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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소포타미아 Jan 02. 2024

해외출장 중 해고당했습니다

이럴 거면 출장 왜 보냈어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안 되는 게 있다.

아무리 머물고 싶어도 떠나야 하는 곳이 있다.

아무리 그리워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지금껏 쌓아온 노력과는 별개인 곳에서 기회가 찾아온다.

과거의 나는 절대 예상하지 못할 곳을 집이라 부르고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인연이 내 삶을 바꿔놓는다.


움켜쥐면 사라질 것이고,

놓아주려고 하면 나타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 나의 자리, 나의 장소, 나의 사람들 中 에서




나의 20대 커리어의 피날레를 장식한 마지막 썰.

그에 대한 배경사건은 이전 글에서 확인.




https://brunch.co.kr/@o0omy/13










1. 사건의 발단



나를 출근 첫날 과장에서 대리로 떨어뜨린 그룹장과의 사이는 표면적으로는 마치 아주 성숙한 사회인인 것처럼 팀 회식자리에서 "우리 지난날은 다 잊고 앞으로 잘해 봅시다."라는 아주 그럴듯하고 쿨한 모습으로 나에게 소주 한 잔 따라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면 알아서 기어라' 전제된 관계가 되어버렸다.


오랜 고민 끝에 해외 살이 후 한국 직장생활을 마음먹은 만큼 나는 이왕 이렇게 입사한 곳, 첫 단추는 아예 틀어져 버렸지만 끝까지 열심히 다녀보기로 다짐했다.


자율출퇴근제를 시행했던 곳이라 나는 항상 보통 9시 내외로 출근을 했었는데, 

입사하고 첫 국내/해외 전체 영업회의가 월요일 오전 8시에 잡혀있던걸 전 날인 주말까지 완전히 잊고 있었던 나의 정신머리. (나는 해외영업팀)

결국 회의에 20분이나 지각해서 그룹장에게 싹싹 빌며 무조건 변명 없이 혼날 것을 각오했다.


아니나 다를까 회의가 끝나고 그룹장은 나를 따로 회의실로 불러서 쥐 잡듯, 


'내가 지금 당신에게 속으로 너무 화가 나는데 정말 많이 참고 있는 거다.'

'네가 그룹장이라면 나 같은 팀원을 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겠냐.'

'국내 영업팀에서 너 하나 근태 관리 하나 못 한 거에 대해서 나를 뭐라고 생각하겠냐.'


등등의 얘기를 했다.

사실 워낙 갑자기 잡힌 회의라 나 말고 지각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도 나만 불러다가 이렇게 뭐라고 하는 게 솔직히 이해는 안 갔지만 그래도 내 잘못은 맞으니까 절대 변명하지 않고 무조건 죄송하다고 다음부턴 이런 일 없을 거라고 싹싹 빌었다.

그러고는,


"본인이 회의 늦은 거에 대해서 우리 영업 부서 전체에 사과 메일 돌리세요."


라는 벌을 내렸다.


그래서 생전 처음, 혼자만 지각한 것도 아닌 회의에 늦게 들어온 것에 대해 우리 팀과는 상관없는 팀까지 전체 수신처로 '회의에 늦어 업무 흐름에 방해가 되어 사죄드립니다.'라는 메일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입사한 지 3개월이 다 되어갈 무렵, 나는 파트장 및 그룹장과 3주간의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다.

업무는 당시 한창 우리 제품을 셋업 중이던 고객사 현장에서 보게 되었는데, 공사 현장이라 바닥에 놓여있던 공구들에 걸려 혼자 크게 넘어지는 일이 생겼다. 


나는 사실 그때 그룹장에게 다쳤다며 불쌍해 보이기가 싫어서 적당히 혼자 해결하려고 해외 법인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발목 파스 좀 있냐고 물어본 것이 그룹장은 또 내가 자기한테 바로 보고 안 했다고 싫었던 모양이었나 보다.


현장에서 넘어진 날, 내가 업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픽업을 오겠다고 파트장과 그룹장이 현장 앞에 와주기는 했는데 아주 멀찍이 차를 대놓고 절뚝거리며 노트북, 가방, 현장 복장(안전모, 조끼, 안전화 등)을 양손 무겁게 들고 걸어오는 나를 보고도 둘 다 조수석에 앉아 창문만 약간 내려놓고 지켜보는 모습이 솔직히 서럽게 느껴졌다.



마음이 불편한 채 해외 출장 복귀 이틀 전,

한국에 있는 영업 상무에게 연락이 왔다.


"OO 씨, 한국 복귀 후 할 얘기가 있습니다."





2. 나의 행동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혹시 어떤 일이신지 미리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OO 씨 수습 평가 결과에 대해 얘기할 예정입니다."


나도 그동안 쌓아온 회사 생활 짬밥이 있어서 그런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차려버렸다.


"저랑 (근로) 계약 안 하시려는 거죠?"


"한국 오시면 얘기하시죠."


그러고 전화는 끊어졌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이건 해고 인폼이다.


아니 이럴 거면 해외 출장은 왜 보낸 건지, 모든 게 이해가 되지 않았고 당황스럽다 못해 방금 벌어진 일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룹장과 파트장은 이미 전 날 먼저 한국으로 복귀한 상태였다.

어쩐지, 본인들 먼저 한국 들어가겠다고 나에게 인사도 없이 가버려서 나는 그래도 조심해서 안전 귀국하시라고 한국 복귀하면 사무실에서 뵙겠다고 보낸 내 카톡을 읽고 답장도 안 할 때 뭔가 잘 못 되었다고 느껴졌었다.


본인이 직접 하기 싫은 말들 결국 영업 상무를 꼭두각시로 세워 나에게 통보하는 게 참 비겁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나에게 원래 화요일 복귀였던 비행기 일정을 굳이 이틀 앞당겨 일요일 저녁에 한국 도착해서 다음날 월요일 오전 출근 하라는 것도 솔직히 배려가 없다고 느껴젔었는데(북유럽 출장이었어서 비행시간만 17시간) 왜 그렇게 비행기 일정을 바꾸라고 했는지 영업 상무 전화를 받고 완벽하게 이해가 갔다.


왜냐면 수요일이 나의 근로 계약 수습기간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


근로법상 문제없이 나를 내보내려면 수요일 전에는 해고 인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머리를 쓴 것.




걔네가 요청한 대로 나는 일요일 저녁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영업 상무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 내일 퇴사하겠습니다. 번복할 일은 없을 테니 별도 면담은 필요 없습니다."




역시 인생은 선방이 중요하다.






3.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나는 결국 그룹장에게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잘못은 인사팀과 자기네들이 해 놓고 해결은 나보고 하라는 상황이 억울해서 목소리를 낸 내가 당돌해 보였던 거고, 쉽게 부려먹을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

그룹장의 오른팔인 파트장이라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출근한 날 이런 소리를 하기도 했다.

"OO 씨가 업무적으로 잘 못 한건 없어요, 다만 스타일이 우리나라 회사들에 안 맞아요."


본인의 경력이라곤 그 회사가 전부인 사람이 아주 세상의 현명함은 전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아무튼 월요일,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고 마지막 출근을 했다.

출장 중 국내/해외 영업팀 사람들에게 주려고 샀던 간식을 돌렸다.

내 책상을 정리했다.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과 카페테리아에서 얘기를 했다.

그룹장 책상 위에 퇴직 결재서를 올려놨다.

화장실을 갔다 온 사이, 그룹장의 사인이 되어있는 결재서가 내 책상에 놓여있었다.

그룹장과 나는 서로 마주치지도, 인사도 하지 않았다.

오후 3시쯤 사무실을 나왔다.



한 달 뒤, 나는 영국에 갔다.






+a 마치며


되게 웃겼던 게 이 날 나만 퇴사한 게 아니었다.

이 회사에 나랑 같은 날 입사해서 친하게 지냈던 국내영업팀원이 하나 있었는데 월요일에 복귀해서 나 퇴사한다고 얘기하니까 자기도 오늘 퇴사한다는 거  

(어 너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계획한 것도 아니었는데 같은 날 입사해서 같은 날 퇴사한 두 인물.

알고 보니 그분도 국내영업팀에서 온갖 말도 안 되는 내부 정치질에 시달려있었다.

암튼 그분도, 나도 지금 이직한 다른 회사에서 각자 이쁨 받으며 회사 생활 아주 잘하고 있다.


다만 나는 이렇게 한국 직장 생활에 아주 질려버려서 이제는 더 이상 한국 취업 못 하겠다고 질색팔색을 하니까 그분이 내가 하필이면 이런 회사에 걸린 거지 다른 좋은 한국 회사들 많다며 영국에 가겠다는 나를 달래서 같이 한국에서 다시 이직해 보자며 설득을 해주셨지만 나는 결국 갖고 있던 영국 워홀 비자가 아까워 출국을 결심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영국에서 한 번 일자리 구해보겠다고.


어차피 이렇게 영국에 갈 거였다면 차라리 한국에서 회사생활 한 번 해보고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해외취업을 할까 국내 취업을 할까 갈팡질팡 하던 와중에 결국 확실한 답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이 한국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거절했던 영국 일자리 오퍼들을 떠올리며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영국에 가면 금방 취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거와는 달리 나는 영국 취업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다만 더 큰 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 취업 실패 기는 다음글에 이어서 계속.






다들 새 해에는 나보다 덜 고생하시길. 

시간과 인연이 허락하는 날까지 머물고,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하길.

H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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