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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더 향기 따라 달려본 홋카이도 로드

홋카이도 자동차 여행기

by 이순열

첫째 날 - 토마무의 초록 숨결을 지나

비행기가 홋카이도 치토세 공항에 착륙하자, 미리 예약했던 렌트카를 찾아 북동쪽 국도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약 100km 거리의 토마무 리조트.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펼쳐진 광활한 평야는, 이곳이 일본인지 유럽인지 헷갈릴 정도로 이국적인 느낌을 안겨주었다.

도로는 점차 산악 지형으로 접어들었고, 양옆으로는 끝없이 뻗은 숲길이 나를 반겼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청명한 공기와 안개비 속에서 푸르게 젖은 숲은, 침침했던 시야를 깨끗이 씻어주는 듯했다. 수 시간 이어진 이 숲길은 자연 앞에 겸허해지는 마음을 일깨워 주었고, 나는 어느새 자연의 품에 안긴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보라빛 라벤더를 보기 위하여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 했지만, 성수기 라벤더 축제로 들썩이는 후라노의 숙박비는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에어비앤비의 콘도형 객실 토마무 리조트였다. 원시 자연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룬 이곳은 마치 꿈속의 풍경 같았다. 가격도, 분위기도 만족스러웠다. 토마무의 첫날밤은, 도시의 번잡함을 지워주는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둘째 날 - 숲속 통나무집에서 라벤더의 향기를

다음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후라노로 향했다. 보라빛 라벤더의 도시 후라노는, 성수기답게 숙박비가 40~50만 원에 육박했다. 전날 머물던 토마무 리조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까 고민하던 찰나, 부킹닷컴에서 발견한 반값 숲속 통나무집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통나무로 지어진 집은 주변 나무를 그대로 두고 지은 듯했다. 국내에서도 휴양림은 여러 번 가봤지만, 이렇게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은 신선하고 감동적이었다. 새벽, 숲 사이로 내리는 빗소리는 마음을 적시고, 서늘한 공기와 어우러진 숲의 향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다. 이토록 낭만적인 하루가 저렴한 가격에 가능하다니, 이보다 더한 금상첨화가 있을까.



이튿날 아침, 라벤더의 향기를 따라 토미타 농장으로 향했다. 길이 끝나는 곳까지 이어진 보랏빛 물결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들판을 물들이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눈앞에 아른거릴 듯한 그 장면 앞에서,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곳을 보기 위해 홋카이도까지 왔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라벤더의 향기는 눈부신 색만큼이나 짙고도 달콤했다. 바람을 타고 코끝을 간질이던 그 향기에 마음까지 가벼워지고, 문득 이런 곳이라면 지상에 피어난 천국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보다 깊은 향기, 색보다 넓은 풍경 속에서 나는 그날, 여행이란 이름의 마법에 또 한 번 사로잡히고 말았다.



셋째 날 - 요테이산과 함께한 신비로운 저녁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홋카이도의 후지산이라 불리는 요테이산이 우뚝 선 니세코 안누푸리 리조트였다. 우리는 비에이를 지나 아사히카와, 삿포로를 거쳐 약 300km를 달렸다. 고속도로보다 국도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오타루를 지나 산악지형에 접어들자, 도로 양옆으로는 자작나무 숲이 지그재그로 이어졌고, 그 길은 마치 천상의 세계로 향하는 듯 황홀했다. 숲 사이로 언뜻 보이는 석양의 바다는 아쉽게도 멈춰 볼 틈 없이 스쳐 지나갔지만, 정상 근처에 이르자 곧 나타난 전망대 이정표는 가슴을 설레게 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오타루는 붉은 석양빛에 물들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하늘이 어둠으로 물들 무렵, 운무 속에서 요테이산의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후지산을 복제해 놓은 듯한 그 원추형 봉우리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신비로웠다.

니세코에 들어서자, 고급 리조트들과 세련된 카페들이 불빛을 뿜으며 고요한 밤을 환히 밝혔다. 우리가 묵은 노던 리조트 안누푸리는 겨울 스키 성수기를 위해 지어진 듯했지만, 천연 온천과 조식을 포함한 특급호텔급 시설로 여름에도 손색없었다. 겨울에는 하루 40만 원이 넘는 가격이지만, 여름에는 절반 가격에 이용할 수 있어, 여행의 마지막 밤을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삼일동안, 세 곳의 숙소에서 보낸 홋카이도 자동차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호흡한 여정이었다. 라벤더의 향기, 숲의 숨결, 산의 신비로움 속에서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여행이란 결국 ‘멈추고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자동차로 여행을 떠나면, 무엇보다도 숙소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도시와 자연,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북쪽의 땅, 홋카이도를 달리며 나는 그 말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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