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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소포타미아 Jan 08. 2024

언제까지 이별을 해야 할까

내가 세상과 이별할 때까지




'오늘은 내 꿈에 나오지 말아 줘. 제발.'



기억은 밀어 낼 수록 가슴에 가까워지는 법이다.


가장 잔인한 순간은 내가 간밤에 꾼 달콤한 꿈과 정반대인 현실에 깨어나는 것이다.





나는 아직 내 상상과 싸우는 중이다.










1. 내가 너와 헤어진 이유



나의 꿈 때문에. 너에 대한 실망 때문에. 답이 없는 반복 때문에. 이미 소진해 버린 우리의 노력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것만큼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내가 원하는 말을 네가 하지 않았기 때문에.





2. 나는 너를 얼마큼 사랑했나?



나의 꿈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죽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나를 바꾸고 싶을 만큼.

꿈에서 나를 사랑한다고 꼭 안아주는 순간이 현실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3. 너를 잊으려고 한 노력들



쓸데없이 여러 사람 만나보기. 안 해본 취미 만들기. 네가 싫어했던 행동들 하기. 일에 집중하기.





4. 네가 너무 보고 싶어 한 행동들



우리가 같이 살았던 너의 집 문 앞에 멍하니 서 있기.

집 안에서 들려오는 TV소리에 심장이 쿵쾅.

똑똑똑 너의 집 문 두드리기.

무겁게 열리는 문 뒤로 오랜만에 보는 너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일단 들어와' 하는 목소리에 죄인처럼 나의 예전 보금자리로 들어가기.

적막이 흐르는 식탁에 둘이 마주 앉기.

아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뭐라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오늘 하루만 여기 있다 가겠다고 하기.




5. 그리고 너의 행동은



나보고 편할 때 알아서 가라고 하며 너는,

혼자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나는 거실 소파에 쭈그리고 잠들기.


그리고 한두 시간 뒤,

나에게 방으로 들어오라고.


침대에 누워 너를 끌어안으니

그동안 참아왔던 숨이 드디어 내쉬어지기.

뜨거운 한숨이 끌어안은 너의 가슴을 데우면서

내 마음은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고 안도하기.


너무,

너무,

너무 보고 싶었다고

어렵게 말했다.




6. 다음 날 아침

      

               

익숙한 출근 준비 풍경.

잠이 덜 깬 나의 얼굴에 어색하게 입을 맞추고 집을 나서는 너.

다시 텅 빈, 적막이 흐르는, 내가 한 때 살았던 집에 혼자 남겨졌다.

그날 아침은 내 정신과 달리 너무 환하고, 선명했고, 냉정했다.

간 밤에 꾼 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 한 채 발걸음은 이제 다시 원래 나의 집으로.





7. 나를 보내주는 너의 모습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주고,

출발하는 택시 창문 너머로 점점 작아지는 너의 모습.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던 너의 모습에 전화를 건다.


내가 사실 너네 집에 숨겨 둔 게 있.

한 때 우리 집이라고 불렀던, 나의 방 옷장 안에.

어쩌면 이 번 생에 너에게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편지.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나의 마음의 고향이 되어주어서 고마웠어.



사랑해.






8. 몇 년 뒤, 나는



현실이 나를 설득하지 못할 만큼

이별한 지 몇 년이 흘렀다는 게 믿지 않을 만큼

나의 머릿속은 더 선명하고, 확실하고, 믿고싶다.

다만 내가 실수하지 않길 바랄 뿐.

마음은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걸어가는 중, 다가가는 중이다.

이렇게 그냥 겉으로는 멀쩡한 척, 속으로는 정신 나간 척 있고 싶다.

아무리 모진 현실이 이렇다 말할지라도,


우리는 결국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고 얘기하고.



무뚝뚝하게 내일을 또 맞이할 준비를 한다.











동화보다 더 잔인한 현실 속에서,

happily ever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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