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셋, 올라이트
손으로 글씨를 쓰는 걸 좋아한다. 연필이 종이에 닿을 때 사각 거리는 소리, 혹은 볼펜이 종이 위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느낌 그 자체를 느끼는 게 내게는 명상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아이폰 메모장이 아닌 다이어리에 굳이 손글씨로 일기를 쓰곤 한다. 서랍 한 켠에 모아둔 편지지 묶음 그리고 엽서 몇 장. 그게 있다는 건 내게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 찬 냉장고만큼이나 부유하고 풍요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편지지에 손글씨로 편지를 쓰거나 엽서에 연필로 엽서를 쓰는 일만큼 설레는 일도 없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하고 글을 쓰는 데도 꼭 한 글자 정도쯤 틀리게 써버리고 만다. 수정 테이프로 지우면서 아, 미리 써놓고 베껴 쓸 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를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엽서 쓰기의 묘미가 아니겠나. 두 줄로 직직 그은 자국, 덕지덕지 수정한 테이프, 번진 글씨마저도 다 엽서의 매력이 되고 만다.
"최근에 엽서를 쓴 적 있나요?"
"마지막으로 엽서를 쓴 게 언제인가요?"
이런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생일이나 기념일 등을 꼽을 것이다. 아니, 요즘은 생일에도 엽서 따윈 잘 쓰지 않지만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엽서를 쓰는 일은 잘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 날도 아닌 날에 받는 엽서 한 장만큼이나 낭만적인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특별한 날에는 편지를, 아무 날도 아닌 어떤 날에는 엽서를 쓴다. 아무 날도 아니니까 오래 고심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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