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풀무불 산책 한 번 어떠신가요?

다니엘의 세 친구 이야기

by 에밀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당시 느부갓네살이 만든 금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풀무불에 던져지게 된다.


풀무불은 그저 조금 뜨거운 아궁이 같은 개념이 아니다.

우리 시대로 치면 딱딱한 광물까지 물처럼 녹여버리는 제철소의 도가니 같은 거라고 한다.

이런 곳에 노동자가 빠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빠진 지점의 쇳물을 떠서 장례를 치렀다고도 한다.

당시에도 이 세명을 아궁이 속으로 집어넣은 집행자들도 이들을 집어넣음과 동시에 타죽었다고 하니

과연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을지 상상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사람이 타죽을만한 이 뜨거운 열기 속에서 세 사람과 함께 하신다.

그리고 결박돼서 던져진 이 세 사람은

아궁이 속에서 결박도 풀린 채 어디 하나 상하지 않은 채로 하나님과 자유롭게 거닌다.


여기까진 좋다. 믿어진다. 하나님이라면 과연 그렇게 하셨을 분이다.

그러나 왜 꼭 풀무불 안에 들어가게 하셨을까?

왜 꼭 그 일들이 다 일어나게 허락하시고 그 불구덩이 속을 찾아와 함께 걸으셨을까?


하나님은 늘 이런 식으로 일하신다.

우리 눈 앞에 닥친 집채만 한 어마어마한 비극을 결코 비껴가지 못하게 하신다.

꼭 세 사람을 풀무불에 던져지게 하시고

꼭 요셉을 감옥에 들어가게 하시고

꼭 다윗을 숨막히게 쫓기게 하시고

꼭 피하고만 싶은 그 일들을 내 인생에 허락하신다.

그러고는 그 피바다같은 삶의 한복판에 나와 굳이 같이 있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성경은 그와 같은 질퍽한 동행을 "형통"이라고 표현한다.

그게 어디든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것이 순조로운 것이고 그것이 성공이라는 뜻이다.


하나님만 함께하시면

답이 보이지 않는 연구실 책상이든

여전히 절망스러운 거실의 한복판이든

속이 뻥 뚤린 채 혼자 걷는 추운 뒷골목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같은 내 수준까지 자신을 낮추셔서

하나님이 자신을 가르치시는 유일한 방식인가 보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패를 가르는 승부는

누가누가 가지에 잘 붙어있나 게임 같다.

누가누가 먼저 멋있는 열매 맺나가 아니라,

누가누가 아빠 품에서 안 떨어지고 끝까지 안겨있나 싸움 같다.

그래서 혼자 저만치 먼저 뛰어가서 자랑하기 좋아하는 나는

알면 알수록

내가 본래 잘 할 수 없는 게임인 것 같아 억울하고 화가 난다.

그래서 또 혼자 답없이 토라지게 되는 나를 찾아오신 아버지는

안길 줄 모르는 나를 먼저 안아주신다.

이렇게 안기면 되는거야. 힘 빼고 내 품에서는 이렇게 안식하면 되는 거야. 그게 잘하는 거야.

한번만이라도 꼭 순순히 따르고만 싶은 그런 음성으로 말이다.


아마 풀무불 속에서 세 사람이 하나님과 나눈 대화는 이런 것들이지 않을까?

"하나님, 여기도 함께 걷기에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네요"

"그치? 다음번에는 우리 옆동네 골짜기로 가볼까?"


What matters where on earth we dwell?

On mountain top or in the dell,

In cottage or a mansion fair,

Where Jesus is 'tis Heaven there.

O hallelujah, yes, 'tis heaven

'Tis heaven to know my sins forgiven;

On land or sea, what matters where?

Where Jesus is, 'tis Heaven there.

<Since Christ my soul from sin set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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