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성공을 위한 실패 길잡이
영국 워홀의 몇 가지 특징이 있다면,
여자들이 많이 지원한다는 것.
30대에 막차로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 직장 생활을 이미 해 본 사람들이 온다는 것.
나는 살면서 워홀을 두 번 겪어봤다.
처음은 호주였고, 두 번째가 영국이었다.
중간에 해외 취업기간이 좀 더 짧았더라면 세 번째 워홀까지도 가능했었을 것 같다.
워홀의 성공 여부는 결국 취업이다.
나는 이미 호주에서 워홀도 겪었었고, 해외 취업도 해 본 적 있으니 영국 취업쯤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영국 워홀을 가게된 계기는 이전 글 참고.
https://brunch.co.kr/@o0omy/16
어찌 보면 능력치 만땅이었던 내가 무참히 실패한 이유?
차근차근 알려드릴 테니 당신은 부디 성공하시길.
1. 실패 요인 4가지
1. 한국에 미련이 있었다.
이건 개인차가 있을 수 있으나 나 같은 경우엔 이 때문에 출국이 늦어졌다.
영국 워홀 비자기간은 총 2년이다. 그중 나는 6개월을 한국 취업에 미련을 두느라 비자기간 6개월을 이미 한국에서 소진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그럼 총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은 건데, 사실 이게 취업 비자를 잘 발급해주지 않는 영국 회사들에게 절대 반가운 상태가 아니다.
영국 회사들이 워홀러들을 채용하는 이유는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저렴하고', '트라이얼'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트라이얼'의 의미는 1, 2년 정도 써보고 괜찮으면 계속 가고(취업 비자), 아니면 말겠다는 수준을 얘기한다.
그러기 위해 보통은 비자기간이 1년 이상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조급했었다.
가뜩이나 늦게 출발했는데 브렉시트 이후로 꺼져가는 영국의 경기침체는 고용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어버렸다. 사람을 잘 뽑지도 않을뿐더러 있더라도 링크드인에 뜨는 지원자수는 조금이라도 괜찮은 공고다 싶으면 최소 1-2백 명 수준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더 안정적인 비자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영국 취업이 안된다는 게 아니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릴 뿐인 거다. 근데 나는 시간이 없었다.
나의 조언: 한 번 가기로 마음먹었으면 더 이상 한국에 미련 두지 마라. 지금 당장 떠나도 내가 미련 두었던 한국의 좋은 점들은 워홀 갔다 오고 나서도 그 자리 그대로 있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망설임이 새로운 곳에서의 좋은 점들을 미루게 되는 꼴이다. 세상에 완벽한 저울질은 없다. 여기서 하나 내려놓으면 다른 곳에서 하나 얻게 된다는 걸 명심하라. 도전은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2. 영혼 없는 이력서를 돌려댔다.
취업의 가장 흔한 레퍼토리 중 하나는, '나는 이력서 수백 개를 돌려봤다.'이다.
그 말을 한 사람들 중에서 단 한 명도, '그 수백 개 중 한 곳에 취업돼서 잘 살고 있어.'
라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은 워홀 초기에 그런 취업 활동을 누구나 한 번씩 겪기는 하지만,
정작 진짜 취업이 된 곳은 항상 의외의 기회, 어쩌면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이나 원래 계획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취업이 되곤 한다.
그리고 이력서는 많이 넣는 게 아니고, '제대로' 넣는 게 중요하다.
나는 이걸 알면서도 충분히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앞서 언급한 시간에 쫓겼던 게 가장 크게 작용했다.
물론 완전 생뚱맞은 포지션을 넣은 건 아니고 그래도 원래 전문 분야에서 다양한 포지션으로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면접 기회는커녕 회신조차 받지 못 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이력서를 수백 장 돌렸을 때의 이점은, '지금 당장 마음이 편하다'이다.
구직 활동 관련해서 '나는 오늘 무언가 시도했다',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합리화,
얄팍한 뿌듯함이다.
그렇게 정말 믿어버리면 당신은 앞으로 시간을 더 낭비하게 될 것이다.
나의 조언: 이력서 한 장을 쓰더라도 해당 기업에 대한 충분한 조사, JD(Job Description) 기반 패러프레이징, CV 문단 구성, 주요 경력 하이라이트 등 해당 공고에 '맞춤형' 제작이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인사 담당자들이 CV리뷰 프로그램을 쓰는데, 여기서 지원자의 Key word 가 자기네 Qualification과 어느 정도 매칭이 되는가에 대한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 대충 제목만, 회사 이름만 바꿔서 하나의 CV로 여러 군데 넣는 행위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력서만 제출했다고 끝내지 말고, 어떻게든 인사 담당자와 컨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라. 항상 그런 플러스알파의 행동이 나와 다른 지원자들과의 차이점을 만든다.
3. 한 번에 너무 높은 곳을 바라봤다.
이제 좀 더 냉정한 얘기를 해보자면, 본인의 경쟁력에 대해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학생 또는 회사 경험이 거의 없는 사회초년생들은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몇 년 회사생활을 해보고 가는 사람들은 겪을 수 있는 딜레마이다.
영국 취업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한국인을 필요로 하는 한국회사에 취직.
두 번째는 한국인을 필요로 하는 영국회사에 취직.
세 번째는 인종 상관없이 뽑는 영국회사에 취직.
여기서는 세 번째에 대해서 얘기한다.
내가 지금껏 본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다.
1. 언어보다는 특정 기술 발휘가 더 중요한 직종에 종사한다.
예를 들어, 코딩/비디오편집/UX UI디자인 등
2. 한 번에 경력직보다는 인턴, 프리랜서, 신입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다.
3. 2번의 경험이 쌓여 그다음에 진짜 정착할 만한 직장을 찾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3번이다.
당신이 영국에서 조금이라도 일 관련된 경험이 없다면, 경쟁력이 많이 떨어진다.
언어를 네이티브 급으로 구사하지도 못하면서 보유 기술도 없고 심지어 영국 현지 일 경험도 없다면,
최소한 당신의 눈높이라도 낮추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이미 갖고 있던 5년의 대기업 경력은 내 눈높이를 낮추는데 방해가 되었다. 쉽게 말해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협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못 오를 나무들을 찍어대기만 했던 것이다. 특기 살릴 자신은 없으면서 뭐든 할 각오가 안되어 있었다.
나의 조언: 내가 원하는 곳에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어려운 상황은 풀기까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다. 그래서 당신이 영국 워홀을 꿈꾸며 상상한 업무 환경은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룰 수 있을 테지만, 그 시작을 당신이 상상한 것보다 더 하위 단계에서부터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걸 감내하고 언젠가 꽃 피울 결과가 당신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의미라면, 이 정도 고생은 또 잠깐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불과할 것이다.
4. 혼자서 다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나는 사실 영국 워홀 첫 시작부터 운이 좋지 않았다.
새벽 1시,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을 찾아갔다.
약 10시간을 추운 응급실 대기실에서 불편하게 앉아 나의 몸이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불안에 떨었다. 병원에서는 조직 검사를 한다고 피부를 떼어갔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소 한 달 동안은 절대 무리해서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했다.
한 달 뒤 나온 병명은, '자반증'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 적혈구가 파괴되는 희귀 질환, 여기서 심해지면 백혈병으로 이어진다.)
비자 기간은 계속 깎여가는데 나는 한 달 동안 마음 불편한 채 에어비앤비 침대에서만 누워있어야 했다.
당연히 정상적인 구직 활동은 할 수도 없었다.
가족들은 당장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난리를 쳐댔지만 나는 여기까지 온 이상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 마인드가 나는 어떻게든 혼자서 다 이겨내겠다는 고집을 필요 이상으로 키웠다.
남들에게 보란 듯이 멋지게 한국을 떠나 영국에서 짠 하고 취업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지금 처한 환경, 불행한 상황들을 남들에게 알리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그냥 무작정 이력서만 넣고 버티면 언젠가, 어디든 되겠지라는 생각이 컸던 게 잘못이다.
나의 조언: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특히 이런 마인드를 주의해야 한다. 연고도 없는데 가서 무언가를 혼자서 다 해결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는, 당신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할 뿐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지 말라. 그러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서 누구든 만나야 한다. 한국인들이 모이는 모임에 나가던, 외국인 모임에 나가던, 종교 활동을 하던 사람들과 교류를 해야 한다. 그래야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새로운 자극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남들에게 내가 무직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민망해서 사람들도 안 만나고 집에만 틀어박혀 컴퓨터만 쳐다보고 있다면 그건 당신의 긍정적인 바이브를 오히려 잠식시키는 행위라는 걸 알아야 한다.
2.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4개월 뒤, 나는 영국을 떠났다.
겨우 겨우 얻었던 면접 기회들, 그 중 몇개는 최종까지 갔던 것도 있었지만 결국 떨어져 자포자기하며 영국에서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던 와중,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내 나름 최선을 다 했는데도, 영국을 떠나는 직전까지 어느 곳 하나 합격이나 오퍼를 받은 곳이 없었다.
어찌 보면 다른 나라에서 오퍼를 받았고, 그게 마음에 들어서 고민 끝에 영국을 떠난 것이지만.
이렇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4개월 동안 죽어라 노력했는데도 결국 아무 곳에서도 일 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내가 더 이상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었다면,
나는 이 워홀을 실패했다고 결론짓기로 했다.
체류기간이 더 길었으면 달랐을까, 그것도 실패요인으로 포함을 시켜야하나 고민이 좀 있었지만
그게 메인은 아니었다. 물론 더 오래있었다면 위 3번의 요인을 딛고 정말 어떤일이라도 하고 있었겠지만
아마 현타 오지게 왔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영국 취직 활동은 한국에 있는 기간 포함 거의 1년 동안 했었기 때문에 시도는 충분히 해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중이다.
3. 영국 워홀을 추천하는가?
이러한 온갖 고생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국 워홀을 추천한다.
왜냐면 모든 도전은 값지고 어떻게든,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국에 있는 동안에 내가 얻은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영어 능력
: 살기 위해 더 악바리로 공부했다. 짧은 기간 더 인텐스 있게 했더니 확실히 비영어권에서 1년 공부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스피킹 향상이 되었다. 외국인 플랫 쉐어에서 살았고, Meet up 모임에도 종종 나갔었다.
2. 커뮤니케이션 스킬
: 서양 문화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은 확실히 동양과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상대의 말에 얼마나 잘 '반응' 해주는 가이다. 그냥 단순히 하이텐션으로 물개 박수 쳐주며 리액션해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요점은, 상대의 말의 핵심과 관련된 '질문'을 자꾸 해준다는 점이다. 그게 상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라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양에서는 오히려 서로 질문하지 않으면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스킬을 잘 써먹으면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에서 인상적인 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글로벌 커리어를 쌓으려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소양이다.
3. 문화적 만족감
: 세계사, 예술에 관심이 많은 나는 영국에서 비로소 그 만족감의 정점을 찍었던 것 같다. 심지어 런던은 무료로 운영하는 갤러리, 박물관이 약 30여 곳에 달한다.
섀무얼 존슨이 이런 말을 남겼었다.
"런던에 싫증난 사람은, 인생에 싫증난 사람이다."
그만큼 런던은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다방면으로 엄청난 곳이며 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다. 나는 이거 하나만으로도 영국에 갈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 그리고 어찌 보면 영국 워홀을 왔기에 받을 수 있었던 스카우트 썰은 다음 편에서.
마치며 +a
하나 내려놓으면, 하나 얻는다 라는 말을 나는 절대 공감한다.
나는 이미 살면서 숱하게 많은 중요한 것들을 내려놓아 보았다.
그럴 때마다 인생은 너의 소중했던 것들의 가치를 다시 느껴보라며 시련을 주었고,
어두운 터널을 혼자 오랫동안 걷게 했다.
하지만 결국 새벽은 다가오기 마련이다. 가장 어두울 때 마침내 빛이 보인다.
그렇게 삶은 다시 나에게 고생했다며 새로운 걸 가질 자격을 인정해 준다.
삶의 리듬과 언어를 조금씩 체득해 나가는 기분이다.
영국 워홀을 통해서 나는 인생이 더 재미있어졌고, 도전이 더 두렵지 않아 졌다.
당신의 도전도 인생의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