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절정에서 필요한 것
한 시절을 주름잡던 천국의 계단이란 드라마를 여전히 종종 보곤 한다.
정서엄마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계모의 학대, 송주와 정서의 이별, 교통사고로 인한 기억상실, 결국엔 시한부 선고까지..
불행포르노란 말이 생각날 정도로 정서의 삶에는 처참한 불행과 비극만이 배치된다.
안온한 일상 중에는 추천영상으로 뜬다해도 굳이 클릭해 들어가보고 싶지 않은 이 처절한 드라마를
그럼에도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로 꼽는 이유는 한 장면 때문이다.
정서는 우여곡절 끝에 송주와 결혼을 하지만 안암에 걸려 안구를 적출해야하는 상황에 처한다.
기억을 잃은 시절 정서의 유일한 가족이던 태화는 그런 정서에게 눈을 주기로 선택하고 세상을 떠난다.
모든 일이 벌어진 후에야 깨달은 정서는 주저앉아 슬픔에 통곡한다.
그렇게 송주와 정서는 절망과 슬픔으로 한 밤을 꼬박 지새우고 날이 밝는다.
장면이 전환되고 정서는 무릎에서 고개를 들며 말한다.
"송주오빠,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을까?"
남은 시간이 있다면 울기보단 웃으며 보내고 싶다는 정서의 말로 극의 분위기는 어거지라 할지라도 전환된다. 그런 전환과 함께 극은 비로소 엔딩으로 향해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장면은 내 마음 속에 더더욱 또렷해진다.
파도처럼 겹겹이 덮쳐오는 삶의 비극 앞에 결국 인물이 모든 걸 수용하기로 마음먹어서일까
너무나 큰 슬픔은 결국은 희미한 미소와 맞닿아있어서일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끝에 대한 직시는 삶의 태도에 파격적 전환을 가져온다는 것만은 분명히 깨닫는다.
그리고 그 전환은 진실로 지혜로운 종류의 것이어서 남은 시간들을 아끼고 또 아끼게 해준다.
죽음을 결코 잊지 말 것.
끝을 결코 잊지 말 것.
그것이 생에 모든 비본질을 떨어뜨리고 본질만 남게 한다.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은 점차 더 어려워지고
각각의 일은 각각의 중요성으로 내 몸에 지긋이 문대어 온다.
시의적절한 삶이란 이런 중요성의 늪에서 살아남은 삶이다.
모든 파도 속에서 기어코 중심을 잡고 정신을 놓아버리지 않은 삶.
그런 삶은 죽음을 기억할 때에야 가능하다.
날카롭게 배린, 빛나는 삶의 결정과 선택은 그제서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절정/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