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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령 Mar 08. 2018

좋은 소재가 뭐길래: 봄 옷

셔츠와 블라우스

 봄은 비와 바람에 섞인 진흙 냄새와 함께 온다. 흙 냄새를 킁킁 맡으며 겨울 옷을 정리하고 봄 옷을 옷장에 채워넣어야하나 고민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봄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벚꽃과 장미를 사진에 담기 좋은 계절에 데이트 하며 입을 봄 옷을 구하기 위해서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거린다.


 올 봄에는 트렌치코트 안에 셔츠를 입고 싶다. 쌀쌀한 아침에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외출했다가, 해가 정수리 위에 걸치면 트렌치코트를 팔에 걸치고, 셔츠를 입은 채 걸어다닐 것이다. 여름볕만큼 뜨겁지도, 겨울볕만큼 차갑지도 않는 봄볕같은 색깔을 가진 하늘색 셔츠를 입고 싶다. 겨울 셔츠보다 가볍고, 투명한 봄 셔츠 사이로 봄 바람이 들락날락거리고, 그 때 셔츠가 피부 위로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는 감촉도 즐기고 싶다.

겨울 셔츠보다 가볍고, 투명한 옷 사이로 봄 바람이 들락날락거리고, 그 때 셔츠가 피부 위로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는 감촉도 즐기고 싶다. (출처: maditashaus.com)


 봄 셔츠가 피부에 닿는 느낌을 좋아해서, 봄 옷을 고를 때는 소재의 촉감에 많이 신경쓴다. 부드러운 느낌, 마처럼 살짝 거친 느낌, 싸늘한 느낌 등 피부 위로 전해지는 감촉을 고려하면서 옷을 고르는 재미도 있다. 실은 천의 감촉이 좋을 수록 소재가 좋고, 그렇지 않으면 소재의 품질이 안 좋다. 코마사, 카드사 등 전문 소재 용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소재가 좋네.'라는 말을 하면서 직감적으로 좋은 소재를 구분해낸다. 어자피 좋은 소재란 말 그대로 좋게 느껴지는 소재들을 일컫는 표현이니까 사람들의 주관적 판단이 되려 객관적 기준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좋은 소재가 왜 좋은 것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 쇼핑을 하며 즉각적으로 좋은 소재를 판단하는 것도 어렵다. 옷에 달린 태그에 적힌 소재 정보를 확인해도 면은 항상 좋은 소재이고, 폴리는 싸구려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면도 폴리보다 못한 것이 있고, 폴리도 폴리 나름대로 고급 소재가 될 수 있다. 같은 원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천을 만드느냐의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천을 만드는 원재료 이름이 같은 '면'이라도 어떻게 만들고, 어떤 가공을 하냐에 따라서 품질이 천차만별이다. 그러기에 100% 확신하며 좋은 소재를 분간해내긴 쉽지 않다.


 좋은 소재를 구분하기 어려운 또다른 이유는 좋은 소재는 시간이 흐르면서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좋은 소재는 시간이 흘러도 잘 변하지 않는다. 반면 나쁜 소재는 옷 가게에서 평범한 소재인척 가면을 쓰고 있다가, 옷장과 세탁기를 오가면서 점점 추레한 본 모습을 드러낸다. 나쁜 소재는 빠른 속도로 보풀이 일어나고, 거칠어지며 색이 빠진다. 물론 좋은 소재도 낡는다. 하지만 옷도 늙는다라고 생각할 때, 좋은 소재는 나쁜 소재보다 노화 속도가 느리다.


 소재는 가짓수가 많고, 소재의 진가는 사용 과정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옷 가게에서 사고픈 옷이 좋은 소재로 만들었는지 구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좋은 소재로 만든 옷을 얻을 확률을 높이는 몇 가지 방법은 있다. 지금부터 필자가 경험으로 얻은 몇 가지 노하우 중 일부를 공유하고자 한다. 이 방법을 통해서 독자들이 소재를 만지며 소재의 느낌을 익히는 습관이 들이고, 그 습관을 통해 좋은 소재로 만든 옷을 얻기를 기대한다.


1. 면 소재의 구분: 천이 부드럽고 따뜻한가.

  천이 '부드럽다'라는 것은 '무엇보다 부드럽다.'라는 표현의 축약형으로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얻는 결론이다. 그래서 이런 판단에는 기준이 필요한데, 옷을 고를 때 소재가 좋은 셔츠를 입고가서 그 옷을 기준으로 삼으라고 추천한다. 물론 입고 있는 옷이 사고자 하는 옷과 동일한 소재, 종류여야한다. 즉, 면 셔츠를 사려면 면 셔츠를 입고가는 것이 좋다. 그래야 사고자하는 면 셔츠가 입고 있는 면 셔츠보다 부드러운지, 거친지를 비교할 수 있다.  사고자 하는 셔츠가 입고 있는 셔츠만큼 부드럽다면 그 셔츠는 좋은 소재라 볼 수 있다.

 이 방법을 글로만 보면 '이게 가능해?'라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부드러운 이불에 얼굴을 비비는 것을 '좋다'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방법으로도 충분히 좋은 소재를 '좋다'라고 느낄 수 있다.  

 촉감의 부드러운 정도로 소재의 질을 감별하는 경험이 조금씩 쌓이다보면 소재의 온도도 느낄 수 있다. 면 소재는 폴리 소재보다 더 따뜻한 느낌이 든다. 폴리에는 페트병과 비닐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이, 면에는 강아지털에서 느껴지는 온화함이 있다. 이건 면과 폴리의 분자 구조차이로 나타나는 성질이다. 면은 살아있는 식물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생물의 분자가 가진 따뜻함을 가졌다. 반면 폴리는 석유에서 뽑아져 나와서,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 용품과 닮은 분자 구조를 가졌다. 그래서 폴리 소재에선 플라스틱의 차가움이 느껴진다.


2. 폴리와 혼방 소재: 주름이 싫다면

 필자는 다림질하는 일을 귀찮아한다. 옷을 만들 때도 다림질하는 과정을 가장 싫어했는데, 특히 여름철에 증기를 뿜어내는 무거운 다리미를 밀고 당길 때 땀을 뻘뻘 흘리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땀과 함께 얼굴에 붙고, 땀과 화장이 뒤엉키는 느낌이 찜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김이 잘 지는 옷을 좋아하진 않는다.

 면 소재는 피부에 스치는 부드러운 촉감 때문에 좋아하지만 구김이 잘 간다. 이는 면 소재의 분자구조 때문에 나타나는 불편함이다. 면처럼 물을 잘 흡수하는 소재는 물 분자와 유사한 분자 구조(수산기)를 일부 포함한다. 이 분자 구조를 가진 소재는 물과 잘 떨어지지 않으려하면서도, 수산기를 가진 소재들끼리도 잘 떨어지지 않으려한다. 그러다보니 소재가 한 번 접혀서 천과 천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소재 분자들이 잘 떨어지지 않아 주름이 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주름이 잘 지는 면 소재 옷은 다림질이 귀찮아 잘 입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주름지는 소재로 만든 셔츠는 일부러 피하고, 촉감이 다소 아쉬워도 폴리와 면이 혼방된 소재로 만든 셔츠를 구매한다. 면 소재를 통해서 부드러운 촉감의 이점을 챙기고, 동시에 주름이 잘 안지는 폴리 소재의 이점도 챙기는 것이다. 일부 양보하고 일부 취하는 마음으로 혼방 소재를 선호한다.


 + 주름이 잘 지는 기준으로도 면과 폴리를 구분할 수 있다. 옷 끝단을 종이접기하듯 접었다 폈을 때 주름이 빨리 옅어지면 폴리, 그렇지 않으면 면이다.


3. 레이온 소재: 실크의 광택이 탐난다면

 실크로 만든 옷은 가지고 싶어도 가격이 높아서 못 살 때가 많다. 대신 레이온으로 만든 옷을 구매한다. 레이온 소재는 대게 실크와 비슷한 광택을 내는 옷을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진 섬유이다. 물론 폴리로도 실크를 흉내낼 수 있지만 레이온 소재는 폴리보다 부드럽고, 정전기가 덜 난다.

 레이온은 폴리보다 물을 잘 흡수해서, 땀 흡수가 잘 되는 장점이 있지만 주름이 잘 사라지지 않는 단점이 있다. 즉, 폴리와 레이온은 주름으로 구분하기 쉽다. 옷 가게에서 파는 옷 끝을 앞서 면과 폴리를 구분할 때처럼 조금만 접어보자. 이 때 주름이 칼 같이 생겨서 잘 사라지지 않으면 레이온, 주름이 빠르게 옅어지면 폴리일 때가 많다. 필자는 주름이 많이 지는 옷을 좋아하지 않아서 레이온과 폴리 혼방 옷을 선호한다.

 양복 셔츠에도 실크 대신에 레이온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셔츠를 면 소재로만 만드는 것보다 면과 레이온을 섞은 소재로 만들면 셔츠에 실크 광택이 살짝 보태진다. 실크를 사용해도 되지만, 실크는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레이온을 대신 사용하는 셔츠가 많다. 단, 레이온이 포함된 옷은 세탁을 할 때마다 급격히 낡기 때문에 오래 입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실크 광택 (출처: www.moodfabrics.com)


4. 화이트 셔츠: 누렇게 변할 것을 각오해야

 화이트 셔츠는 구매하고 일 년에서 삼 년 밖에 못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체로 화이트 셔츠가 가진 뽀얀 흰빛은 일 년이면 사라진다. 일 년 정도 지나면 화이트 셔츠는 스멀스멀 누런 빛을 드러낸다. 화이트 셔츠에서 표백 성분이 점점 사라지고 본래 색인 누런색이 나타나는 것이다. 다시 하얀 색 셔츠로 만들기 위해서 표백 처리를 할 수 있지만, 셔츠는 표백 처리를 할 때마다 빨리 닳는다. 결국 찢어지거나 낡아서 셔츠를 버리는 것은 셔츠가 누래져서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경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고가의 화이트 셔츠를 구매하는 일은 자제하길 바란다.  

화이트 셔츠 (출처: www.stories.com)


5. 한 번 속인 곳이 두 번 못 속일까.

 보세 옷 가게를 다니면서 소재를 속이는 경우를 자주 봤다. 거친 촉감을 가진 가디건을 걸어놓고, 소재 정보에 '캐시미어'라 적어놓은 옷도 봤다. 그 가디건을 쓰담는 손바닥이 '이건 절대 캐시미어가 아니야.'라고 확고하게 말했다. 이렇게 매장에서 옷을 꼼꼼하게 살피면 이런 속임수를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쇼핑할 때는 거짓말을 피할 길이 없다. 컴퓨터는 시각과 청각 정보 정보만 제공하기 때문이다. 좋은 소재와 나쁜 소재를 광택감의 차이로 구분해도 포토샵으로 보정된 사진으로 진실을 분간하긴 어렵다. 특히 호평만으로 가득찬 리뷰만 보면 리뷰마저 진짜인지 의심이 근다. 이럴 때는 억울하겠지만 한 번은 속아주는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 유명한 A 인터넷 쇼핑몰에서 폴리 코트를 산 적이 있다. 모직 코트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폴리 코트 중에서도 더 나은 코트를 선택해야했다.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것이 더 저렴하기에 어디서 코트를 살까 인터넷을 뒤지다 A쇼핑 사이트를 처음으로 이용해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데는 이유가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코트를 샀었는데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도착한 코트의 소재는 보통 시중에 파는 폴리 코트보다 훨씬 거칠었고, 옷 안으로 바람이 숭숭 들어올 정도로 소재 성김이 좋지 않았다. 옷장 안에 보관하고 있는 다른 폴리 코트들보다 가격은 비싸면서 품질은 열등했다. 심지어 입으면 입을 수록 코트 주머니는 주머니에 넣은 손과 물건의 무게를 못 버텨서 점점 늘어나며 소재가 뒤틀렸다.


 그 후론 A 쇼핑몰 사이트에서 절대 옷을 구입하지 않는다. A 쇼핑몰 사이트에서 내놓는 예쁜 옷 디자인 때문에 유혹을 당할 뻔하다가도 실패했던 경험이 강렬히 필자를 말린다. '좋은 소재로 자체 제작합니다.'라는 문구로 사람을 기만한 쇼핑몰이 매번 고객을 속이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6. 단골집을 정해서 내 마음 속에 저장!

 인터넷 쇼핑몰에서 감당할 위험부담을 낮추려면 단골집을 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경험상 좋은 소재로 옷을 만드는 곳은 다른 옷도 좋은 소재로 만들었다. 소재를 보는 안목이 있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옷 가게는 다른 가게에서 파는 '폴리 100%'라고 똑같이 적힌 옷보다 좋은 폴리로 만든 옷을 구비해놓는다. 폴리도 가공 방법에 따라서 품질이 나눠지고 그걸 구분할 정도로 감각있는 사장님은 신뢰를 준다. 이런 사장님들이 운영하는 가게나 브랜드를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옷을 쇼핑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사이트와 가게를 찾는 것보다 안전한 방법이다.




 옷도 늙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옷이 언제나 새 것일 것처럼 생각하고 새 옷을 고른다. 다수는 옷이 늙어가는 과정을 잘 살피지 않는다. 좋은 소재로 만든 옷은 늙는 과정에서 시간을 품고, 고색창연한 멋을 풍긴다. 하지만 나쁜 소재는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추하게 으스러진다. 옷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할지도 소비하는 과정에서 고려되야하는 이유이다.


 5년 전에 산 체크무늬 셔츠가 갑자기 낡아보여서 옷을 오래 살핀 적이 있다. 무엇이 이 옷을 낡아보이게 만든 것인지 천천히 훝어봤다. 우선 셔츠 위로 작고 동글동글한 보풀들이 자잘하게 맺혀있었다. 자세히 봐야만 보이는 정도부터 진드기 크기 만한 것까지 여러 크기의 보풀들이 옷 표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자잘히 박힌 보풀들은 옷 표면에 특이한 결을 만들고 있었다.


 소재의 표면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체크 무늬도 뒤틀려있었다. 내 몸 모양대로 천이 늘어나고, 세탁으로 수축하면서 수직, 수평의 단정한 천의 짜임이 일그러졌다. 그러면서 체크무늬도 직선이 아닌 곡선이 되었다. 하지만 옷 표면은 여전히 부드럽고 단단했으며,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햇빛이 반사되어 나타나는 광택감이 줄었음에도 잘 마른 단풍 빛깔처럼 오래된 멋스러움이 있었다. 이렇게 좋은 소재는 시간이 증명한다. 좋은 소재는 주인과 발 맞춰서 늙을 줄 안다. 이것이 오랫동안 자주 입을 옷을 고를 때는 천 위에 손을 여러번 비비면서 천의 촉감에 집중해야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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