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글주의 !
다음 페이지의 첫머리에 라오스 입출국 도장이 찍혀 있다. 작년 2학기 보강주간을 활용해 혼자 다녀왔던 여행인데, 보강주간에 교수님들이 말이라도 맞춘 양 다함께 휴강을 해주셔서 맘놓고 다녀올 수 있었다.
이 때 아르바이트하던 카페드림 점장님의 남편분이 때마침 라오스에 계셔서 필요하신 물건을 전달해드리고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 때 해외 주재원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혼자 떠난 여행이라 루앙프라방 거리를 천천히 걸어다니며 하루종일 취해 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기억만이 남아 있다
밑은 아르헨티나 이과수에서 브라질 리우로 이동하며 찍었던 브라질 입국 도장.
그 옆은 2018년 5월 8일, 불가리아 여행을 떠나면서 찍힌 말라가 공항 출국 도장이다.
다음 페이지에 붙어 있는 스티커 두 개는 각각 오키나와와 다카마쓰로의 여행이다.
교환학생과 남미 여행을 전부 끝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열흘 뒤, 오키나와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겨울이어서 날씨가 약간 꾸리꾸리했지만 츄라우미 수족관이나, 남국의 정취가 섞인 오키나와의 분위기, 고즈넉한 가로수길과 아름다운 코우리 섬의 바다 등 오키나와가 매력적일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때는 렌트를 해서 본섬 곳곳에 숨겨진 예쁜 공간들을 이리저리 방문했다. 아빠는 한동안 바다를 마주보는 하마베노차야 카페 앞에서 찍은 로빈이와의 투샷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해 두셨다.
그 밑은 엄마와 다녀왔던 다카마쓰 여행. 이 때 먹은 쫄깃한 우동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굉장히 덥고 습한 와중에도 나오시마의 쿠사마 야요이 호박과 지추미술관, 쇼도시마의 올리브 언덕처럼 다카마쓰에서만 볼 수 있는 스팟들이 있었기에 짧지만 풍성한 여행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엄마가 카카오톡에 야요이의 빨간 호박 사진과 함께 ‘다시 가고 싶다’는 상태메세지를 걸어 둔 적이 있었다. 생텍쥐페리가.. 아무튼 다시 한 번 그 말을 되뇌이게 된다.
그 다음은 2017년 11월, 라오스에 앞서 보강주간을 정말 풀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나고야 여행이다. 제주항공으로 나고야 츄부 센트레아 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하윤이와 함께한 여행이었는데, 발권 일정상의 문제로 입국은 따로 하게 되었다.
나는 원래 장어초밥을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초밥은 역시나 회와 와사비가 있어야지!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릴 때 먹었던 말라비틀어진 장어초밥이 양념을 듬뿍 발랐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촉촉하지 않고 비릿하며 가시가 너무 딱딱하게 씹혔던 기억이 있어서이다.
그런데 이 나고야 여행에서 장어덮밥을 먹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십년을 넘도록 이 맛을 모르고 살았다니 오히려 억울한 기분이었다.
그 밑에 있는 도장은 자유융합대학 해외탐방 프로그램을 이용해 런던-파리-마드리드를 방문하는 일정의 첫 번째인, 런던 히드로공항 입국 도장이다. 이 때 우리 팀의 주제는 각 도시에 있는 공유자전거 서비스를 벤치마킹해 따릉이의 문제점을 개선하자는 것이었는데, 이 탐방 이후로 공유자전거만 보이면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 옆에 있는 도장은 같은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파리 샤를드골로 입국한 도장이다. 파리라는 도시는 아름다웠지만, 공항에서 시내로 나갈 때의 기억이 정말 끔찍해서 당분간은 파리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가더라도 육로로 들어갈래..
오른쪽 페이지에는 같은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마드리드에서 출국하고, 도쿄에 들어가 사흘간 혼자 여행을 더 하고 온 흔적이 남아 있다.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 왼쪽에는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의 입출국 도장이 찍혀 있다.
할머니와 부모님, 로빈이와 내가 함께한 베트남 가족여행이었는데, 이 때 하롱베이에서 1박짜리 크루즈를 탔었다. 저녁을 먹고 야간 정박 시간 동안 별로 할 일도 없어 할머니가 마사지를 받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평소 감정표현을 많이 하시지 않는 분이셨는데, 마사지가 다 끝난 후 어떠셨냐 물어보니 살고 계신 남원에도 이런 게 있으면 매일이고 받고 싶다 하셔서 정말 좋으셨구나, 더 일찍이 할머니와 좋은 곳에 다니고 멋진 경치를 볼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루즈 일정 중간에 한 섬에 들러 동굴을 돌아보는 일정이 있었다. 동굴 입구가 가파른 내리막이라 할머니는 내려가지 않으셨고 나도 함께 밖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경치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어 드렸다.
나중에서야 옮겨 본 사진의 할머니는 몇년 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마지막 페이지. 불가리아 소피아 공항의 입출국 도장과 다시 말라가로 돌아온 도장이 찍혀 있다. 이후 리옹 여행도 다녀왔지만 같은 쉥겐국 안이라서 도장을 찍어 주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으면 괜히 긴급여권 서비스 안 받아도 됐었는데!!!!!
많은 곳을 다녔다.
처음 홍콩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당연히 몰랐었다. 멕시코로의 교환 학생도, 남미 여행도, 그리고 말라가에 오는 것도 굉장히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결정들이 후회되거나 한 적은 없다. 항상 그런 결정들을 했음이 너무 기쁘고 과거의 나에게 고마움이 크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다. 이제 슬슬 계획을 짜고 짐을 싸고 푸는 과정이 크게 새롭지 않고 지루해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익숙해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또 다른 스케줄을 시작하기는 쉽겠지만, 이제는 정말로 노는 것을 그만해야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닌다.
지금처럼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생각한다. 흘러가는대로 돌아다니다 보니 꽉 채워진 여권처럼 나도 계속해서 꽉 찬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