로 다른 누굴 사랑하더라도, ‘기대’를 할 거야. 그 과정에서 실망하고 상처받더라도, 나는 기꺼이 ‘절박하게’ 사랑할 거야.

 상대와의 온도 차에 벌벌 떠는 한이 있더라도 기꺼이 그 추위 속에서 견딜 거야. 내가 한 발 더 가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내 감정이 그렇다면, 그렇게 할 거야.




 그리곤 영영 후회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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