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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Oct 29. 2021

내 청춘을 부탁해

영화 정재은, <고양이를 부탁해>(2001) 리뷰




영화가 끝나마자마자 든 생각,

'아, 한번 더 보고 싶다.'



얼마 전 재개봉한 <고양이를 부탁해>를 봤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2001년에 개봉한 무려 20년 전 영화인데,

유행은 20년 주기로 돌아온다고 했던가.

2021년에 보는데도 힙하고 별로 촌스럽지가 않아 신기했다.

이상한 거라곤, 뚜껑을 열듯? 여는 말도 안되는 휴대폰 뿐.


거기 보면 다들 곱창 머리끈을 하고 나오는데,

마침 나도 그날 곱창(요즘은 고급스럽게 '스크런치'라 부르지만, 나는 곱창이 좋다)을

하고 가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감회가 새로웠다.


뭔가 20년 전 과거와 내가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느낌?


그 연결고리는 곱창이란 말인가.




무튼.






20년 전이면 나는

꼬꼬마 초딩이었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그 시절에 주파수가 맞춰졌는지

문득 지나오지도 않은 세월이 그리워졌다.


마치 그 시절에 '청춘'을 겪기라도 한 것 마냥.



영화에선 무려

20년 전의

풋풋한 배두나, 이요원을 볼 수 있다.


20년 전 배두나,

진짜 애기애기하다.


약간 중경삼림에 페이도 생각났다.

머리스타일 때문인가. (뜬금없이 페이 소환)



다시 <고양이를 부탁해>로 돌아가서,


배두나가 연기를 맡은 '태희' 역할이 너무 귀엽다. 

아니다, 배두나가 귀여운 것인가.

태희는 자유를 갈망하는 

약간은 우유부단하고 온정적인 오지라퍼로 나오는데,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 탓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파는

칫솔 따위도 덥석 사버린다.


친구들이랑 같이 여행 간 월미도에서 

"나 한국 쌀람 좋아, 한국여자, 좋아." 

라고 말하는 미얀마 청년 3명을 보고,

"얘들아, 어떻게 할까? 같이 놀자는데?"

라고 하는 장면은 정말 어이없고 골때리게 귀여워서 웃음 참기에 실패했다.

(당연히 친구들은 질색팔색을 하며 배두나를 비난한다.)

풉, 하고 웃었는데 옆 사람도 나처럼 동시에 터져서

'그치? 나만 웃긴 거 아니지?' 하는 심정으로 당당하게 어둠 속에서 웃었더랬다.




개인적으로 배두나나 전도연은 

감각적? 동물적?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고양이를 부탁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배두나는 그 분위기 자체를 적셔버리는 아주 매력적인 배우임에 틀림없다.


상당히 집중하게 만드는 그만의 특유의 감각이 있다.





또 하나의 인상깊었던 장면.

상사에게 인격적 모독을 당하고 눈물을 훔치는 혜주.



"사회 생활 원래 다 그런거야, 적당히 하고 얼른 들어 와. 응?"

하는 여상사의 능글맞은 웃음이

왜 그렇게 꼴보기 싫던지.


뒤돌아 눈물을 훔치던 이요원의 가녀린 어깨와 뒷모습,

그게 너무 애처로워 보였다.


상사의 말에 혜주는 '서둘러' 감정을 추스르고 사무실로 복귀한다.



회사에서 감정적으로 힘든 순간, 

정말 난감한 순간이다. 


이를 어떻게

최대한 '빠르게' 처리할 것인가.



정말 잠시 나와 창문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것이 전부인데,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처리 방법이거늘

그 마저도,

그 짧은 시간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것인가.



문득 방송국에서 막내로 일하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하지 않은 실수까지 억울하게 '덤탱이'써서 대신 혼나고

개인적인 안 좋은 일까지 겹친 최악의 상황에서 

최대한 티를 안내며 업무를 하고 있는데,

선배 작가가 잠깐 나오라고 불렀다.


"유정, 항상 웃고 있는 것 까지가 막내의 일이야. 몰라?"


와, 

그 말에 가까스로 참고 있던 울음이 터져버렸다.

"죄송합니다."

라고 연거푸 말하며 꾸역꾸역 참으려 애썼으나,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그랬더니 '아휴, 얘 어쩌면 좋지?'라는 난감한 표정으로

빨리 대충 눈물 닦고 들어오라던

그 선배의 말투, 제스처.


그때 나는 손으로 대충 눈물을 휘갈겨닦고는 

호흡을 채 고르지 못한 채 부조정실로 들어갔지.


그때의 기억.

다 잊었다 생각했는데, 생각이 났다.



이요원은 개인적인 '잔 심부름'을 시키는 직장 상사의 카드와 메모를

오락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서,

펌프기계 위에서 무표정으로 펌프를 밟는다.


화살표가 하나씩 밟힐 때 마다

통쾌하고,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아팠다.



나의 인격과 자존심을 짓밟은 상사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일탈적 반항이

고작 작은 오락실에서 펌프를 밟는 것이라니.




똑같이 '밟는 행위'인데 왜이리도 다른가.







또 하나의 최애 장면.

꼰대 아빠에게 받지 못한 자신의 임금을 챙겨

가출을 감행한 태희.

라디오로 주파수를 맞추고

그걸 들으며 담배를 피면서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다.


빨간 벙어리 장갑을 낀 손으로 담배를 들고

한 손에는 책을 들고

머리에는 머리띠 대신 헤드라이트를 끼고서

추운 겨울 야밤에 독서에 빠지는 저 갬성을 보라.


별 거 아닌데

엄청난 일탈 행위라도 되는 것 같다.


귀엽고, 예쁘고 그랬던 장면.


지영이 거두게 된 새끼 길고양이 티티.


티티는 지영의 손을 거쳐 혜주의 생일 선물로 보내졌다가

다시 쌍둥이 자매에게 맡겨진다. 



새끼 길 고양이는 '보살핌'이 필요한 불안정한 존재다.

관심 어린 눈길과 손길이 필요한 존재,

그대로 길가에 방치했다간

추운 겨울을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



새끼 길 고양이 같이

혼자로는 완전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 

이는 각자의 청춘에 다름 아니다.



고양이는 결국 지영이자, 태희이자 혜주이자

우리 모두의 청춘 그 자체인 것이다.



고양이를 부탁해,

는 그래서 '내 청춘을 부탁해'라는 말과

동의어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영의 동행이 되어 주는 태희.


어디로 가든

'혼자'보단 나을 것 같아서, 라는 말로 지영과 함께

태희는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다.



태희는 지영의 동행이자,

지영은 태희의 동행이다.



앞으로 펼쳐질 둘의 여정.


뭐든 혼자보다야 나을 그 여정,

짐을 들고 가는

공항 장면을 뒤로 한 채


화면에는


'GOOD BYE'란 글자가 

점점 커지며 영화는 끝난다.



  Good Bye,


떠나야 다시 새로운 길이 펼쳐진다.



한국이여 GOOD BYE,

태희와 지영은

새로운 타지에서의 시작을

다시 당차게 맞으리라.



불안정한 청춘의 시기에


또 다른 불안의 세계로

불안을 안고서 떠나는

불안정한 존재들,



그 존재들을 부탁해.






청춘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혹은 지금 청춘이라면


보고 공감갈 만한

(누구나 학창시절 친했던 친구와 사소한 감정적 갈등-이를테면 말 한마디-으로,

혹은 상황적인 이유로 멀어진 경험이 있지 않은가.)


소소하고

귀엽고

그러면서 섬세한 영화.




어느 시대든


청춘이 가진 '불안정' , '불완전'이라는


그 거룩한 무기-무기라고 할 수 있을까-, 

무튼,


그걸 무기 삼아

흔들리는 존재로 표류하는

그러면서 서로 연대하는

보편적이고 특별할 것 없지만

그래서 더 우리네 얘기같은


섬세한 이야기가


나는 끝나자마자 그리워


'한번 더 봐야지'하고

속으로 되뇌였던 것이리라.



고양이 

아니,


청춘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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