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뿔 속의 잠(《삼각뿔 속의 잠》, 임희진, 문학동네, 2024)
삼각뿔 속의 잠
임희진
삼각뿔 안에 찰랑찰랑 담긴 잠이
뾰족한 쪽을 아래로 두고
서서 자요
자기 전에 먼저
책상을 정리하고, 서랍을 꼭 닫고,
소리 나는 시계를 방에서 추방하고,
창문을 꼭 잠그고, 커튼을 치고, 이불도 반듯이 펴고, 불을 끄고, 안대를 하고
눈을 감아요
그래도 밤사이 몇 번이나
잠이 눈을 뜨는지 몰라요
얼음!
책상도, 서랍도, 창문도, 커튼도, 이불도, 전등도, 안대도
그대로 멈춰요
모든 감각에 날을 세워
흐트러진 게 없나,
살펴봐요
삼각뿔의 뾰족한 쪽을
푹신한 쿠션들로 잘 받쳐 둬야 해요
엎어지면, 잠이
깨지거든요
미세한 충격에도 쓰러지기 쉬운 뒤집어진 삼각뿔에 '잠'이 담겨 있다. 잠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미미한 자극이 삼각뿔을 엎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잠이 깨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위태로운 잠을 깨지 않기 위해 외부 자극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빛과 소음은 잠에게 치명적인 자극이 될 것이다. 그러니 "책상을 정리하고, 서랍을 꼭 닫고, 소리나는 시계를 방에서 추방하고, 창문을 꼭 잠그고, 커튼을 치고, 이불도 반듯이 펴고, 불을 끄고, 안대를 하고" 눈을 감는 일은 예민한 잠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공해가 차단된 뒤에도 예민한 잠은 스스로 눈을 뜬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흐트러진 게 없나" 수시로 살핀다. 눈을 감아야 열리는 잠의 세계는 현실의 감각을 잊어야 닿을 수 있는 시공간이다. 화자가 바라보는 잠은 감각의 끄나풀을 쉽게 놓지 못한다. 감각의 영역에서 무감각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갈팡질팡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감각이 의식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면, 감각이 사라진 잠은 무의식이 지배하는 시공간이다.〈삼각뿔 속의 잠〉이 무의식의 공간으로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자극에 대한 반응, 즉 감각이 지나치게 활성화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날카로운 상태는 사전에서 '예민하다'고 정의한다. 표제작인〈삼각뿔 속의 잠〉은 동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예민함을 감각적인 언어로 구체화하고 있다.
예민한 아이가 예민한 눈으로 바라 본 세상 이야기는 현실의 예민한 어린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현실의 예민한 어린이는 타자일 수도, 자신일 수도 있다. 동시를 통해 발견된 어린이가 많을 수록 현실의 어린이는 자신을 이해하는, 타자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