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소년』

책기록

by 물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그저 짙은 구름에 가렸는지도 모르지.
어쩌면 때마침 바람이 불어 티끌이
내 눈 속에 들어갔는지도 모르지.
지금은 네가 보이지 않지만
나는 변함없이
너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지금은 네가 보이지 않지만, 나는 변함없이 너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언니는 왜 이렇게 착해. 나는 커서 언니같은 사람이 될거야” 하였던 너가 생각나면 나는 불끈 주먹을 쥐고, 한걸음 세상을 향해 용기낼 수 있어. 나무늘보도, 고흥의 선생님도, 녹색 책의 선생님도, 해바라기도, 너도 저 멀리 별이 되었다고 믿어. 나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죽으면 별이 되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아. 밤 하늘의 무수한 별은 모두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 믿어. 하나하나 세어가며 밤하늘의 빛을 바라보는 것은 하루하루 사라져간 이들을 세는 것과 같다고 믿어.



미소를 머금은 달들이
한 차 가득
슬픔에 잠긴 수많은
도시들을 향해서 운송중이다.


끝없는 절망,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그래서 매일 달은 미소를 머금고 달빛을 우리에게 운반한다. 힘든 세상에서 자연을 보며 우리는 급한 일을, 상념을, 고민을, 슬픔을 조금 덜고 지우거나 환기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는 자연을 보는 것 그리고 가만히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조차 공짜로 할 수 없다. 누군가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카페를 가야 하고,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어야만 한다. 자연이 주는 넉넉함과 여유로움은 없지만, 때로는 더 편리하고 효율적이다고 생각되는 공간이 바로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비를 맞으며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타닥타닥
우산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맑은 소리에 함께 귀 기울이곤 했다.


어렸을 때, 비를 맞고 돌아다니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샤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보슬보슬 비가 나를 정화해준다고 생각한다. 비 웅덩이를 장화를 신고 첨벙 첨벙 걷고, 비가 더 쏟아지는 처마 밑으로 가서 비를 맞았다. 이제 어른이 된 나는 비 웅덩이를 피하고, 우산을 쓰고 다니고, 비를 맞지 않으려고 애쓴다. 과거의 기억에서 비를 맞고 돌아다니고, 비를 맞고 돌아다닐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기억 속에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영원히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물거품처럼 부질없는 것이겠지만,
나는 나의 꿈을 지키고 싶다.
기쁨이 시작되는 곳에는
언제나 슬픔이 숨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기억 속에 있는 것이라면, 박제된 것처럼 영원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 아이를 기억하고 있고,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살아있다. 내가 죽어도 그 아이에 대한 마음으로 곳곳이 행했던 행동의 흔적과 사유의 흔적들이 이 세상에 곳곳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내 발자국과 발자취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아침 조회 시간
교장 선생님의 훈화 순서였다.
“세상에는 원래 달빛 같은 것은 필요 없어요.
어린이 여러분, 절대로…”
여기까지 말한 교장 선생님이
갑자기 거품을 토하면서 쓰러졌다.
그런데 정작 무서운 일은 아무도
교장 선생님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달빛이 필요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에게는 햇빛과 달빛과 바람과 흙내음과 애정과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어둡고 무거운 밤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저길 봐, 저기 달이 나왔지?


어두운 밤에는 ‘무거운 밤’이란 단어가 참 알맞다. 무겁고, 버겁고, 고달픈 사람들에게 밤은 더 무겁고, 더 버겁고, 더 고달플 것이다. 그들은 이것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하고 생각하며 버티고 버틴다. 그리고 그들이 곪아서 터질 때, 사회 일간지나 뉴스의 보도 면에 활짝 타올랐다가 찰칵하고 꺼진다. 그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여기까지이기 때문이다. 망각한 이들로 인해, 이 길고 긴, ‘무거운 밤’은 끝이 나지 않는다. 무거운 밤은 언제든지 누군가의 삶에 스며들어 그들을 눈물에 젖어들게 하기 때문이다.



해질 무렵, 한바탕 광풍이 일어
달과 소년을 멀리멀리 날려버렸다.
소년과 달은 서로 꼭 부둥켜안고 놓지 않았다.


살아간다는 것을 늘 누군가를 부둥켜안아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가족을 부둥켜안고, 친구들을 부둥켜안고, 선배들을 부둥켜안는다. 선생님을 부둥켜안고, 교수님을 부둥켜안는다. 나는 영화를 부둥켜안고, 책을 부둥켜안는다. 쓰담듬고 매일 안는다. 더 넒게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만든 노동자를 부둥켜안고, 사회 구축망을 부둥켜안고, 사회와 경제와 정치를 부둥켜안는다. 관계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조차 모두 관계되어 있다.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사회학적’ 상상력’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이것에는 ‘상상력’이 듬뿍 담겼지만, 우리네 현실과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어요. 이를 인지하지 않고는 살아가는 것은 내게 주어진 것들에 대한 존경의 표식을 하지 않는 것과 같아요. 그러니, 당신을 초대하고 인도할게요. 결국 당신은 이를 환원할 수밖에 없을 거에요.



바람
귀를 엘 듯이 불어댄다.

그칠 줄을 모른다.
달은 기쁜 마음에 빙빙 돌았고
소년은 달 위에서 깊이 잠들었다.
소년은 꿈 속에서 어렴풋이
은은한 백합 향기를 맡았던 것 같다.


달과 해가 기쁜 마음으로 빙빙 우리 주변을 돌고 있는 동안, 우리도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빛내며 살아간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해의 편에서 지내다가 달나라 속으로 잠이 든다.



지미, 이민아 옮김, 『달과 소년』, 청미래, 2001.

2022年 10月 25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