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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령 Jul 15. 2017

가깝고도 먼 샤넬

마드모아젤 프리베 서울

 샤넬 백은 비싸도 샤넬 전시회는 무료였다. 2017년 샤넬 전시회는 한남동 디 뮤지엄에서 열렸다. 누구나 샤넬 어플을 통해서 예약을 하면 전시회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전시는 무료인 데다가 첫 오픈식에 지드래곤을 포함한 유명 스타들을 동원돼서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것을 각오하고 디 뮤지엄을 찾았다. 다행히 평일 점심시간이라서 전시회는 붐비지 않았다. 덕분에 샤넬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샤넬 전시는 이번만도 세 번째 가는 것이었다. 샤넬은 다른 명품 브랜드들보다 유달리 전시회를 많이 연다. 속내야 샤넬 브랜드 이미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겠거니. 샤넬을 '역사와 전통이 깊은 유구한 브랜드'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샤넬백을 우러러보는 사람도 늘고, 샤넬백을 들고 길거리를 거니는 사람의 어깨는 더욱 으쓱해지니까. 하지만 샤넬이 없는 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아니다. 제 잘난 것을 자기 입으로 말하고 다닐 뿐이다. 정말 샤넬이 잘난 것이, 샤넬은 현대복을 탄생시키는 혁신의 주역이었고, 샤넬 제품은 어떠한 타협 없이 완벽하게 만들어진다.


 마드모아젤 프리베 서울 전시는 크게 5구역으로 나눴다. 샤넬의 상징 모티브, 향수, 옷감, 장인 정신, 보석 등 5가지 주제로 전시가 구성되었다. 주제가 명확한 전시라서 전시 내용이 머릿속에 쏙 들어왔다. 이번 전시는 샤넬이 어떤 브랜드인지 알기 쉽게 설명해놓은 아름다운 현장 학습터였다.


 첫 구역은 샤넬의 상징을 주제로 꾸며져 있었다. 샤넬을 상징하는 몇가지 단어가 있다. 블랙, 레드, 진주, 밀, 까멜리아. 샤넬은 검은색, 흰색, 빨간색을 좋아해서 디자인에서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최초로 인조 진주 목걸이를 창안했다. 밀은 샤넬이 아파트 장식에서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샤넬이 좋아했던 까멜리아 꽃과 심플함, 중국 풍 병풍 역시 샤넬의 상징이 되었다.  전시 첫 구역에서는 현대 디자이너들이 각종 샤넬을 상징하는 것들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7가지 설치 미술 작품 중에서 가장 눈부신 것은 진주를 모티브로 한 것이었다. 조명 아래에서 크기가 다른 진주들과 석영이 은은한 흰빛을 사방으로 발했다. 꽃을 한쪽에 단 석고상 아래에는 어항이 있었다. 어항 안에는 자갈 대신 진주가 있고, 진주들 위에는 조개가 있었다. 조개는 마치 화장품을 담고 다니는 파우치이나 가방과 닮았다. 인어 공주가 들고 다닐 것 같은 샤넬 백을 연상시켰다. 조개 형상 안에는 샤넬 로고가 진주처럼 자리 잡았다.



 두 번째 구역에 들어가면 파이프 금관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돼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미로처럼 세워져 있었다. 파이프들의 끝에는 청동 나팔이 매달려있다. 나팔의 밑에는 플라스크가 연결되어있다. 플라스크에 담긴 액체는 향수의 원료이다. 원료에서 나온 향은 나팔로 새어 나와서 와인 향이 와인 잔에 갇히듯, 나팔 안에 갇힌다. 빰 빠레 소리를 뿜어낼 것 같은 나팔에서는 소리대신 향이 났다. 관람객들은 이 나팔에 코를 박고 킁킁 향을 맡을 수 있다.


 샤넬과 향을 말했으니, 두 번째 구역은 어떤 주제를 표방하는지 몇몇 사람들은 눈치챘겠다. 바로 샤넬 넘버 5이다. 샤넬 넘버 5는 세계 최초의 인공 향수이다. 인공 향수라고 함은 사람이 향수 원료들을 조합해서 원하는 향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당시 향수의 향은 자연의 향을 그대로 베껴오는 정도였다. 향수는 자연에서 추출한 한 가지 향만을 가지고 만들었다. 그런데 샤넬은 80개가 넘는 원료로 자연에서 맡아본 적 없는, 인간이 직접 창조한 향수를 만들었다. 샤넬의 향수는 사실화만 그리던 시대에 처음 등장한 추상화와 같았다. 그녀의 향수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두 번째 구역에서는 샤넬 넘버 5 원료들 중 핵심적인 6가지 향을 관람객들이 맡아볼 수 있다. 원료의 향은 샤넬 넘버 5만큼 향기롭진 않다. 메이로즈와 재스민은 꽃 찌른내도 난다. 이 원료들은 적정 비율로 버물어져서 서로의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부각한다. 84가지나 되는 원료들을 가지고 이런 마법을 부렸다니 샤넬의 수장과 향수를 만든 조향사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세 번째 구역은 옷감을 다뤘다. 샤넬은 감천 옷감으로 유명하다. 먼지가 쌓여있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 찬 곳에서 생산되는 옷감과 차별화를 두고 싶었던 것일까. 이 구역은 오염 없는 아이보리색 옷감들이 잔뜩 걸려있었다. 높은 천정에 널려서 바닥에 길게 늘어진 천은 깨끗한 벽지를 바른 벽을 연상시켰다. 옷감들은 벽이 되어서 미로를 만들고 있었고, 관객들은 옷감 미로 속을 지나가야 한다. 어디 설치되었는지 감잡기 힘든 스피커에서 직기로 천을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미묘하게 하늘거리는 옷감들 사이로 흘러나와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그 목가적 소리에 간간히 웃음소리가 겹쳐졌다. 웃음소리가 인위적이라서 분위기를 깨는 감도 있었지만 이 구역은 관객들에게 우리 브랜드는 옷감부터 남달라라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목적은 달성했다.



 네 번째 구역에서 드디어 샤넬에서 만든 옷을 볼 수 있다. 옷이 아니라 예술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옷들이 마네킹 없이 꼿꼿이 서있었다. 깃털과 비즈, 수공예로 만든 디테일한 옷감의 화려함은 어두운 색감으로 중화되어 정제된 느낌을 줬다. 전시된 옷 밑에 전광판이 있었다. 전광판에 적힌 숫자는 옷을 만드는데 들어간 시간을 보여줬다. 이 숫자가 정확히 어떤 시간을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디자인 과정부터 옷이 패션쇼에 올라갈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는지, 아니면 옷을 원단에서 재단하고 봉제한 후 디테일을 붙이는 시간을 말하는지, 또 아니면 옷감부터 만들어서 옷을 완성하는 데까지 들어간 시간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든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소요해서 만든 옷임은 분명했다. 장인들의 솜씨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옷들은 마네킹을 버리고 자기 영혼 위에 입혀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영혼들은 자부심 넘치는 눈빛으로 관객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구역의 주제는 샤넬의 주얼리였다. 보석들은 마네킹 위에 전시되었다. 마네킹들은 코와 입만 남거나, 가슴 한쪽이 없는 등 신체의 일부가 없었다. 마네킹은 마치 어둠 속에 신체를 먹히는 듯 했다. 소멸하는 마네킹 위에 반짝이는 보석들이 걸려있는 모양은 기괴했다. 인간은 죽고 땅으로 돌아가지만, 보석의 빛은 세상에 남는다. 살아있는 자는 죽기 마련이고, 살아있지도 않는 것은 죽지도 않는다. 생의 반짝임을 잃어가는 인간이 보석의 반짝임에 의존하는 것 같아서 살아있는 것들이 측은해지는 전시였다.


 현대복의 수많은 스타일들은 샤넬로부터 뻗어 나왔고, 거리 사람들이 입은 옷 곳곳에는 샤넬의 흔적은 녹아있다. 하지만 샤넬 옷과 가방은 점점 얻기 힘들 정도로 값비싸지고 샤넬 제품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적어지고 있다. 샤넬은 자꾸 고고해진다. 동시에 샤넬은 다른 브랜드들보다 대중들과 가깝다. 어릴 적 위인전을 통해서, 각종 다큐멘터리와 책, 대학 수업, 뉴스, 전시회를 통해서 샤넬은 계속해서 우리 머릿속으로 침투한다. 샤넬 가방을 옷장 안에 모셔오기는 힘들지만 '샤넬'이라는 이름은 만나기 쉽다. 대중성과 귀족성이 공존하는 샤넬은 가깝고도 먼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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