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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령 Mar 17. 2018

촌스러워지는 법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촌스러움을 탐하다.

 

그림1. 1970년대 패션

 그가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양복이 펄럭이는 소리가 우렁차다. 힘차게 걸어오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고 고개를 돌아봤다.

 나팔바지가 휘날리고 있었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라는 동요가 울릴 듯 힘차게 펄럭이더라. 양쪽 어깨 뽕은 한라산과 백두산이 담대하게 하늘을 오르듯이 솟아 있다.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아... 아메리칸오? 여기 커피 없나요?"

 그가 아메리카노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남자는 정확하게 분할된 1대 1 가르마를 했다. 딱딱하게 포마드로 고정된 머리카락 위로 카페 조명이 반사돼서 노래방 조명처럼 빛났다. 여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촌스러움을 앞에 두고,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인 척 애써 남자에게 웃어줬다. 그래도 어르신들이 주선해주신 선 자리니까 예의는 끝까지 지켜야 했다.

 "곧 저녁 시간이네요. 깔볼라나 좋아합니까? 아니면 봉구네파스타 어떻습니까?"

 여자의 인내는 남자가 파스타 이름을 한국어화하는 애국심에 폭발해버린다.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에서 촌스러운 남자는 오랫동안 풍자적으로 묘사되어 왔다. 촌스러운 사람은 패션을 모르고, 매너에 무지한 모습으로 텔레비전 속에 자주 등장했다. 촌스러움을 보는 시선은 오랫동안 곱지 않았다. 여기서 '촌스럽다'라는 단어에서 '촌(村)'은 시골을 가리키는 말이다. '촌스럽다'라는 말은 도시적인 못한 것, 시골스러운 것에 대한 비아냥과 거부감이 담겨 있다. 공간성에 어원을 두는 '촌스럽다'란 단어는 시간의 성질도 가진다. 그래서 '트렌드를 쫓지 못함, 옛날 스타일'을 표현하는 형용사이기도 하다. 어떤 용례로 사용해도 '촌스럽다'라는 단어에는 언제나 부정적인 어조가 담긴다.


 하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에서 시골 청년들의 차림새는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지 않았다. 과수원 청년 재하가 입은 카고바지는 양복바지보다 편안해 보였다. 주머니가 주렁주렁 열린 바지를 입고 낡은 오토바이를 타는 재하의 모습은 반들반들한 검정 모터사이클을 타는 이들보다 멋지다. 재하가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면서 배시시 웃는 모습은 자연을 다룰 줄 아는 지적임이 보인다. 그 모습엔 땅의 순리를 깨달은 자의 여유가 있다. 재하는 이전 미디어에서 무식하게 표현된 촌스러운 사람들과 달랐다.


 영화 속 주인공 혜원이 입은 몸뻬 바지엔 넉넉한 여유가 있다. 혜원의 친구인 은숙이 입은 은행원 복장 역시 품이 넓어서 각진 유니폼보다 친근해 보였다. 영화 속 세 친구를 보니 몸뻬 바지와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걸치고 귀뚜라미 소리가 찌롱찌롱 들리는 시골길을 걷고 싶다. 촌스럽게 입어도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촌이 가고팠다.


 누군가에겐 도시는 각박이 주는 허기짐이 만연한 곳이다. 그 허기짐을 알 것 같아 영화 속 혜원이 "배고파서" 시골에 돌아왔다는 뚱딴지 같은 말이 이해됐다. 그녀에게 도시는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찰리 채플린이 양손에 연장을 들고 나사를 조이던 것처럼 숟가락과 젓가락을 양손에 들고 기계적으로 밥을 먹는 곳이다. 그녀가 도시에서 가진 식사는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자극적인 맛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이다. 도시의 식사는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진 않는다. 촌스럽게 입고, 촌스러운 곳에서 촌스럽게 밥을 먹으면 이 배고픔이 살아질까. 그렇다면 촌스럽기가 가장 어려운 패션이 촌스러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촌스러워지는 방법 1: 태양을 피하지 않는다.>

 옷이 빛나려면 옷걸이가 좋아야 한다. 촌스러운 패션을 위한 옷걸이는 바로 까무잡잡한 피부이다. 촌스러운 사람의 까무잡잡한 피부는 바닷가에서 오일을 온몸에 바르고 선탠을 하는 사람의 피부와 다르다. 촌스러운 사람은 태양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랑비에 옷 젖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슬비같이 뿌옇게 내리는 햇볕에 젖어든다. 그들은 태양을 피하기 위해 모자와 양산을 쓰지도 않는다. 그러다 여름이 오면 벼가 익고, 꽃이 피듯이 그들 피부는 갈색으로 익고, 얼굴엔 주근깨가 자잘하게 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햇볕을 물들면서 촌스러운 사람의 피부는 완성된다.

그림2.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촌스러워지는 방법 2: 싼 옷이 우선이다.>

 촌스러운 사람은 옷을 살 때 예쁜 옷보다는 저렴한 옷부터 찾는다. 그들이 자주 이용하는 읍내 옷가게에는 몸뻬 바지가 쌓여있고, '5000원에 1+1'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물류도 풍부하고, 옷가지도 다양하다. 저렴한 가격으로 취향에 맞는 몸뻬 바지를 찾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촌에서 파는 옷은 저렴하지만 못나지도 않다. 촌에서 파는 옷은 서울 사람들이 강남 지하상가에서 사는 꽃무늬 원피스보다 더 화려한 꽃무늬와 또렷한 색감을 자랑한다. 장미 무늬, 나팔꽃 무늬, 개나리 무늬. 현란한 식물 문양은 아르누보 정신에 입각해 재현된 예술이다. 촌스러운 사람은 고고한 예술품 더미 속에서 나물 캘 때만큼 신중하게 원하는 옷을 솎는다.

 촌에서 파는 옷은 값에 비해 품질이 뛰어나기까지 하다. 특히 몸뻬 바지는 네파나 K2, 유니클로 같이 유명한 브랜드에서 파는 쿨링 소재 옷보다 더 시원한 촉감을 선사한다. 몸뻬 바지는 유명 스포츠웨어 브랜드에서 개발한 특수 스트레칭 소재만큼 쫀쫀한 탄력을 가졌다. 어쩌면 우리는 헬스장에서 트레이닝복보다 몸뻬 바지를 입으로 때 더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촌스러워지는 방법 3: 패션은 깡이다.>

 촌스러워지려면 미슐렝 레스토랑에서 밥 한 공기를 물에 말아먹는 깡이 필요하다. 샤넬 패션쇼에서 몸뻬 바지에 고무신를 신고도 당당할 줄 알아야 촌스러운 사람이다. 그렇게 촌스러운 패션을 고수하는 태평함은 남자 패셔니스타가 미니스커트를 입는 당당함과 같다. 촌스러운 사람은 난해한 옷을 입고 걷는 패션쇼 모델만큼 자신감이 넘친다.

그림3. 꼼데가르송 2018 FW RTW 패션쇼


<촌스러워지는 방법 4: 조화를 추구한다.>

 촌스러운 사람은 '흰색 티셔츠에 청바지'라는 피타고라스 정리만큼 유명한 패션 공식을 타파한다. 그들은 옷에 대한 전형적인 패션 규칙을 깬다. 촌스러운 옷으로 구성된 옷장에선 어떤 옷을 모아 입어도 똑같이 촌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촌스러운 와중에도 다양성을 추구한다. 어떤 옷도 같이 입을 수 있기에 조합의 가짓수는 무궁무진해진다. 그러니 옷장에 옷이 한 가지만 더해져도 옷장의 가능성은 우주가 팽창하는 듯 넓어진다. 우주의 것들이 열역학 법칙을 따라 조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촌스러운 옷가지들도 어떤 티셔츠와 바지와도 조화를 유지하면 옷장을 팽창시킨다.


<촌스러워지는 방법 5: 자기를 긍정한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과 몸매라고 하지만 촌스러운 패션은 외모를 비난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뱃살이 생길 수도 있는 법이고, 주름도 생기는 게 이치인지라. 촌스러운 사람은 옷 주름이 몸에도 생긴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노자와 같다.

 촌스러운 사람은 자기 비난을 멈추고, 자글자글한 눈가 주름을 보고도 '잘생겼다.'라고 칭찬한다. 어이가 없어 보이는 자기애는 촌스러운 사람에게 가장 크게 배울 점이다.




 지금까지 촌스러운 패션이 완성되는 방법을 살폈다. 요약하면, 촌스러운 사람은 자연을 사랑하고, 자유로우며 자신감이 넘친다. 촌스럽게 옷을 입는 과정에서는 드레스코드에 몸이 억압되고, 더 나은 외모를 위해서 자신감을 침식시키며, 공식에 맞지 않는 패션을 힐난하는 일이 없다. 그들의 옷에는 마음의 평안이 있다.


 <리틀 포레스트>는 촌스럽게 입은 주인공들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담았다. 비록 음식이 주가 되는 영화지만 촌스러운 옷을 입고 깔깔 웃는 그들이 눈에 밟힌다. 그들 모습은 매일같이 완벽한 스타일을 위해 화장하고, 옷장에서 고민을 하느라 지친 우리에게 촌스럽게 입는 것이 치유가 됨을 느끼게 해준다. 배고픈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다가올 여름 연휴엔 흰 원피스와 밀짚모자 대신 촌스러운 몸뻬 바지를 입고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

그림4.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그림 출처>

그림 1 : https://www.etsy.com/listing/178190119/1970s-mens-suit-pattern-simplicity-5161?utm_source=OpenGraph&utm_medium=PageTools&utm_campaign=Share

그림 2: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54449

그림 3: https://www.vogue.com/fashion-shows/fall-2018-ready-to-wear/comme-des-garcons/slideshow/collection#7

그림 4: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5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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