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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의 아름다운집 "혜윰"

초여름날의 전주 한옥마을

by 이순열

방문을 여는 순간, 마치 편백나무 숲속에 발을 들인 듯, 진한 나무 향이 콧속을 파고들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자연의 품에 안긴 듯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드러난 육중한 목재 대들보가 이곳이 자연을 품은 한옥임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방바닥을 가만히 내려다 보니, 한장 한장 바른 한지 장판에는 장인의 정성어린 손길이 곱게 배어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 구들장 아랫목 시커멓게 그을린 한지 장판이 떠올랐다. 그때의 온기와 그리움이 함께 피어올랐다.


전주 한옥마을을 찾을 때마다 늘 발걸음이 향하는 집.


'한옥 혜윰'



순우리말 '생각'을 뜻하는 혜윰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생각을 다듬고 마음을 비우기에 제격인 공간이었다. 큰길에서 살짝 비켜선 골목에 조용히 숨 쉬고 있는 이 집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한줄기 쉼표 같은 존재였다.

새로 지어졌지만 고택의 고즈넉함을 고스란히 품고 깔끔하고 안락한 공간은 여행자들에게 반가운 편안함을 선사했다. 청결하고 실용적인 한옥의 품격을 놓치지 않은 숙소였다.

수많은 한옥을 지나치며 마을을 걸어 보았지만, 혜윰처럼 넓은 잔디 마당을 지닌 곳은 보기 드물었다. 대부분은 담벼락에 다닥다닥 붙은 방들로 대로변에 자리한 터라, 마당이 주는 여유로움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혜윰은 달랐다.


고즈넉한 저녁, 잔디마당이 바라보이는 마루에 걸터 앉아 있으면 담 너머로 은은한 조명 아래 드러나는 이웃 한옥의 실루엣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당에서 친구와 소담소담 나누는 이야기들은 혜윰에서만 누릴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추억이 되었다.

잠자리에 들어서며 풀을 먹인것 처럼 약간은 빳빳하면서도 바스락거리는 이불의 감촉이 너무도 좋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친척 시골 집에 가게되면 귀한 손님 왔다면서 벽옷장에 고이 간직한 비단 이불을 내어 주었는데 그때 느꼈던 추억의 감촉이다.

마당을 감싸는 정적, 그리고 마음을 담아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장의 배려. ‘한옥 혜윰’은 단지 하룻밤을 묵는 집이 아니라, 사색과 정감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의 하룻밤은 단순한 숙박이 아닌, 기억 속 깊이 스며드는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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