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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Nov 22. 2023

곰의 부탁: 나의 삶을 부정하지 마세요.

곰의 부탁(진형민, 문학동네, 2020)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청소년 소설집이다. 단편의 키워드를 나열하자면, 동성애, 성과 연애, 청소년 노동, 난민, 이상동기 범죄, 결혼이민자, 참사로 인한 죽음이다. 당사자 이거나,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먼 일처럼 느껴지는 것들이다. 작가는 세상의 관심에서 소외된, 그래서 타자화된 인물과 이야기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관심 갖지 않으면 여전히 모를 수도 있는 세상의 일부를, 이제는 모를 수 없게 만들어주었다.

 책에 실린 모든 단편은 단편이지만 단순하지 않다. 하나의 이야기 안에 다양한 사건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짧은 이야기지만, 장편 못지 않은 풍부함을 지니고 있다. 쉽게 소비되는 인물이 없으며, 개연성 없이 벌어지는 사건 또한 없다. 그만큼 작품의 밀도가 높지만, 문장이 단순하고 장면이 명확하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작품의 밀도와 독서의 피로도는 정비례 하는 줄 알았는데, 나의 오해였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표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곰의 부탁'이다. 등장인물은 나와 곰, 양이다. 나는 여학생이고 곰과 양은 남학생이며, 모두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한다. 곰은 로미오, 양은 머큐시오, 나는 스태프다. 어느 날, 연극 동아리에서 곰과 양이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봤다는 소문이 돈다. 곰과 양은 애써 부정하지 않았고, 그 뒤로 연극 동아리에서 양을 볼 수 없었다. 곰이 나에게 일출을 보러 바다에 가자는 제안을 한다. 양이 곰에게 나와 함께 간다는 조건으로 바다에 가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곰, 양과 함께 바다로 떠난다. 가는 길에도 곰과 양은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이야기 중반부, '모데나의 연인'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손을 꼭 잡고 발견된 유골 두 점에 모데나의 연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둘이 남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니 모데나의 형제, 사촌, 전사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로마 시대 사람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이럴진대, 동성을 좋아하는 지금의 청소년을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그리고 이러한 시선과 편견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는 청소년 본인은 어떤 마음일까.

 <곰의 부탁>은 청소년 동성애를 우리 바로 앞에 가져다 놓았다. 먼 일이 아니라, 우리 앞에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외면하지 말고,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작품의 미덕에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있다. 곰과 양의 이미지가 마치 남성적과 여성적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동성애에 있어서도 한 쪽은 남성의 이미지, 다른 쪽은 여성의 이미지가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 것은 아닐까. 동성의 연애를 다루고 있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연애, 연인에 대한 프레임은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다.

 <곰의 부탁>의 표면적인 의미는 "나"에게 바다를 가자는 제안일 것이다. 그러나 더 넓은 의미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편견을 갖지 말자는 세상에 대한 부탁이라고 하면 과장된 해석일까? "모데나의 연인이 하루아침에 모데나의 전사가 된 거야. 웃기지 않냐?"는 곰의 말은, 주류의 관점과 보편적(이라고 여겨지는) 시선의 해석과 판단에 대한 냉소이다.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결정에 누군가의 삶이 부정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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