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빼고 입어야 하는 옷은 내 옷이 아니야
현재 내 몸에 맞는 편안함이 얼마나 삶의 질을 쾌적하게 만들어 주는지 ‘지금 편안한 옷’을 입으며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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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옷을 잘 사지 않게 된 이후, 되려 '옷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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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에코백에서 커다란 호두야채크림빵을 위풍당당하게 꺼낸다. 호두와 야채와 크림이라니.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장발장이 훔쳤다는 거대한 빵이 연상되는 크기에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착착 접시와 포크를 내고, 드립 커피를 내릴 물을 끓인다.
-와, 이거 칼로리 엄청나겠는데?
말과 다르게 손은 시원하게 빵을 쭉 찢었다. 섬유의 실이 늘어나듯 결을 따라 빵이 나뉘며 버터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뜨거운 물을 드립 커피에 천천히 내리자, 가는 물줄기가 공중에서 곡선으로 원두를 향해 내려오고, 직선의 커피가 되어 잔에 담긴다.
-근데 옛날만큼 막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 같아.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달까.
나는 볼이 빵빵해지도록 빵을 우물거리며 공감 간다는 의미로 조금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인다.
언제부터일까. 유독 마른 수준의 체중 관리야말로 자기 관리의 기본 영역으로 인정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자기 관리는커녕 자기 방치의 삶으로 서서히 옮겨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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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는 "그만 먹어야지.", "살 빼려면 운동해야 하는데!", "잘 먹고 잘 움직이면 건강한 돼지가 된대."라는 식의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 0.1kg의 변화에도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눈속임이라도 하려고 살을 욱여넣어야 할 수준의 바지나, 피도 통하지 않는 압박 스타킹 따위를 입었다. 어떻게든 숨을 참고 애써야만 간신히 입을 수'는' 있는 옷들이었다.
옷을 구매할 때면 간신히 들어가'는' 옷들을 입고 힘겨워하면서도 애써 정신 승리를 했다.
'지금은 힘들지만 딱 2킬로만, 아니 1킬로만 빼도 훨씬 편하게 입을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잘 입겠지.'
당연하게도 그런 날은 오지 않았고, 오히려 1킬로가 더 불어 입기'조차' 못하는 옷이 되어 장롱 안에 처박히기가 일쑤였다. 사도 사도 입을 옷이 없었고 다시 간신히 입을 수 있는 옷을 사고, 앞으로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옷을 사고, 다시 입을 옷이 없고-를 반복했다.
지금 잘 입을 수 없는 옷은 미래에도 입을 수 없는 건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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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 빵 안의 호두가 씹힌다. 부드럽고 달달한 크림에 고소한 견과류의 맛과 식감에 절로 행복해진다. 커피까지 마시니 배가 찬다.
괜찮다. 지금 입고 있는 바지는 넉넉한 와이드 통에, 허리는 밴딩이다. 어제 입은 옷도 밴딩이었고, 내일도 밴딩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내 옷은 죄다 허리가 밴딩이다. 혹은 라인이 들어가지 않아 충분히 여유로운 품을 가진 옷들이거나. 더 이상 간신히 입을 수'는' 있는 옷을 사지 않는다. 10년간의 실패를 겪고서야 받아들이게 된 걸지도 모른다. 빼고 입어야 하는 옷은 내 옷이 아니라는 걸.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날씬해 보이는 옷에서 내가 편한 옷으로 스타일에 대한 선호가 변했다. 비슷한 시기 나라는 인간은 미래에 살을 뺄 인간이 아니며, 불편한 옷은 더는 견디지 못하는 성향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도 했다. 어떤 게 더 먼저였는지는 모르겠다. 입는 옷의 선호가 바뀌고 나니 능청능청한 밴딩만큼 스스로를 여유롭고 능청스럽게 대하게 된 걸까. 나의 몸을 인정하고 나니 남의 시선보다 나의 편안함을 선택하게 된 걸까.
신기하게도 옷을 잘 사지 않게 된 이후, 되려 '옷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적당한 넉넉함을 지닌 옷들을 들이자, 체형이 조금 바뀌어도 새로 살 필요가 없었다. 고무줄은 자비로웠다. 기본 스타일의 편안한 옷을 사 두니,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닌 이상 격식 있는 자리든 편한 자리든 언제든 입을 수 있었다. 내가 좁디좁은 인간관계에, 집-회사-카페만 반복하는 단조로운 일상을 애정하는 내향인이라 더 그랬겠지만, 어쨌거나 이미 가지고 있는 옷만으로도 충분히 단조로운 일상을 편안하게 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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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비해 체중이 불었다. 그렇다고 건강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고, 정상 체중의 범위 안이다. 보자마자 '날씬하다!'라는 소리를 들을 몸은 아닌 데다, 그렇게 보이게끔 만들어 주는 옷을 입지도 않는다. 친구 말마따나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마른 몸'이 아름답다는 미의 기준이 곳곳에 배어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아주 신경이 안 쓰이는 건 아니다. 때로는, 아니 종종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다만 이전만큼 강박 수준은 아니며, 조금씩 벗어나려고 의식적으로라도 노력하는 중이라는 게 맞겠다.
현재 내 몸에 맞는 편안함이 얼마나 삶의 질을 쾌적하게 만들어 주는지 ‘지금 편안한 옷’을 입으며 알게 되었으니까. 한 번 넉넉함을 맛을 본 자,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
과거의 몸뚱이는 보내주고, 미래에 뺄 것 같은 몸뚱이도 미련 갖지 말자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 배경 화면에 뜬 작고 예쁜 옷에 시선을 뺏겼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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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유로운 옷과 건강에 대한 걱정은 별개다. 건강의 영역 안에서 넉넉함을 주는 건 건강한 현재를 누리게 하지만, 고무줄로도 어찌할 수 없는 선을 넘어가면 몸과 더불어 마음까지 부정적으로 묵직해지는 게 느껴진다. 능청스러운 여유 대신 화가 많아지고 쉽게 지친다. 옷이고 뭐고 일상을 제대로 채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30대의 체중 관리는 자기 관리가 아닌 자기 생존의 영역이랄까. 친구와 만나면 우리는 20대였던 때와 비슷한 듯 다른 말을 여전히 반복한다.
- 운동... 해야 하는데... 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