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나, 어쩌면 엄마 공부를 한 게 아닐까

아기를 보다가, 문득 식물 키우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by 오잘맘

말하지 못하는 존재와의 소통에서 떠오른 단상

아기를 키우다 보면, 종종 식물이 떠오른다.

둘 다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신호’를 보낸다.

필요한 게 있으면, 표정과 기운으로 알려준다.

식물도 그렇다.

햇빛이 부족하면 잎이 축 처지고,

물을 너무 주면 뿌리가 상한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방식으로

살피고 돌봐야 겨우 잘 자란다.

그런데 그게 꼭, 지금의 내 아기 같다.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금방 알아차리고,

몸이 불편하거나 기분이 나쁘면

울음으로나마 ‘뭔가 이상하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그걸 알아차리는 건

오롯이 나, 엄마다.

돌봄은 관찰에서 시작된다

식물도 아기도,

그냥 가만히 바라보는 걸로는 부족하다.

그 안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습관처럼 들여다봐야 한다.

잎이 노랗게 변하는 이유,

물은 줬는데 왜 마르듯 시드는지,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릴 때

비로소 돌봄이 시작된다.​


아기와 식물은 닮은 부분이 제법 많다


왜 울었을까, 이 울음은 배가 고파서일까,

졸려서일까,

설명이 없는 존재와 하루 종일 소통하며

나는 지금도 배워가고 있다.

눈빛, 손짓, 체온까지

하나하나 읽어가며

내가 더 예민하고 따뜻해지고 있다.

초등학생 때의 나도,

이미 돌보는 사람이었다

문득 생각났다.

초등학생 때 나는 식물을 참 좋아했다.

유행하던 개운죽을 집으로 들여와

매일 물을 주고,

잎이 자라면 “잘했어” 하고 말을 걸곤 했다.

학교 가기 전엔

“잘 다녀올게” 인사하고,

겨울이면 베란다에 있던 화분을 내 방으로 들여와

추울까 봐 보살폈다.

누구도 시킨 적 없는데,

그렇게 나는 식물 하나에도 마음을 쓰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이미

‘누군가를 돌볼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었다.

표현하지 않아도,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

식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잎이 자라나는 걸 보며,

매일 물을 줄 수 있다는 일상이

어릴 적 나에게는 큰 안정이었고, 기쁨이었다.

아기도 그렇다.

무언가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훨씬 충만해졌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존재의 무게,

그 고마움을 아는 내가 되었구나 싶다.


무언가를 보살피고, 돌보는 행위는 성장을 이끈다

식물을 키우던 나는,

언젠가 아기를 돌보는 사람이 되었고

아기를 돌보는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나로 성장하고 있다.

식물도, 아기도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소중하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나는

늘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마음을 읽고,

세심한 감정으로 하루를 산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말하지 못하는 그 존재들이

오히려 더 많은 말을 건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적인 언어의 표현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무수히 많은 언어를 표현하고 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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