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Nov 30. 2023

어린이의 언어로 사랑을 말할 때

나는 법(김준현, 문학동네, 2017)

1.

 만약 어떤 어린이가 나에게 "선생님, 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편지를 쓰고 싶은데 참고할 만한 시집을 추천해주세요."라고 물어온다면, 나는 주저 없이 김준현의《나는 법》을 추천하겠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어린이의 마음을 표현한 동시는 많지만, 대부분 어린이의 사랑 혹은 연애의 감정을 귀엽게 묘사하는데 그친다. 어린이 사랑을 말하는 동시는 많지만, 어린이를 위한 로맨틱한 동시는 거의 없다. 김륭의 동시 정도가 있을 텐데, 부끄럽게도 내가 아직 김륭의 동시를 다 읽어내지 못하여 쉽게 소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린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사랑까지는 아니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좋아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품은 의미가 넓고 깊다. 그러나 그건 어른이 정한 사랑의 정의나 범위에 해당하는 말이다. 심장이 두근두근을 넘어 팔딱팔딱 거리고, 내 마음을 내가 어찌하지 못해서 밤에 잠도 못 이루는 어린이가 있다면, 사랑에 빠졌다는 말이 아닌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린이들도 사랑을 한다. 그러니 어린이도 사랑에 빠진 사람들만이 뼈저리게 공감할 수 있는 로맨틱한 시가 필요하다. 어른의 언어가 아닌, 어린이의 언어로 쓰여진 사랑의 동시는 필요하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마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편지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웅크림>, 머리에 온통 너의 생각 뿐이어서 엉망이 된 글씨를 쓰고 지우다, 문득 네 생각에 빠지게 된 <풍향계>도 어린이가 충분히 공감할 만한 로맨티스트 화자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수학 시간 -소행성 B612>이 가장 좋았다.


수학 시간

캠퍼스가 다리를 있는 힘껏 벌리고도

제자리만 맴도는 것처럼


그 애 집 앞에서 제자리만 맴도는 마음처럼


나는 내 마음에 동그란 행성을 그려요

그 애가 생각날 때마다

나는 그 동그란 행성을 내가 사는 별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왕자처럼 말이에요


문득,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저 달이 지구 옆에서만 빙글빙글 돌고

지구는 태양 옆에서만 빙글빙글 돌고


별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서로의 주변만 빙글빙글 도는 건

부끄러움 때문일 거라는 걸


내가 그린

소행성 B612의 둘레를 구하려면

그 애를 생각한 시간을 다 계산해 봐야 하는데

지금 그깟 수학이 문젠가요?


-<수학 시간 -소행성 B612> 전문


 2.

 "제 3부 말에도 뼈가 있을까?"에는 말놀이를 기반으로 한 동시가 실려있다. 5편의 <한글 공부> 시리즈, <말에도 뼈가 있을까?>는 낱자, 글자, 단어 등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만난 상상의 세계를 펼쳐보인 작품들이다. 말이 가진 유희적 요소를 활용하면서, 독자에게 가해지는 인식의 충격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유희와 의미, 두 가지 요소를 놓치지 않으며 전개되는 시를 보며, 말놀이 동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해보기도 한다.《나는 법》이 출간된 2017년 이후, 김준현의 말놀이 동시는 여전히 새롭다.


동시는 시 앞에 동그란 바퀴가 달린 거지

동글동글 굴러가는

세발자전거처럼

이응을 굴려


어린이들을 태우고

어린이들이 있는 곳으로

온 동네로 동동


-<한글 공부-이응(ㅇ)> 전문


3.

 사실 동시집을 처음 읽었을 때는 시 곳곳에서 보이는 외로운 아이가 눈에 밟혔다. <어떤 빗방울>, <둥글둥글>, <귀 빠진 날>, <문제 7번> 등에서 보이는 외로움의 정서는 내 안의 외로운 아이를 떠올리게 하면서, 주변의 외로운 아이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는 로맨티스트로서의 면모가 외로움을 위로하는 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문제 7번>은 왕따, 따돌림, 학교폭력 문제를 상기시킨다. 어떤 외로움은 사회적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다음과 관계없는 것을 고르시오.


정답이라도

관계없는 하나를 골라내고 나면

외로워졌다


쉬는 시간인데

나 혼자 문제를 푼다

아무하고도

관계가 없는 사람처럼


-<문제 7번> 전문


 맥락에 어긋나지만, 가장 좋아하는 시를 소개하고 글을 마친다. 현실과 환상의 단단한 결합, 팽팽하게 유지되는 긴장감에 반했던 나의 원픽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새가 되었다

딸꾹딸꾹 울었다

사람처럼 말하다가도 나는 새라는 듯

심장이 딸꾹딸꾹 말을 끊었다


목구멍에 찬물도 부어 주고

잠시 숨이 막힌 풍선처럼 코도 막아 보고

친구들이 나 몰래

뒤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놀란 나머지

온종일 나는 딸꾹딸꾹 울기만 했다


-이제 어쩌지?


사람이 되려면

동굴 속에 들어가 마늘과 쑥만 먹으며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된다는데

나는 곰도 호랑이도 아닌

새장 속에 사는 새처럼

날지 못하는 새


어쩌면 내가 새가 된 게 아니라

얼마 전에 죽은 우리 집 카나리아 또롱이가

내 심장 속에 숨어 살게 된 건지도 몰라

미안하다고

따뜻한 물을 조금씩 먹으며

미안하다고

그러다 스스로 잠들었을 때


딸꾹딸꾹 울던 새가

내 입 밖으로 나와 날아가는 꿈을 꾸다


일어났더니

내 머리카락으로 둥지를 지어 놓고는

멀리 떠나 버린 딸꾹새


-<딸꾹새가 사는 새장> 전문

작가의 이전글 희망의 단서를 놓치지 않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