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는 슬픔

조각글

by 물결


가루약이 가득 든 대접에 노란 훼카리 주스를 출렁이며 붓는다. 인공물이 든 양약은 달큰하지만 자라나는 세포를 막기엔 역겨워요. 여기 너른 플라스틱 대야에 내 몸에서 나온 고통의 피가 담겨있어요.


돌이킬 수 없는 사금파리 조각을 마음 저미도록 헤아리기도 하나요. 눈을 뜨고 생의 저편으로 날아간 새를 직시할 수 있나요. 밭에 오래토록 머무는 구불구불 끈질긴 환삼덩쿨을 또렷하게 기억하나요. 보고 싶지만 보지 못하는 가려진 슬픔을 아시나요. 자라나는 병 중에 가장 고통이 큰 병을 함께 느끼나요.


날마다 다락방 위의 광주리. 광주리 위의 복 받은 음식이 피어난다. 죽어가는 자신보다 살아있는 가족을 염려하여 병실에서 집으로 몰래 와서 날마다 새로운 김치를 담구는 행위. 아픈 입의 쓴맛 때문에 완성된 김치를 몇 번이나 버리고 다시 음식을 했던 외할머니. 남겨진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야만 했던 외할머니. 늘 만든 음식을 옆집의 옆집까지 가져다 주라 심부름시키던 살아생전의 외할머니.


내가 만든 온기 가득한 나의 상차림이 한가득 있어요. 청포묵, 메밀묵, 온갖 종류의 묵과 강정. 더금더금 무쳐둔 꼬들빼기 김치, 갓김치, 배추김치, 얼갈이 김치, 간장, 된장, 청국장, 김치콩나물죽. 남은 자매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나의 모든 따끈한 맛들이 여기에 있어요.


아직까지도 살아생선 외할머니를 알던 사람들이 찾아와 "참 좋은 사람이었어 참 온화한 사람이었어" 말하며 온 세계를 눈부신 노을빛으로 물들이는 외할머니. 엄마는 외할머니의 얼굴만 오려 모아둔 빛바랜 사진첩을 보며 컷이 되어버린 행복의 기억을 슬픔의 지문으로 마찰한다. 컷들 저편의 무한 레이아웃에는 무한 차원의 세계로 눈물자국이 퍼져간다. 가위로 오려낸 미소 담긴 엄마의 엄마. 엄마는 수많은 동글동글 얼굴 컷을 모서리가 희어질 때까지 어루만진다.


죽음의 환영을 목격한다면 무얼 달리 할 수 있을까. 난 눈을 뜨고 숨결을 잃은 엄마를 보았어. 고통 속에서 얼굴을 찌푸리면서 마지막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엄마의 곁, 병동 침대에 잠시 누웠던 나를 원망했던 걸까. 아냐. 아니야. 그럼 무얼까. 나는 계속 지속해서 그 순간을 떠올려. 엄마는 마지막 순간에 딸인 나를 보고 안도하고 싶었던 거야. 엄마는 고통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것은 강한 몸도 이겨내지 못하는 독한 약 때문이기도 했고, 엄마 안의 자라나는 병이기도 했어. 고통이 심하니까 마지막 순간에 나를 보아야만 했어. 엄마는 나를 너무 보고 싶었던 거야. 나의 눈은 엄마를 보았고, 엄마의 눈도 나를 선뜩하게 통과했어. 머리까지 눈물이 차오르면 난 물고기의 아가미를 꺼내 파닥파닥 호흡할 수 있어. 스물네살의 엄마는 그 찰나의 눈과 홀로 마주했고. 굽이굽이 깊다란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나. 여섯 번의 숨쉬기만 남았던 사람이 쏟아내던 고통을 떠올리곤 해. 남겨진 가족은 여섯 명이었고 이제 여섯 번의 숨이 남았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젠 영영 못 걷게 되어 집안에 귀거하고 좋아하던 전신샷 사진을 다신 찍지 않는 나의 남편, 위암으로 온 몸의 미세혈관이 터져 죽지만 2002년 올림픽을 굳세게 볼거라 믿었던 -두 아이의 가장- 나의 큰아들, 집의 큰 책임을 맡게 될 몸이 약하고 마음이 여린 착한 나의 첫째 딸, 앞장서서 화해의 손을 내밀고 쿨한 행동을 하는 상처가 많은 나의 작은 딸, 가장 시집을 잘 갈거라 믿었던 눈에 넣어도 예쁜 나의 셋째 딸, 젊음을 세 아이에게 건네고 서울에서 힘겹게 일하고 있는 나의 막내. 나에게 고귀한 여섯 번의 숨이 있어. 우린 얼마나 더 슬퍼져야 할까. 우린 그저 매일 엄마를 그리워해. 우린 아직도 아기처럼 엄마를 그리워해.


온 몸의 물이 바다로 변해 나의 눈에 폭닥이며 담겨. 내 마음은 낭떠러지처럼 가팔라지고 모든 것은 모래알처럼 변해. 폭포는 나의 가팔라진 마음을 타고 들어 오고 있어. 눈물이 흘러들어와 점묘화 방식으로 콕콕여 온통 내 마음에 시미라레솔도파. 시미라레솔도파. 반복해서 흔적을 아로새겨 동굴의 구멍을 만들어. 내 마음의 역사엔 오른손과 왼손이 저울처럼 반복되는 선율이 가득해. 마치 바흐의 인벤션처럼. 엄마, 나는 자석처럼 엄마가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갈거야. 엄마도 알지? 엄마와 함께 있는 나는 지치지 않아. 엄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해.


비과학이란 점을 알면서도 점집에 가는 이유. 눈물의 끝말잇기가 눈물로 마침점을 찍어도 하염없이 과거로 향하는 타임머신을 보살피는 이유. 돈과 직접 만든 수공예품과 몸을 가지고 아파트의 너른 공원에서 무당과 엄마를 보내는 굿을 해야만 했던 이유. 딸의 크고 작은 약을 볼 때마다 외할머니가 준 동일한 장기-간-를 조심하라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 병원에 갈 때마다 소독약 냄새가 끔찍하고 지독하게 느껴지는 이유. 날마다 상기해도 아물지 못하고 과거의 나무를 필요로 하는 엄마의 아궁이 흉터.


외할머니의 모든 손길과 모든 사랑. 외할머니의 크나큰 사랑은 외할머니를 본 적 없는 이에게 파동을 주어 형용할 수 없는 무한한 행복을 선사한다. 우린 심하게 다퉈도, 서로가 너무나 미워도 외할머니의 영혼 덕분에 서로의 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어. 돌아와야만 해. 우린 외할머니 앞에서 너무나 잘 살아야 하는 책임이 있어. 우린 외할머니 곁에서 하나로 이어지고 있어.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를 나는 온 몸과 마음으로 충만하게 느껴. 온 언니 오빠 조카 동생도 너도 나도 느껴. 그리고 마침내 우린 외할머니와 이어진 온 인류를 느껴.


오즈의 마법사의 회오리바람. 소용돌이. 출렁이는 너른 바다에 당도하네. 엄마의 엄마가 보낸 마지막 눈빛은 20대의 엄마에게 건너왔고, 30대 엄마를 지나, 40대 엄마를 지나, 50대 엄마의 하루를 뒤흔들어. 모든 아이는 고아가 되네. 고아가 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린 죽을 때까지 엄마를 찾아 항해할 거야.


오늘도 엄마의 얼굴엔 슬픔이 박혀 있어. 소금이란 표식이 콕콕 박힌 감자처럼. 태양이 스며들어 플랫 선율이 된 토마토 코처럼. 슬픔은 엄마에게 묻어 엄마의 오늘을 연주하게 하고, 슬픔은 엄마에게 녹아 온 인생을 항해하게 하네. 오늘 엄마의 얼굴에 어여쁜 외할머니가 서리어 있어.



2023年 1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