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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령 Mar 07. 2018

충동구매와 의식의 흐름

충동구매의 과정

 옷 가게에서 처음 새 옷을 마주치면 동공부터 확장된다. 없었던 상상력이 갑자기 풍부해지더니, 그 옷을 입고 아름답게 서 있을 내 모습을 떠올린다. 빈곤한 논리력은 자기가 유시민 작가라도 된 양 이 옷을 사야 하는 이유를 척척 만들어내고, 나를 설득한다. 옷을 집어 들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새 옷을 입고 거울을 보면 매장의 화사한 조명은 오직 나를 위해서 비추듯 불을 더 밝히고, 매장 거울은 착각을 더 부추기기 위해서 거울 앞에 선 사람의 본모습보다 다리는 더 길게, 몸은 더 날씬하게 보이도록 상을 왜곡한다.


출처: 핀터레스트

  하지만 옷을 바로 구매하진 않는다. 이미 옷에 달린 태그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숫자를 넘은 가격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옷장의 회계사가 된다. 지금 통장에 들어있는 돈, 앞으로 쓸 돈, 앞으로 벌어들일 돈을 계산한다. 이런 계산 능력을 돈을 모으는데 쓰지 않아서 중간중간 자책도 한다. 하지만 충동하는 감정은 합리적 이성보다 쇼핑 환경에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결국 감정이 이성을 물욕에 감염시킨다. 이성은 그때부터 미쳐 돌아가면서 이 옷을 사도 통장에 큰 타격이 없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낸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수포자가 된 것이 선천적으로 수학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수학 시험'이 '쇼핑'보다 재미가 없어서임을 확인시켜준다.

 결국 지갑은 '네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기특하게 입을 벌리며 말하고, 카드를 토해낸다. 카드는 점원의 손으로 넘겨갈 때까지 낯선 이에게 몸을 내주는 것이 두려워 바들바들 떤다. 그렇지만 카드는 점원의 손에 쥐어진 순간 세상 모든 것을 체념해버린다. 카드는 카드 리더기를 타고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직선을 그리며 미끄러져 내린다. 카드와 카드 리더기의 환상의 궁합을 증명하듯 리더기에서는 혼인 관계서와 같은 영수증이 지지직 특유의 서명 소리를 내며 출력된다. 영수증에는 카드와 카드 리더기가 만난 날짜, 둘의 연을 맺어준 물건의 이름과 가격, 카드와 카드 리더기의 혼인에 들어가는 세금이 쓰여있다.  


출처: 핀터레스트

 옷을 발견한 후 카드를 내밀기 전까지 정신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옷을 넣어둔, 접힌 자국이 반듯하게 남은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기분은 상쾌하다. 충동구매 때문에 조금 남은 죄책감은 옷 가게를 나오면서 맞이하는 신선한 공기로 씻겨 내려간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날리며 뜨겁게 고민했던 머리를 식혀주고, 머리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만든 결과를 참 잘했다고 칭찬하기까지 한다. 여기까지는 절대 후회는 없다.

 후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가장 자극적인 후회는 각종 청구서들 때문에 통장 잔액을 확인해야 할 때 온다. 통장에 얼마 남지 않는 잔액을 '이게 말이 돼?'라는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뜨고 몇 번이나 확인한다. 그때까지도 충동구매가 문제였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통장 속 숫자들에 마이너스를 새긴 범인이 누군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간 소비를 빈 종이에 써 내려간다. 소비 목록들 속에서 당연하게 있어야 할 지출들을 제외하고, 옷 가게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빛나는 소비 항목이 있다. 그 빛나는 글자를 보며 충동구매를 한 후회가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옷장 안에서 잠자고 있는 카드 강도를 떠올린다. 그 옷을 입었던 예쁜 추억도 떠올리면서, 추억 한 컷을 위해 지나친 비용을 지불한 것이 아닌가 후회막급이다. 지나갈 한순간만큼 충동구매의 허무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그 옷을 몇 번 입지도 않았다는 깨달음이다. 계절은 지나갔고, 단 몇 번을 위해서 그 돈을 지불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나의 뇌는 검문대에 세워진다. 뇌를 포박하여 앉혀놓은 후, 뇌에게 왜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냐는 질책 한다. 그러면 뇌는 꼬불꼬불한 자기 모양새를 보여주면서 '내가 당신보다 주름이 많은 늙은이라는 것을 모르오? 젊은 당신이 나보다 더 잘 판단했어야지.'라면서 어깃장을 놓는다. 그래... 나의 뇌가 그 옷을 사라고 판단해도 최종 판단은 이 몸의 주인인 영혼이 해야 했다. 하지만 뇌가 없는 영혼의 판단도 뇌가 없는 사람의 판단처럼 절대로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뇌와 영혼을 분리하고, 뇌 없는 영혼을 뇌보다 젊으니 더 똑똑할 거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문장들. 이런 문장들 같이 엉망이 된 후회를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충동구매이다.

 후회는 반복되며 인생에 리듬을 만들어주는 베이스와 같아서, 같은 후회를 하는 일은 되풀이된다. 충동구매는 멈추지 않는다. 충동구매를 일으키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모인 집단 지성인 패션 브랜드와 백화점, 미디어 광고 집단들은 공룡 같은 존재들이어서, 한낱 개인은 어쩔 수 없이 충동구매를 당해 버린다. 그 옷을 입었던 배우의 아름다움이 탐 나서, 백화점 조명 아래에서만 발하는 빛을 가지고 싶어서. 애초에 쇼핑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행하는 의식이라 옷 가게가 주입하는 비이성적인 환상에 우리는 이성을 잃고 충동구매를 한다.

 충동구매에서 승리를 쟁취했던 기억은 우리가 더 충동구매를 저지르게 만든다. '그때 세일할 때 사두길 잘했어.'라는 자기 칭찬은 '이걸 왜 샀을까.'라는 자기 후회를 누르고 기억의 숲에서 힘차게 튀어 오른다. 자기 내면과 과거을 논할 땐 칭찬이 후해지고, 단점은 외면하려는 우리의 미천한 성질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충동구매로 얻은 뿌듯한 경험은 그렇지 않은 경험보다 횟수가 적다. 단지 우리는 뿌듯한 승전 기억에 모든 후회를 합친 양을 압도할 만큼 강력한 애착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건 운명이었다.'
 드라마 속 남주와 여주의 운명적 사랑을 물건과 나에 대입하는 바람에 어느 물건을 마주칠 때 설레고, 상사병에 걸린 사람처럼 물건에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연인 관계도 설렘 후 권태가 오듯이 물건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향한 설렘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는 충동구매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사랑에는 애틋한 추억이 남지만, 충동구매는 통장이 깎이는 고통을 남긴다는 점에서 우리는 더 냉정해질 수 있다.

 한순간 불 타는 사랑은 인생에 한 번이라도 있을까,말까라곤한다. 반면 충동구매는 운명이라고 하기엔 너무 잦아서 가볍지 않은가. 정작 그 물건이 진정한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중에 마주쳐도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을 테다. 그러니 당장 카드를 희생시키진 말자. 그 물건을 얻을 운명의 날을 정해놓는 방법도 충동구매를 피하는 방법이다. 그날까지 두고 보다가 여전히 설렘이 남아있다면 그 물건은 정말 당신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명의 날이 오기도 전에 그 물건에 권태가 생기면 당신은 그 물건을 사지 않았으니까 돈도 마음도 지킬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충동구매를 자제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은 셈이다.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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