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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아 Oct 30. 2023

꺼지지 않는 불꽃

아궁이 vs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조금 생소하지만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아제르바이잔이라는 나라가 있다.

이곳에는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

사실 나도 글의 제목을 정하면서 알게 된 나라이다.   

  

아제르바이잔은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유명하다.

국가명도 '신성한 불의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은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천연가스 때문이라고 한다.

이름과 걸맞게 아제르바이잔에 여행을 간다면 필수코스라고 한다.

이상으로 여행가이드 역할은 그만하고 이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불의 나라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한국에도 '잠시'라는 한정적이 의미에서 아제르바이잔에 있는 불꽃과 같은 꺼지지 않는 불꽃이 존재한다.

잘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 잼버리로 원치 않게 유명세를 탄 전라북도 부안에 말이다.


이 불꽃은 자식과 손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70이 넘은 노인에 노력으로 꺼지지 않는다.

거칠고 쭈글쭈글해진 손으로 아궁이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수시로 감시를 하고 장작을 넣어준다.  

마른 장작은 현대인에게 필요한 마음의 안정을 주는 소리를 내며 타들어간다.   


내가 자란 시골집은 텃밭과 마당 그리고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아궁이가 있다.

아궁이가 있다고 해서 초가집은 아니다.

현대식 집이니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이 아궁이는 아버지가 흙으로 손수 만드시고 나름 두 개의 화구가 있는 멀티 아궁이다.

어린 시절 매년 겨울이면 아버지는 아궁이에서 사골곰탕을 정성스럽게 끓이셨다.


한 솥단지 끓이고 나면 늘 밥상에 터줏대감 마냥 밥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는 밍밍한 맛에 소금과 후추가 아니면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사골곰탕이 솥단지 바닥이 보일 때까지 밥상을 차지해서 지겹기도 하고 맛도 없었다.

분명 국을 끓이기 싫은 어머니와 어머니를 돕는 아버지의 합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한해의 마무를 늘 같은 패턴으로 마무리하고는 하셨다.

추수 그리고 아궁이에 끓는 사골곰탕 마지막으로 김장까지 하고 나면 아버지의 한해의 모든 것들이 끝이 났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고 다들 타지에 나가 살게 되자 아궁이도 그 불꽃을 멈췄다.

성인 되어서 뽀얀 사골곰탕은 돈을 주고 사 먹기 시작했다.

온전한 사골곰탕이 아닌 설렁탕 또는 순대국밥 정도에서 만나 볼 수 있었다.

국물을 볼 때 아버지 생각이 나는 감성은 전혀 없었다.

여전히 밍밍하고 뽀얀 국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3년 전부터 쓸모가 없어진 아궁이가 다시 한번 힘을 내기 시작했다.

꺼지지 않는 아궁이의 불꽃이 기어코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손주를 위해서 아버지가 다시 한번 불씨를 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어릴 적 경험했던 아버지의 한 해 마무리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잘 익어 고개를 푹 숙인 벼들의 추수가 끝나고 아버지에게 카톡으로 사진 한 장과 함께 연락이 왔다.

사골곰탕을 끓였으니 집에 한번 들르라는 것이다.

     

먹고살기 바쁘지만

아들이 생기고 이제는 나도 사골곰탕 소식은 반갑기만 하다.

6살 아들은 할아버지 사골곰탕을 굉장히 좋아한다.     

 

처음 할아버지가 끓인 사골곰탕을 잘 먹길래 사골곰탕을 좋아하는 거 같아서 할아버지 사골곰탕을 다 먹은 후에 아내는 인터넷으로 이름도 알려지고 후기도 좋은 제품을 선별했다.

친환경마크에 무항생제 한우를 사용한다는

제품으로 몇 박스를 구매했다.

택배가 오자마자 아들에게 먹여보았다.    

 

“아빠, 엄마 시골 할아버지께 더 맛있다.”  

   

짧은 아들의 말에 머리가 띵하다.

어릴 적 먹기 싫어서 억지로 먹었던 사골곰탕이 아직 순수하고 거짓이 없는 아이한테는 공장에서 만든 맛과 아궁이에서 만든 맛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손주가 태어난 후 쌀밥을 먹기 시작하자 매년 겨울을 앞두고 다시 시작된 아궁이의 불꽃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언젠가 영원히 꺼질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처럼 그 뽀얀 국물을 손주도 밍밍하다며 멀리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기억될 것이다.    


 

멀티 아궁이의 화력


이번에는 사골곰탕 받으려고 시골에 갈 때는

사골곰탕처럼 뽀얀 봉투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그림종이를 넣어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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