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양들을 위한 항해
나에게 좋은 영화의 기준은 현실성이다.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죽음에 대해 반드시 한번 일깨워주는 가치가 있든지, 혹은 현실성이 단 1g도 없어서 영화를 보는 잠시라도 현실을 모조리 잊게 해주는. 그런 영화들만이 내게 시간을 들여 볼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나머지 부류의 영화는 시간을 아껴 요약본으로 그저 유행을 뒤쫓아간다.
그런 내가 또 하나의 지극히 현실적인 영화를 하나 만났다. 어디엔가 살고 있을법한 누군가들의 삶을 쏙 빼닮은 그런 부류의. 그래서 막이 내리면 내 앞에 펼쳐진 삶을 뚜벅뚜벅 걸어나가게 하는 힘이 있는 그런 영화다.
타일러는 남겨진 사람이다. 유일한 가족인 형이 떠나고 홀로 배를 타고 게를 잡는다. 무슨 이유인지 형의 어업면허는 빼앗기고 정당한 삶의 근거가 될만한 어떤 일도 얻지 못한다. 남의 통발을 함부로 건드리고, 불지른다. 살아야 할 이유도, 산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지 못해 한 청년의 삶은 사방위로 사정없이 흔들린다.
한편 잭 역시 버려진 사람이다. 그의 가족은 다운증후군이 있는 그를 요양원에 유기했다. 파티와 레슬링을 좋아하는, 고유의 취향과 개성을 가진 아름다운 인간인 잭은 자신의 꿈을 펼치려 요양원을 탈출한다. 그 요양원에서 일하는 엘라노어 역시 남겨진 사람이다. 남편이 떠나고 그녀는 홀로 세상에 남겨졌다. 요양원에서 외롭게 홀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의 손을 마지막으로 잡아주며 그녀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이 남겨진 세 사람은 어떤 계기로 인해 함께 뗏목을 타고 어디론가로 향하게되며 영화는 흘러간다.
부모와 형제.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보면 쉽게 재밌다는 생각이 안든다. 그것들은 인간이 선택한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링 위에서 선 연약한 레슬러처럼 그저 흠씬 두들겨맞기만 하는 인물들을 보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누구도 자신의 가족을 직접 선택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어떤 면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몫이자 어떤 경우에도 간단하고 쉽지 않은 몫이다. 그저 없다고 무시해버릴수도, 있다고 살 부대끼고 살면 또 그것대로 괴로운 것이 가족이다. 물론 함께 마주보며 웃을 날도, 서로의 슬픔에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는 날도 있겠지만 그것도 그것대로의 괴로움일 뿐이다.
잭의 이분법은 단순하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놈은 나쁜 사람이다. 타일러를 쫓아와 구타하고 협박한 던컨과 랫보이는 나쁜사람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좋은 놈들도 때론 이유없이 버림을 받는다. 복수심에 불타 타일러를 쫓아온 던컨도 말한다. 생업이 간절한건 너뿐이 아니라고. 우리에게도 너에게만큼이나 간절한 것이었기에 이토록 죽도록 복수심에 불타는 것뿐이라고. 빌런의 입을 통해 내뱉어진 삶의 진실은 냉혹하리만치 현실적이다. 그렇다. 현실에서는 흑과 백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좋은 놈, 나쁜 놈이 그렇게 단순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애매하게 좋은 놈, 애매하게 나쁜 놈, 때에 따라 좋은 놈이다가도 때에 따라가 나쁜 놈이기도 한 게 나이자 당신이고 인간들이다.
타일러가 말없이 잭에게 물가로 나오라고 손짓해 수영을 가르쳐주는 초저녁 장면은 조용히 보고있다가 어느새 눈물이 난다. 숨막히는 이분법의 경쟁에서 잠시 손을 떼고, 산다는 것이 원래는 무엇이었는지를 그려낸다. 잭은 타일러에게 말한다. 너는 좋은 사람이라고. 그런 잭의 순수하지만 강력한 힘에 타일러도 맘을 열게된다. 타일러의 대사처럼 아무리 검은 옷을 빼입어도, 아이셰도우를 눈두덩이에 짙게 바른다해도 거친 겉모습이 그 사람의 마음에 대해 보여주는 건 많지 않다. 중요한건 진부하지만 늘 그랬듯, 보이지 않는 마음인 것이다. 아무리 내 삶의 양태가 이리저리 오랫동안 얼룩졌어도 그 남은 좋은 마음 한 조각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또 얼마간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다.
잭은 레슬링을 배워 진짜 시합을 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영화는 러닝타임동안 타일러의 카르마를 되갚아준다. 엉망으로 산 대가는 참혹했지만 살아있는 한 그에게는 그의 가족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번에는 그가 선택한 가족이다. 그들은 함께 플로리다에 도착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Tyler, am I going to die?
또다시 잊고 있었던 진실과 마주한다. 죽음이 있다는 것. 괴로운 날도 기쁜 날도 언젠간 모두 끝이 난다는 건. 지겨운 출퇴의 반복, 혹은 집에서 마주치는 지겨운 얼굴들과 지겨운 비극들. 똑같은 이불색과 아침 벨소리, 옷을 갈아입는 것과 음식을 씹는 것, 몸을 씻는 것, 소소한 일들에 울고 웃는 것, 무언가를 두려워하거나 기억하는 것, 사람들을 만나 장단을 맞추거나 혹은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 진심을 나누는 것. 모두 끝이 있다.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이번 주말을 마치고자 한다. 내일부터 펼쳐질 한 주는 죽음에 한 발 기쁘게 기꺼이 다가서는 시간들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