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마중 레터링 서비스 《블랙》100호를 읽고
이사 온 오동나무도 낯설지 않게
최춘해
산에는
밑바닥 깊숙한 곳에서
맑은 기운이 솟고 있다.
바위틈에서
맑은 물이 솟고 있다.
맑은 바람이 이쪽저쪽
골짜기 건너다니며
머리를 맑게 씻고 있다.
나비와 벌들이
풀꽃 사이를 누비고 있다.
햇빛이 여기 와서는
분홍색으로 내려앉고 있다.
나무들이 새들의 노래를 듣고
풀과 바위가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기 밤, 아기 감들이
말을 배우고 있다.
몸짓이 서툴러서
아기 도토리가 더 귀엽다.
새로 이사 온 오동나무도
낯설지 않게 감싸 준다.
아무라도 발붙이고 살도록
한 식구로 맞이하는 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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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은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블랙리스트)”에서 시작되었다. 권력으로부터 탄압받은 자리에서 새로운 문화예술 플랫폼이 피어난 것이다. 억압이 오히려 출발점이 되어버린 역설적이고 기이한 《블랙》이 동력을 잃지 않고 100호를 맞이했다.
같은 지면에 발표된 작품들에서 일정한 흐름이나 경향을 찾는 일은 무의미한 행위일 수 있다. 자칫 편향적인 해석이 더해져 개별 작품에 대한 오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오독의 위험을 감수하고 《블랙》에 실린 작품들 저변에 흐르고 있는 키워드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새로움’일 것이다. 내용과 형식의 파격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지금까지 없었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조인정, 방지민, 윤정미, 김기은, 전수완, 최문영, 정준호, 온선영, 박소이 등 새로운 시인의 개성 있는 목소리는 《블랙》을 다채로운 세계로 만든다.
‘새로움’이란 전에 없던 다른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있던 이야기를 변주하는 일 또한 새로움이다. 진공 상태로 비어 있는 “어떤 것”을 지속해서 말하는 송진권의 목소리가 새롭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완벽하게 허물어진 김륭의 목소리가 산뜻하다. 돌멩이에 꽃말을 붙여버리는 작품 앞에서 새로운 꽃말 동시에 대한 의심이 공연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새로움을 추구하다보면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는 목소리를 놓치기 쉽다. 필요성을 상실하여 자연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만 사라져가는 목소리라면 더욱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블랙》에서 귀 기울인 목소리는, 최춘해 시인의 <이사 온 오동나무도 낯설지 않게>이다.
시의 공간적 배경인 “산에는/ 밑바닥 깊숙한 곳에서/ 맑은 기운이 솟고 있다”. 그곳은 바위, 바람, 나비와 벌, 나무, 아기 밤, 아기 감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맑은 바람이 이쪽저쪽/ 골짜기 건너다니며” 봉우리를 이어주고, “나비와 벌들이/ 풀꽃 사이를 누”비며 공간을 매운다. 서로 연결되며 단단한 결합체를 이룬다.
결속된 덩어리로 존재하는 공간에서 “나무들이 새들의 노래를 듣고/ 풀과 바위가/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받아 “아기 밤, 아기 감들이/ 말을 배우고 있다.” 공동체 정신은 새로운 세대에게 전수되고 있다.
타자가 삭제되고 공동체가 무너져가는 지금 이 시점에서, 어린이들은 어떤 말을 배우고 있을까. 우리는 어떤 말을 전수해야 할까. 새로움을 위한 시적 탐구에 골몰하다 잊지 않아야 할 목소리를 잃어가는 건 아닐까. “아무라도 발붙이고 살도록/ 한 식구로 맞이하는 흙”을 상상하는 목소리가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 땅에 새롭게 이사 올 존재들이 “낯설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