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꽃 예멘 1
오래전, 중동 아라비아 반도 서남단에 위치한 오지 국가인 예멘의 땅에서 가장 선명하게 각인된 기억 하나가 있다. 해발 2천3백미터 고지에 위치한 수도 사나에서 항구 도시 호데이다까지, 숨조차 쉬기 어려웠던 대여섯 시간의 여정이었다.
비행기로는 한 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길. 그러나 나는 파트너의 권유를 뿌리치고, 낯선 땅의 숨결을 좀 더 가까이서 느껴보고 싶다는 호기심에 이끌려, 차로 가보자고 고집을 부렸다.
그 고집이 얼마나 무모했던 것인지를 깨닫는 데는 길을 내려온 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끝을 알 수 없는 붉은 산비탈, 수백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낭떠러지를 따라 놓인 1차선 비포장도로. 가드레일 하나 없이, 마주 오는 차를 피해 비켜서면 바퀴 한쪽이 허공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렸다.
목숨을 담보로 타는 롤러코스터라면, 딱 그 느낌이었을까. 운전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앞길이 트이면 신나게 엑셀을 밟으며 “이 길에서 하루에도 한두 번은 추락 사고가 난다”는 이야기를 덤덤하게 내뱉었다.
차창 너머로는 황홀하다 못해 장엄한, 풀 한 포기 없는 붉은 돌산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끔씩 불쑥 나타나는 기묘한 모양의 나무 군락들은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신비로웠다.
그 아찔한 낭떠러지 길을 따라 몇 시간을 내려오니, 저 멀리 기적처럼 길게 뻗은 녹색의 숲이 계곡을 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SF 영화에서나 볼듯한 마을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은 사막과 돌산으로 점철된 중동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숲이었다. 어디에서 흘러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물줄기가, 바싹 말라붙은 암석 틈 사이를 뚫고 흘러나와 초록의 생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푸르디푸른 숲길, 그 사이사이 바나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풍경은 감격 그 자체였다.
산악길이 끝나고 평지에 접어들자, 아프리카 사바나를 닮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척박한 모래사막에 익숙해진 중동의 출장길에서, 지평선 끝까지 이어진 초원을 달릴 때의 그 해방감이란.
절벽에서 느꼈던 공포와 긴장이 서서히 풀어지고, 뜨거우면서도 상쾌한 공기가 폐 속 깊숙이 밀려들어 왔다. 그 순간,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그날 이후로, 우리나라의 숲과 강을 여행할 때마다 내 마음은 늘 애틋해진다.
길 없이 뻗은 초록의 산등성이, 흐르는 강물, 사계절을 품은 대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풍요롭고 축복받은 것인지, 중동의 척박한 자연을 오래도록 몸에 익히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늘 가진 것이 많으면서도 갈증을 느끼는 우리는, 물질에도 사랑에도, 정에도 끝없는 허기를 느끼며 살아간다.
오늘, 문득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사막의 갈증이, 초원의 바람이, 절벽의 공포가, 숲의 감격이 내게 말해준다.
많은 것을 누리고 살면서도 투정하듯 살아온 삶을 반성해 보라고.
그래서 오늘 하루는, 고요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를 돌아본다.
감사의 언어로 가슴을 덮으며,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