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멜팝콘맛 인생은 아닐지라도
저녁을 먹어도 배가 만족스럽게 차지 않았다.
퇴근하고 녹은 마시멜로우같이 늘러붙은 몸을 일으켜 슬리퍼를 끌고 집 앞 슈퍼로 나갔다.
한두봉지로는 아쉬워 다른 슈퍼에 들러 몇가지 과자를 더 골랐다.
하루동안 상처난 감정과 손상된 감수성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처럼 고르고 골랐다.
내가 나에게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보상이다.
평소에는 건강 생각한답시고 내려놓았던 단 과자들까지 포함이다.
봉지도 없이 양손 가득 탐욕스럽게 과자봉지들을 움켜쥐고 1층 공동현관에 들어섰다.
엘리베이터가 닫히길 기다리는데 뒤이어 한 아이가 뛰어 들어온다.
과자를 잔뜩 쥐고 서있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한다.
"몇살이야?"
"여덟살이요"
"학교다니겠네. 몇반이야?"
"1학년 1반이요"
"학교 재밌어?"
"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아슬아슬 대화가 이어지다 벌써 내가 내릴 층에 도착했다.
다 큰 여자 손에 들려있는 뜬금없이 많은 과자봉지들의 맥락을 이해하려는 듯 아이의 시선은 과자들에 멈춰있다.
어쩐지 이쪽 손보다는 저쪽 손에 하나쯤은 들려있어야할 것 같아 나도 몰래 이런 말이 튀어나간다.
"하나줄까?"
"네"
"뭐 좋아해?"
"꼬북칩이요"
세봉지 정도 채집하듯 들려있던 왼쪽 손을 내미니 카라멜팝콘맛 꼬북칩을 냉큼 빼간다.
잘가, 하고 쿨하게 내리고나서 나는 어이없는 웃음이 난다.
아픈 하루였다. 믿고 의지하던 사람과 특별한 이별을 고한 날이었다.
우리가 더이상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을것이란 결정을 내린 날이었다.
서로의 평안을 위했고 서로의 서로를 향한 좋은 마음들을 알았기에 이별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더이상 만났다가는 서로가 가루가 되어 좋았던 기억들마저 더럽혀질 직감이 왔다.
밤새 고민한 끝에 결심이 섰다. 서로 마지막으로 정중한 대화가 오갔고 그렇게 막이 내렸다.
신뢰란 누군가 나를 찌를수도 있게 내 가장 소중한 부분을 허락하는 것이란 걸 알고있었건만.
그래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은 어느 순간에라도 그 마음을 잃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주는 것이란 걸 알았건만. 역시나 사람에게서 오는 상처가 가장 아프다.
누군가 미우면서도, 온전히 미우면서도 고맙고 아쉬울 수 있다는 걸 새삼 경험한 날이었다.
사랑해서 이별했다-는 말의 향기를 아주 조금은 이해한 날이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온전히 겪을만한 일이다.
불현듯 두가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감내해낼 수 있는 소화기관이 새로 생긴 느낌이다.
이전에는 토할 것 같은 기분에 울컥울컥 뱉어내곤 했던 감정들까지 이제 온전히 흡수해내려하기 시작한다.
무엇이든 끝까지 내려가 온전히 느껴보면 조금은 더 자랄 것이란 내 믿음이 가져온 결과다.
내 감정을 내가 맘껏 수용하기 시작한 후로부터 세상의 빛깔이 달리 보인다.
너무 슬픈데도 너무 아름다운 곳이 세상이었다. 잔인한 역설이 곳곳에 범벅되어 있는게 보였다.
최근 읽기 시작한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 세상은 너무나도 엄숙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너무나 엄숙한 것이기에 현명하고 명랑한 철학이 필요하다."
린위탕, '생활의 발견'
원래 그랬던 것이다. 때로는 칼로 찌르듯이 아픔을 주었다가도 또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벚꽃비를 내릴 수도 있는 곳이 이 세상이다. 아, 이제는 다 끝났다 하고 새까맣게 절망했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한 두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 이 세상인 것이다. 너무나 숭고해서 함부로 어떻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곳.
그래서 또 한번 살고자 의지를 다진다. 앞으로는 외로움과 사무치는 감정은 그저 친구처럼 곁에 둬보려고 한다. 외롭다는 이유로, 혹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섣불리 사람이 그 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덮치는 모든 감정들과 함께 엄숙하고 명랑하게. 그냥 가기엔 너무나 아쉽고 아름다운 시간을 또 누려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