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작은 힘
임수현의 동시집 『오늘은 노란 웃음을 짜주세요』(문학동네, 2023)
『오늘은 노란 웃음을 짜주세요』는 『외톨이 왕』에 이은 임수현의 두 번째 동시집이다. 그의 첫 동시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환상성', '구원과 치유'이다. 그는 내면으로 진입하는 환상 세계와 그 속에서 만난 내면의 외로운 아이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를 구원하고 위로하는 존재로 "눈먼 할머니"가 등장한다. 『오늘은 노란 웃음을 짜주세요』는 『외톨이 왕』에 등장하는 '할머니' 이야기의 확장판이다.
『오늘은 노란 웃음을 짜주세요』에는 할머니가 기른 아이가 등장한다.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는 말보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자랐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작품 속 할머니는 아이의 탄생과 성장을 보살펴준다는 삼신할매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철컥철컥······
할머니! 뭐 하세요?
웃음 많은 네 아빠는
씨실
힘센 장사 네 엄마는'
날실
번갈아 꿰어
우리 몽글이 짜고 있지
까치가 씨실을 까마귀가 날실을 물어다 주는
은하수 너머
철컥철컥······
할머니!할머니!
노란 웃음
반짝이는 보조개
동그란 눈을 짜 주세요, 네?
그래그래
걱정 말고 어서 자렴
철컥철컥······
철컥철컥······
-「베 짜는 나라」전문
아이는 태어나기 전에 할머니를 만나 “노란 웃음/ 반짝이는 보조개/ 동그란 눈을 짜”달라는 제안을 한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전달자가 아닌, 아이의 말에 "그래그래" 답하는 대화자이다. 할머니 이야기의 확장판이지만, 시의 중심은 '아이'이다. 임수현 동시의 할머니가 새롭고 특별한 이유는 아이를 살게 하는 존재로서 할머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을 살게 하는 존재인 할머니가 곁에 없다면 어떨까. 믿고 의지하던 존재의 상실은 살아갈 길을 잃었다는 것과 다른 말일까. 어디로 가야하는 지는 알고 있지만 어떻게 가야할 지 알 수 없는, 방향은 알지만 방법을 잃어 한 발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지는 않을까.
노루야, 노루야
뿔을 키우는 노루야
여기가 어딘지 좀 알려 줄래?
누구라도 베 짜는 나라로 어떻게 가는지
좀 알려 주겠니?
-「할머니 사는 곳」부분
사는 법을 잊었을 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살았던 느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를 살게 했던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네 밀어 줄까?
나랑 공기놀이할래?
바람도 없는데
그네 꼭대기에 앉아
손바닥 위로 벚꽃 잎만
후두둑후두둑 떨어뜨리더라
-<벚꽃 아이> 부분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바람에 책장이 한 장 두 장 넘어가고
커다란 버드나무 아래 할머니가
공깃돌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할머니! 부르고 보니 할머니가 아니라 나만 한 아이였다
-<공기놀이> 부분
바람에 빈 그네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 아이는 공깃돌을 가지고 놀던, 꿈에서 만난 어린 할머니일 것이다. 떠올리는 것인지 떠오르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감각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어떤 한 사람과 내가 연결되어있다는 느낌. 우리는 그 작은 연결감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