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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Sep 07. 2021

비 오는 날의 짧은 용서

되돌아갈수도 나아갈수도 없는 생의 한 중간에서

비가 계속 내렸다. 여러가지 상황들로 마음은 계속 우울했다. 비가 잠깐 그친새 우산도 없이 산책을 하러 나갔다. 이마를 가끔씩 톡톡 때리던 빗방울은 어느새 굵어져 이미 집에서 많이 멀어져 버린때 소나기같이 내리기 시작했다. 비 같은건 맞아도 그만 안맞아도 그만, 삶 같은건 살아도 그만 안살아도 그만, 이런 생각으로 걷고있다가 이젠 어딘가에서 잠깐이라도 비를 피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버렸다. 빗줄기는 그칠듯 그치지 않고 다시 거세지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요새는 생의 한 중간에 서있는 기분이다. 비는 점점 거세지는데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려서 되돌아갈수도, 앞으로 나아갈수도 없는 생의 한 중간. 거기에서 잠깐 비를 피하며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삶속에서 일이 터질때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 매번 그렇게 굴면 살수없는 법이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물음표를 지울수가 없다. 가끔 진짜 더는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예전처럼 격렬하게 죽어버리고 싶단 생각은 딱히 안들지만 굳이 하루하루 악을 쓰며 버텨야하는 이유도 가끔은 잘 모르겠다. 자꾸만 뒤를 보고 싶고, 자꾸만 행복했던 기억에 머물고만 싶어진다.


이어폰에선 그때 그 음악이 나온다. 엄마를 기다리며 듣던 음악. 아기들을 보면 영감을 얻는다는 우리엄마는 유치원 원장까지 멋지게 해냈던 자부심 하나로 살아왔지만 우리 네 자매로 인해 일터에선 이미 설곳을 잃은지 오래였다. 목사인 아빠는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못하고 무남독녀 외동딸인 우리 엄만 혼자 아마 많이 힘들었을거다. 그런 엄마가 처음으로 자존심을 버리고 식당일을 하러 간 날 밤 나는 집 앞에 나가 노래를 들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였지만 마음이 아픈게 뭔지, 삶이 뭔지는 대충은 알게 된 것 같다. 가끔 삶이란 정말 내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이 늦은 밤 멍하니 무언가를 기다려야만 할때도 있는 것이다. 저멀리서 걸어오는 엄마를 봤을 땐, 나는 마치 전장에서 살아남은 전우를 만난 기분이었다.


엄마도 모르는새 오늘도 나는 엄마를 용서하기로 한다. 늘 이런식이다. 엄마도 모르게 엄마를 미워하고 또 엄마도 모르게 엄마를 용서한다. 가끔 유치하게 굴고 나에게 상처주는 엄마를 죽도록 미워도 해봤다. 아빠를 저주하는 엄마를 볼때면 마녀같았지만 이젠 그 마녀도 다 늙어버려서 관성적으로 엄마를 미워하는 나를 보면 내가 마녀가 된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젠 엄마와 내가 앞으로 함께할 날이 지나온 날보다 작아지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러니 시간을 아껴야 한다. 그리고 용서는 시간을 아끼는 좋은 방법이다.


어렸을 때 일기장에 나는 비가 내리면 우울하고 싫다고 썼었다. 담임선생님은 비는 많은 것들을 씻어내려주기도 한다고 하셨었다. 맞다. 비는 더러운 걸 다 씻겨주니까 좋기도 하지만 가끔은 자칫 잘못하면 내 전부가 다 씻겨져내려갈 것만 같을 때도 있어서 힘들 때도 있는 것이다. 나만은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있는 힘껏 붙들고 견디고 있다.


생의 한 중간.

많은 이들이 거쳐간 곳이다. 어떤 이들은 너무 힘들어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가기도 한 곳. 그래도 비가 그치면 다시 걸어볼 것이다.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올때마다 내 껍질 안으로 웅크려들어가기만 하지않고 때로는 용기내서 맞서고 힘을 내볼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쉬운 것만 하고 살 순 없으니까. 이번 비는 빨리 그치고 해가 떴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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