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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맛보는 베이징덕

꽃 보다 친구, 베이징 유람기 1

by 이순열

베이징의 거리 한복판, 이름난 베이징덕 전문점을 향하며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 미각은 세월의 먼지를 덮고 무뎌진 채, 이미 국내 특급호텔에서 몇 차례 맛보았던 경험들이 남긴 인상은 그저 평범했기 때문이다. 혀끝이 황홀한 그런 감동은 없었다.



사계민복 (四季民福): 스지만푸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베이징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지인이 자신 있게 추천한 집. 입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행렬은 그 명성을 입증하듯 길게 이어졌고, 내 마음도 묘한 기대감으로 물들었다. 예약된 룸에 들어서니, 고요하고 세련된 공간 속에서 고급스러움이 느껴졌다. 식기 하나, 장식 하나에도 섬세함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황금빛으로 윤기를 머금은 베이징덕 한 마리가 등장했다. 주방장이 직접 룸 안에서 칼을 들고 정성껏 썰어내는 장면은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졌다. 눈으로 먼저 음미하고, 손으로 감싸 입안에 넣은 첫 점. 그 순간, 침묵이 무너졌다.



익숙하다고 믿었던 맛의 세계가,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바삭하고 씹히는 잘 구워진 껍질의 식감이 첫 인사를 건넸고, 속살은 놀라우리만치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육즙은 혀끝에서 흘러나와 입안 가득 은은한 풍미를 채웠고, 담백함 속에 숨겨진 깊은 맛은 감탄을 자아냈다.



잠들었던 미각의 세포들이 깨어나듯, 잊고 지냈던 맛난 음식을 먹으며 감탄사를 쏟아내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베이징덕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요리들, 하나같이 개성과 품격을 지니고 있어 어떤 접시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었다. 다이어트를 핑계로 단속했던 식욕은 어느새 무장 해제되고, 음식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차례차례 등장하는 스무 가지가 넘는 요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닌 축제였다. 그 밤, 베이징의 어둠 속에서 펼쳐진 향과 맛의 향연은 잊을 수 없는 미식의 순간이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가 없듯이 산해진미 앞에 혀의 유혹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마음은 깊은 만족으로 가득 찼다. 그 밤은 분명, 먹는 이의 영혼까지 어루만지는 진짜 ‘베이징 먹방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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