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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소포타미아 Jul 08. 2024

사내 공모전 1등, 그리고 왕따가 되었다

일머리와 조직머리는 다릅니다



앞서 미리 말해두건대,

나는 주변 눈치를 많이 안보는 성격을 타고났다.

윤리나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 되지 않으면 나는 조직 문화나 그런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그냥 내 생각을 밀고 나가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그래도 싸다.

과거에 학창 시절 학교에서, 사회 초년생 시절 회사에서 왕따 당했던 일들이.


이제는 사회생활 연차가 쌓여가면서 적당히 눈치도 볼 줄 알고 최소한의 인과응보를 겪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지만 아무튼 사람의 기질이라는 건 잘 바뀌지 않기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도 적당히 포기한 것도 있다는 게 사실이다.


결론은 이런 자초한 삶의 크고 작은 불편함을 겪더라도 그냥 나는 나 대로 살아기로 했다.

이번 생은 그냥 제대로 미움받기로 각오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생각보다 덜 미움받은 삶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1. 사건의 발단




내 인생 첫 직장이었다.

에어팟 1세대가 세상에 출시되기 아주 한 참 전이었지만 정서적 안정감을 항상 이어폰으로 의지하는 성격으로, 당시 유선 이어폰을 사무실에서 꽂고 앉아 있으면 지나가던 부장님이,

'OO아, 개념 없는 짓 좀 하지 마라.'라고 하던 시절이었다.



첫 직장 생활이자 사회생활에 나는 엄청 쫄아 있었어서 최대한 고분고분, 남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며 조직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아무튼 사람들은 내 예상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


같은 팀에는 나보다 2,3개월 정도 먼저 입사한 신입사원들 4-5명 정도가 있었는데, 우리는 사무실 한 층 한 귀퉁이에 다 같이 모여 앉았다. 그리고 나에게 겉으로는 '우리는 다 같은 신입사원'이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그래도 너는 우리 후배'라는 은근의 선을 그으며 감히 그들의 정서적 유대감에 끼워주지 않으려 위화감을 풍겨댔다.


오전에 출근하고 자리에 앉아있으면 걔네들은 나를 제외하고 하나둘씩 자리에 일어나서 결국 모두 사라졌다가 약 30분 뒤에 다 같이 같은 카페의 커피를 한 손에 들고 각자 시간 차이를 두며 하나 둘 자리로 돌아오는 (나름 머리 쓴 ㅎ) 루틴을 보여줬었다.


당시엔 내 사수도 정해지지 않았을 때라 같이 점심 먹고 업무 동선을 함께할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입사하자마자 텃세 부리는 신입사원들에게 사실상 은따를 당했다.


나를 무리에 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굳이 눈치 보며 의지하고 싶지 않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그냥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며 그렇게 내 나름 회사생활을 해 나갔다.


그리고, 입사한 지 3개월 차 되던 때에 회사에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었고 그에 따라 사업제안 사내 공모전이 열렸다. 우리 부서 부장님은, 젊은 신입 사원들의 아이디어가 궁금하다며 우리 모두에게 공모전 제안서를 각자 써서 제출하라고 하셨다.


신입사원 무리는 다 같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는 식으로 작성을 하자고 했다. 나는 각자 제출하는 제안서인데 굳이 얘기를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나 혼자 또 소통에 소외되는 게 싫어 그렇게 신입사원들끼리 아이디어 회의를 하게 되었다.







2. 나의 행동




내가 제시하는 아이디어마다 나보다 2,3개월 먼저 입사하신 선배님들은 하나 같이 별로라는 듯 비아냥대었다.

그런 게 시중에 팔릴 것 같냐며, 냅다 부정부터 하고 보는 그들의 디폴트 리액션에 어느 순간 맥이 빠져버렸다.



그래도 나는 혼자서라도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내려고 고민하는 그 과정이 재밌긴 했었다. 그 순간만큼 몰입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당시 대학교 갓 졸업하고 고작 몇 년 살지 않은 삶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살면서 불편함을 겪었던 분야에 회사 제품을 이용해 개선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끊임없이 혼자 고민하던 중 결국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그 아이디어를 걔네들에게 공유했을까?











당연히 공유하지 않았고 마감 전까지 숨겨두었다가 마감날 부장님께 제출을 했다.








3.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한 달 뒤, 사내 공모전 결과에 대한 전사 메일이 도착했다.


3등은 우리 회사에서 10년 근무하신 영업 과장님,

2등은 우리 회사에서 15년 근무하신 마케팅 팀장님,


1등은 입사한 지 3개월 된 신입사원 나였다.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가 스스로 괜찮다고는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1등까지 하고 나니 좀 어안이 벙벙했다.

부장님은 내 자리까지 오셔서 나를 막 격려해 주시고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셨다.


부상으로 당시 나름 최신 전자기기였던 아이패드를 받았는데

인사팀에서 아이패드를 받고 자리로 돌아오니 그 신입 사원 무리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생각보다 별거 안주네, 나 같으면 중고로 팔듯.'



당시엔 그 말을 듣고 괜히 나도 의기소침해져서 진짜 중고로 파는 게 맞는 건가 생각했었는데,

결국엔 팔지 않고 오래오래 두고 쓰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 아이디어를 자기네들한테 미리 말하지 않고 제출했다는 이유로 진짜 왕따가 되었다.









4.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무엇이 나를 그런 상황에 놓이게 만들었나 생각해 보면 결국 나의 순간순간의 미숙했던 행동들 때문이었을 것이고, 하필이면 그런 나를 너그럽게 봐줄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었고,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예민하게 받아들여졌던 타이밍의 문제였을 것이다.


어차피 내 아이디어를 대놓고 카피해서 자기네들이 창조해 낸 마냥 부장님께 제출할게 아니었다면

나도 굳이 걔네들에게 말 안 하고 제출하지 않았어도 됐었다.

아니면 적어도 구두로 대충 인폼해 놓고 구체적으로는 공유하지 않다가 제출하던지 방법은 많았는데 당시엔 나도 그런 융통성이나 센스가 한참 미달되던 시절이라 최선의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거에 대해는 할 말이 없다.


나에게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위화감을 주는 무리에게 나도 친절하지 않게 군 것뿐이었다고 변명하면서도 결국 유유상종이었던 당시 나의 그릇도 반성하게 된다.




+거기서 회사생활의 잘 못 낀 첫 단추를 그만 멈췄어야 했는데 아주 exciting 하게도 이후에는 내 인생 첫 사수와 대판 싸우게 되는 막장 드라마를 펼치게 된다.



https://brunch.co.kr/@o0omy/5


https://brunch.co.kr/@o0omy/6







+a 마치며




모든 상황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첫 번째는 즉시 보이는 현상이고,

두 번째는 시간차를 두고 나중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다는 우열 같은 건 없다.

두 가지 모두 결국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당장 사람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받고 숨이 막혀 일상생활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순간이 종종 온다. 그걸 잊기 위해 또는 벗어나기 위해 집중했던 다른 무언가로 인해 내 삶이 또 바뀐다. 다른 기회도 발견하게 된다. 아니면 그 와중에 못난 놈 한 번 더 용서해 주는 아량이라도 넓어진다.


나 같은 경우는 그게 퇴사로 이어지기도 했고, 해외취업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고, 공모전 수상 경험을 토대로 완전히 분야를 바꾸어 새로운 커리어를 도전하기도 했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나의 이런 대찬 성격 탓에 많은 사람들이 나는 회사/조직 생활에 안 맞는다고 하는데

사실 난 정반대다. 나는 회사 생활이 재미있다. 


어려운 인간관계는 오히려 나의 대인관계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지금은 그 내공이 쌓여 훨씬 더 재미있어졌다.


아마 주변에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들만 있다고 하면 그건 둘 중 하나 일 것이다.


생각보다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의 크기가 작은 곳이거나,

아니면 당신에게 진솔하지 않은 사람들만 모여있거나.




비록 내 입맛에 맞게 예쁘게 포장된 말은 아니어도 상대방의 의도를 잘 생각해 보면 날카로운 말도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가 많다는 게 지난 시행착오들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이 언젠가 또 부메랑처럼 나에게 날아와

이 전보다는 더 현명한 선택으로 인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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