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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령 Jan 25. 2017

옷으로 말하기 전에

프롤로그

 

 20대 초반이었을 때와 다르게 이제는 사람을 겉모양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비싼 옷을 입은 사람들을 선망하지도 않게 됐다. 또한 옷을 잘 입고 못 입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싶지 않아졌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멋있고, 바빠서 대충 입는 사람도 그 나름대로 멋있다. 한 사람의 기준이 모든 사람의 잣대가 될 수 없고, 어떤 시장도 다른 사람을 트렌드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 없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이 되고자 했을 때 가장 피했던 주제가 패션이었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옷 가게와 화장품 매장을 쉽게 지나가지 항상 쉽게 지나가지 못하고, 하루에도 인터넷 아이쇼핑만 10시간 거뜬히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옷을 좋아한다. 색깔별로 디스플레이된 화장품들을 보면 혼이 빠지고, 독특한 발상으로 예쁜 옷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들의 실력에 감탄하고 만다. 옷을 잘 입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들의 사진을 열심히 찾기도 했었다. 7년 전엔 의대도 버리고 의류학과를 들어가서 부모님에게 불효를 저지르기도 했었다. 모순적이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옷쟁이다.

 하는 수 없이 글과 사람, 패션의 교차점에 머물기로 한다. 교차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과 세상을 관망하고자 한다. 그럼 나는 그들이 입는 옷에서 대해 무엇을 읽고, 듣고, 말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하다 옷이라는 것을 '말'이라고 하면, 사람들과 사회가 옷을 통해 어떤 말을 하는지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 칼럼이라 하면 익숙하지 않은 문장들과 단어들, 알 수 없는 브랜드 이름들이 수 없이 등장하는 글을 쉽게 떠올리게 된다. 이런 패션 잡지체에는 무지하지만 그렇다고 옷에 무관심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 쓰고 싶어 졌다.

 패션 칼럼에 대한 오해 중 또 다른 하나는 세속적이라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유명 모 패션 잡지 편집장들이 쓴 글이 떠올랐다. 패션의 허무성에 대한 글이었다. 오랜 기간 패션 산업에서 종사한 사람은 오로지 명품, 명품만 찾을 것 같았는데, 패션계의 수장인 사람들이 쓴 자조 섞인 글은 의외였다. 그들은 옷만큼이나 내면의 아름다움에 공들이는 것을 중요시했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적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패션계에서 연륜 깊은 이들이 이런 글을 쓰는 걸 보니 어쩌면 진정한 패셔니스타는 허무주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은 허무주의 패션인가...

 그저 패션을 허무하게 다룬 글은 쓰고 싶지 않다. 내가 쓴 글 안에서 패션이 허무하지 않으려면 옷이 빈 껍데기로 남지 않게 해야 한다. 옷 안에 옷을 입은 사람이 누구인지 쏙 집어넣어 그 옷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같은 옷이라도 다른 사람이 입으면 다른 느낌이 난다. 바로 입는 이의 내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옷 속에 숨겨진 과육 같은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에 주목했다. 옷이 녹아내는 삶에 관한 것. 이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꽤 매력적일 것 같았다.

 의식주 중에서 가장 천대받아왔던 것이 옷이었지만, 그래도 인간에게 중요한 세 가지 요소 중 하나가 아니던가. 그만큼 인간의 역사에서 옷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사랑받아왔다. 그런 옷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넘쳐난다. 모든 사람들의 옷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기 마련이고, 옷은 단순 치장을 넘어서 비언어이자 기호이다. 그 옷이 하는 말을 읽는 일은 재미있다. 마치 셜록이 옷으로 한 사람에 대해서 어떤 정보라도 추리해내듯이 사람들의 옷을 관찰한 것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상상하려 한다. 그중 매력적인 옷 이야기를 골라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새로운 관점을 던져 편견을 부수는 그런 글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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